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디카페인 있나요?
미국에서는 물어볼 필요가 없는 이 질문이 한국에 와서는 일상이 됐다. 미국에서는 디카페인 커피가 없는 카페를 찾기가 더 힘들다. 한국은 반대다. 아직 디카페인 커피가 대중화되지 않아서 생각보다 접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미국 대학원 수업을 미국 동부시간에 맞춰 수강한 지도 3개월이 지났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다 보니 카페인 섭취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깜빡 커피를 마셔 버리면 그날 잠은 이미 망친 것이다.
일반적으로 카페인의 반감기는 7시간 정도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커피 한 잔을 마셨다면 밤 8시가 되어도 커피 반 잔에 해당하는 카페인이 여전히 내 혈액 속을 헤엄치고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해도 카페인은 우리 잠을 방해한다. 우리가 자는 중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자기 직전에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카페인과 질이 떨어지는 잠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기 어려울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카페인 반감기는 길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카페인은 잠을 쫓는 게 아니라 미루는 역할을 한다. 카페인이 활개를 치는 동안 수용체에 흡수되지 못하는 아데노신(잠이 오게 만드는 호르몬)은 누적된다. 카페인이 간에 의해 소화가 되고 나면 이렇게 누적된 아데노신이 한 번에 몰아치면서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수면욕을 자극한다. 또다시 카페인을 찾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이유다.
스타벅스의 아버지 하워드 슐츠는 NPR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에서 자기는 하루 4-5잔 정도의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무조건 디카페인을 마신다고 덧붙였다. 커피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도 오후에는 숙면을 위해 디카페인을 마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 디카페인을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커피 체인점이 바로 스타벅스다. 투썸플레이스도 일부 매장에서 디카페인을 판매하지만 모든 매장은 아니다. 체인점을 벗어나 개인 카페를 살펴보면 디카페인 커피를 찾기는 더 어렵다. 아직은 디카페인을 찾는 손님 자체가 적어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자주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신다. 사람을 만나려면 카페 이외에는 별다른 공간이 없는 한국에서 일면 당연한 일이다. 차(Tea)는 맛이 별로고 스무디 같은 음료는 달고 칼로리가 높다. 맛도 좋고 각성 효과도 있고 칼로리도 거의 없는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메뉴 중 가격도 제일 싸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 카페인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이왕이면 오후에는 디카페인을 마시자. 서울 직장인이라면 도보 10분 거리에 스타벅스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스타벅스가 아니더라도 이제 어느 카페를 가던지 "혹시 디카페인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도 좋겠다. 자꾸 더 많은 손님들이 물어보다 보면 우린 조금 더 많은 매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디카페인을 만날 수 있을 테고, 커피를 더 원 없이 마실 수 있을 것이다(사실 디카페인도 카페인이 아예 없지는 않아서 원 없이 마시면 안 된다).
'혹시 디카페인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