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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meric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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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May 15. 2021

아 맞다 마스크!

육아를 하다 보면 요리라도 한 번 덜해서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 나와 아내가 먹을 밥을 하는 것이나 아이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 둘 다 삼시세끼 하긴 힘든 노릇이다. 그래서 올해는 학교 식당에서 포장 주문을 해서 자주 사 먹었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학교 시설들을 이용할 수 없게 된 학생들을 위해 학교는 학기별로 600 달러의 식사비를 지원해줬다. 한 학기 동안 종종 사 먹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학기 마지막 주였던 지난주에는 잔고가 100 달러쯤 남아서 80 달러짜리 킹크랩 특식을 사 먹었다. 학교가 내게 킹크랩을 대접한 셈이다. 재밌는 경험이다. 아무튼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딸아이까지 2 파운드나 되는 킹크랩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학교에 포장음식을 가지러 갈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마스크 때문이다. 차에서 급하게 내려 학교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찰나, 내가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당황스러움과 짜증이 동시에 솟구치는 순간이다. 마스크를 하고 있지 않는 느낌이 벌거벗은 느낌과 다를 바 없어서 당황스러웠고, 눈앞에 식당이 있는데 마스크를 가지러 다시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상황은 짜증을 일으켰다.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일 마스크가 어디 있는지 여기저기를 뒤지는 일이 일상이 됐고, 한 마스크를 2-3주씩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마스크 없는 내 얼굴을 남에게 보이는 일이나, 마주 걸어오는 사람의 마스크 없는 미소를 보는 일은 어색해졌다. 마스크 착용의 답답함은 안정감으로 대체됐고 인사 목적의 미소는 묵례가 대체했다. 지난 1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이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현지시간 13일 마스크 착용에 대한 권고사항을 완화했다. 완전히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들은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비행기나 병원 같은 예외적인 장소는 제외했지만 일상생활 공간 대부분에서 이제 마스크 없이 살아도 괜찮다는 선언이었다. 아직까지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마냥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 이른 조치라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백신을 거부하는 등의 이유로 백신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도 마스크를 안 하고 다니게 될 거라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런 여러 우려에 대해 CDC의 파우치 소장은 최근 연구 및 관찰에 따르면 백신의 위력이 매우 강력하다며 그 어떤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백신 접종자는 코로나로부터 매우 안전하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물론 CDC 발표는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이다. 연방 정부뿐 아니라 각 주정부의 결정이 중요하다. CDC가 뭐라고 하든 주정부가 올해 말까지 마스크를 벗지 말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옆동네에서 다 벗고 다니면 시민들의 불만에 그런 정책을 고수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지난 2년 간 살았고 또 곧 떠나게 될 버지니아는 오늘 14일 발빠른 결정을 내렸다. CDC 가이드라인에 따라 오늘 밤 자정부터 백신 접종자에 대한 마스크 착용 요구를 전면 해제한다는 소식이다. 꿈만 같은 얘기다. 이제 마스크를 찾으러 다시 주차장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되고, 없어진 마스크를 찾느라 온 가방을 다 뒤지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이제 버지니아의 신선한 공기를 마스크를 통하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 딸아이에게도 내 미소를 더 많이 보여줄 수 있게 돼 행복하고 감사하다.


마스크야 잘 가라, 다시 볼 때까지.

그리고 제발 너무 빨리 돌아오진 마라.



커버 이미지: Photo by Jacob Boavis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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