brunch

매거진 매일한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Nov 25. 2020

변화는 시간문제


우리는 동성애, 동성혼에 대해 얘기하는 데 익숙지 않다. 사회 분위기가 아직 그렇다. 하지만 이건 시간문제일 뿐 변하게 되어 있다.


미국에서 동성혼이 처음으로 합법화된 게 2004년이다. 생각보다 얼마 안 됐다. 11년 만인 2015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됐다. 엄청난 속도의 변화다. 오늘날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동성혼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미 찬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혼, 동성애를 공개 비판하는 건 인종차별만큼이나 몰상식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동성혼은 이미 미국 주류 문화의 일부가 됐다.


지금 내 MBA 동기들 중에도 남편이 있는 남성들이 몇 있다. 교수들 중에도 당연히 있고,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그 사람들 속마음까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남의 사생활에 대해 개의치 않는 내 입장에서도 놀라운 스토리를 가진 사람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인턴을 했던 회사 인사팀에 근무하는 분이었는데, 이 분은 10여 년의 결혼생활 끝에 자기가 레즈비언임을 깨달았다. 곧 남편과 이혼을 한 뒤 새롭게 사랑에 빠진 여자와 재혼을 했다. 하루아침에 자기 아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그 남편의 기분은 어땠을까. 너무 황당해서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나름 상상해 본다. 재밌게도 그 둘은 이혼한 이후에도 줄곧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역시 아메리칸 스타일).


한국도 시대적 흐름에 홀로 역행할 수는 없을 거다. 시간의 문제일 뿐 지금의 20대가 기성세대가 되는 날이 오면, 동성애와 동성혼의 문제는 더 이상 찬반의 문제가 아니게 될 거다. 사실 우리가 누군데 남의 결혼이나 사랑에 이러쿵저러쿵 훼방을 놓을 수 있나. 싫을 수도 있고 가치관 상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결정해줄 일은 아니니까. 우리는 우리 일만 잘 신경 쓰면 된다.


빠르게 변해가는 건 동성혼에 대한 인식만은 아니다. 결혼 자체에 대한 시각도 요즘 아이들은 우리들의 그것과 정말 다를 것이다. 지금 생후 11개월인 내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 결혼(남자든 여자든)이라는 구식 계약을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50% 정도는 될는지 의문이다. 비혼이라고 꼭 애를 낳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요즘엔 결혼 안 하고 자발적인 비혼모가 되는 사람도 많다. 아무튼 20-30년 뒤에 사랑, 결혼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미 옛날 사람인 우리가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한국 이민자들이 교회에 나가서 이런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남자 친구 데려오지 않게 해 주세요.” “우리 딸이 여자 친구 데려오지 않게 해 주세요.” 너무 한국계 미국적(?)인 기도제목 같아 재밌어서 크게 웃었더랬다. 미국물을 먹고 자란 자기 자식이 동성애자가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나도 미국에서 딸을 키우는 아빠지만 이런 기도에 동참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우리 세상을 살고, 우리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혹시 디카페인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