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매일한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Jan 11. 2021

미국에 오면 살이 빠지는 이유

미국 집으로 돌아온 지 열흘이다. 드디어 어느 정도 시차적 응이 끝난 듯하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 따르면 보통 성인의 몸은 하루에 한 시간씩만 시차를 조정할 수 있다. 어리면 좀 더 빠르다. 한국과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동부 버지니아의 시차는 14시간이다. 즉, 14일은 지나야 완전히 시차 적응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더 일찍 시차 적응을 끝냈다고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완전한 인지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느낌'보다 더 시간이 걸린다.


한국에 머물렀던 지난 4개월의 시간 동안 3킬로 정도 찐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맛있는 게 너무 많다. 게다가 사 먹는 음식의 가격도 아주 저렴하다(적어도 미국 외식비와 비교하면 그렇다). 1인 가구는 직접 해 먹는 것보다 시켜먹는 게 더 싸다. 코로나로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한 것도 살을 찌우는 데 한 몫했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한국 겨울은 너무 춥다. 나가 걸어도 30분을 넘기기 힘들다. 춥지 않은 날은 미세먼지가 기승이다. 활동량이 많을 수 없다. 이런 여러 외부 조건이 살찌기 쉽게 만든다.


버지니아에 돌아오니 이 모든 조건들이 바뀌었다. 사 먹고 싶어도 그다지 맛있는 옵션이 많지 않다. 여기가 시골이라 그렇긴 하지만. 또, 사 먹으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기본적인 메뉴 가격도 한국보다 높지만, 여기다 세금과 팁이 붙으면 한국 외식비의 두배다. 자주 사 먹을 수 없다. 그나마 식자재가 싸서 집에서 더 많이 해 먹게 되는데, 바깥 음식보다 칼로리가 낮은 메뉴가 대부분이라 살이 빠진다.


결정적으로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는 건 날씨와 산책로다. 이곳 1월 겨울 날씨는 영하 5도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요즘도 1~15도 사이를 잘 벗어나지 않아서 한 번 나가면 꽤 오래 걸을 수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조깅하는 사람들도 많다. 집 주변이 복잡하지 않고 산책하기 쾌적하다. 깨끗한 공기와 좋은 날씨, 내가 굳이 미국에 사는 이유의 (거의) 전부다.


지난 열흘간 바뀐 건 내 의지나 목표가 아니라 오직 환경이다. 환경은 우리 행동, 더 나아가 습관을 좌우한다. 우리는 쉬운 일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돼있다. 즉, 살을 빼려면 살을 빼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의지나 동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살 빼기 더 쉽고 살찌기 더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 스스로를 던져 넣어야 한다. 영어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다.

Don't swim upstream.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지 말라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 머무르면서 의지, 힘, 노력으로 억지로 이겨내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에게 유리한 판을 짜야한다. 우린 어려운 일을 피하고, 결과는 나쁘더라도 더 쉬운 길을 택하는 습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애초에 야식을 사 먹지 못하도록(또는 어렵도록) 배민, 요기요 같은 앱들을 지워야 한다. 조금 더 시키기 어렵게 만들면 덜 시켜먹게 된다. 아니면 용돈을 더 빠듯하게 배정해서 먹고 싶어도 사 먹을 수 없는 상태로 자기를 몰아넣는 방법도 좋겠다. 더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면 주말에 미리 재료를 사다가 손질해두는 노력이 필요하다. 피곤한 평일에 집에 돌아와 다이어트 음식을 먹으려면, 먹기 쉽게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때 요리해 먹으려는 건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이다.


한국의 미세먼지, 날씨, 코로나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이므로 집에서 운동하기 쉬운 환경을 찾자. 추천하는 건 TV 앞에 소파가 아니라 사이클을 두는 것이다(트레드밀은 비싸니까). 그리고 원칙을 세운다. TV는 무조건 사이클 위에서만 본다. 도저히 운동하기 싫은 마음이라도 상관없다. 페달을 안 밟아도 그냥 사이클 안장에 앉아서 TV를 본다. 미드를 보다 보면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매일 사이클에 앉다 보면 살도 빠진다.


사는 곳이 미국이든 한국이든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환경을 잘 설계해야 한다. 목표가 멀게만 느껴질 때 스스로 자책하지 말고 환경을 탓하자. 그리고 힘써 바꾸자. 물살을 따라 수영해야 목적지로 가기 쉽다. 몸에 힘 빼고 수영을 오래 지속하기만 하면 된다.

Swim downstream.



커버 이미지: Photo by Brian Matangelo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목표는 쓰레기통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