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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Dec 14. 2020

감정이 습관을 만든다


여의도 증권사에 다니던 2016년에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6개월 넘게 근력운동을 지속했다. 이전까지 나는 운동, 특히 근육을 키우는 워크아웃과 거리가 너무도 먼 사람이었다. 타고난 천성이 분명한 것이, 어려서부터 몸을 움직이는 그 어떤 일도 즐겁지 않았다.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TV를 보는 일이 더 자연스럽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운동이란 것을 6개월 이상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였다. 꾸준히 할 수밖에 없는 구속이 필요했다.


6개월 간 큰돈을 들여 PT(Personal Training)를 다녔다. 주 2회 한 시간씩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 근력운동을 배웠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최대한 헬스장에 나가려고 노력했다. 트레이너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내 체지방의 5kg 정도가 근육으로 바뀌었다. 운동하는 습관이 자리 잡은 건 덤이었다. 6개월의 PT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최소 주 3회 이상 혼자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놀라운 변화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운동을 하고 있다니.


이때 생각했다. 뭐든지 6개월 정도만 지속하면 습관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 지금 돌아보면 이건 착각이었다.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내 운동 습관을 만들어 준 건 6개월의 헬스장 출입이 아니라, 변화된 몸이 선사한 자긍심이었다. 만약 6개월 동안 그렇게 힘들게 꾸역꾸역 운동했는데도 가시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PT 종료와 함께 내 운동 루틴은 곧장 증발해버렸을 것이다. 중요한 건 지속 기간이 아니라 애초에 무엇이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했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긍정적인 감정이다. (때론 불굴의 의지, 동기, 인내 같은 것들이 도움이 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보통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저런 것들은 거의 항상 우리 편이 아니다.)


오랜 반복이 습관을 형성한다는 견해는 이제는 낡아버린 신화일 뿐이다. 습관은 감정이 만든다. 우리가 인스타그램이나 유투브에 습관적으로 접속하는 건 반복의 결과가 아니다. 자극적인 사진이나 영상이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우리는 만족이라는 감정으로 보상받는다. 내일 우리가 또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이유다. 반복은 습관 형성의 원인이 아니라 과정이자 결과다. ‘억지로 100일만 새벽 4시에 일어나면,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겠지’ 같은 생각이 어리석다는 건 군대 다녀온 사람은 다 아는 진리다. 2년을 같은 시간에 일어나도 전역한 다음날부터 도루묵이다. 단순 반복은 습관을 만들지 못한다.


조금 있으면 새해다. 누구나 새해에 바람직한 습관 하나쯤은 만들고 싶다. 2021년에는 감정의 역할에 더 주목해보자. 내가 습관화하고자 하는 행동 중 또는 직후에 좋은 감정을 연결시키도록 판을 짜야한다. 행위와 감정 사이에 시차가 있으면 안 된다. 가령 글 쓰는 습관을 기르고 싶다면 글을 쓰는 중이나 직후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와 초콜릿을 먹는 식이다. 글을 연인에게 보여주고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칭종(칭찬 종자)이다.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좋은 느낌은 우리를 또다시 노트북 앞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습관은 ‘기분 좋은 일의 반복’이다. 무슨 일이든 좋은 느낌과 연관 지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다. 이제 2021년 새해 목표를 정할 때 우리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기분 좋은 감정과 엮을 수 있을까?”


우린 이 질문에 답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뒷일은 좋은 느낌을 계속해서 추구하도록 생겨먹은 우리 뇌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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