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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May 07. 2021

집값은 비슷한데 소득은...?

MBA 졸업이 코앞이다. 2년 간 지내온 이곳 버지니아를 떠나는 일도 이제 한 달이 채 안 남았다. 4월 들어 대부분의 학생들과 교수들 이 백신 접종을 마치게 돼서 이곳 코로나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덕분에 온라인에서 열릴 뻔했던 졸업식이 최대한 정상(?)에 가깝게 오프라인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다행이다. 2학년 내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미국에 유학을 와있는 건지, 그냥 방구석에서 온라인 석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만일 여기다 졸업식까지 방구석에서 하게 됐다면 그 허무함이란 게 쉽게 가시지 않았을 것 같다. 미국 졸업식 한 번은 경험해 보고 학생 시절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




새로 이사 갈 캘리포니아 집을 3주 전쯤에 확정하고 월세계약서에 서명까지 마쳤다. 미국에서 주거비가 비싸기로 뉴욕에 버금가는 베이 지역(Bay Area)에서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비싸기만 한 게 아니라 괜찮은 물건 자체가 별로 없다. 한국처럼 2-30년 지나면 건물을 때려 부쉬고 다시 짓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래된 아파트들만 넘쳐난다(새 아파트는 가뭄에 콩 나듯이 하나둘씩 나타나지만 대체로 가격이 부담스럽다). 미국의 오래된 아파트들은 방음도 잘 안되고 바퀴벌레 같은 벌레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 아파트에 300만 원 넘게 월세를 주고 살기는 싫다.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이번에 계약한 아파트 월세도 300만 원 대다. 정확히 말하면 요즘 환율 기준으로 월 380만 원. 숨만 쉬어도 하루에 13만 원 정도가 지대(rent)로 새어 나간다는 뜻이다.


한참 집을 구하려고 구글링을 하고 각종 플랫폼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월세 3-400만 원 정도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원룸이 아니고서야 300 아래는 없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얘기하다 미국 월세 얘기가 나오면 다들 '헉'하고 놀란다. 지난주에는 이모와 통화를 했는데, 내가 이사 가는 집 월세가 380만 원이라고 하니 하루라도 집을 빨리 구입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럴 돈도 없고 아직 어디에 정착할 계획도 없어서 내게 내집 마련은 먼 미래의 일이 될 거라고 웃고 말았다. 나는 내집 마련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빨리 하고 싶다고 느낀 적도 없다. 한 지역에 정착해서 살고 싶지 않은 나는 내집 마련에 회의적이다(그래서 부동산으로 돈 벌기는 글렀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런데 한국에 순수 월세(큰 보증금이 걸리지 않은 월세)가 흔하지 않을 뿐이지, 서울 주요 지역의 웬만한 아파트 매매가를 월세로 환산하면 절대 380만 원 아래는 아닐 것이다. 대강 계산해보자. 금리 3.5%를 가정했을 때, 내가 월 380만 원씩 내고 산다는 건, 경제적으로 13억짜리 자기소유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과 같다. 대출금을 끼고 있든지 아니든지 마찬가지다. 기회비용이냐 대출이자비용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제아무리 13억짜리 '내집'에 살고 있더라도 월 주거비가 380만 원씩 발생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물론 단순화된 계산이긴 하지만, 내가 서울 주요 지역과 비교해 절대 더 비싼 아파트에 살게 된 건 아니라는 결론이다. 서울과 샌프란시스코 지역 주거비는 비등비등하다.


차이는 소득에 있다. 나 같은 33세 직장인이 한국에서 기대할 수 있는 월급은 정말 운이 좋은 경우에 600만 원 선일 것이다. 실제 불과 2년 전 내가 여의도에서 받던 월급은 450만 원 근처였다. 이런 직장인이 380만 원씩 월세를 내고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지금 한국이었다면 맞벌이를 피할 수 없었을 거란 얘기다. 나라는 사람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나 역량도 비슷하다. 지난 2년 간 학위 하나를 더 받았을 뿐인데 여기서는 천만 원 이상의 월급을 준다. 물론 캘리포니아는 한국에 비해 세금을 많이 거둬가지만, 그걸 감안해도 비슷한 일을 해서 받을 수 있는 임금 수준의 격차는 크다. 그나마 미국이라서 나는 넉넉하진 않지만 혼자 벌어 한 가정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 내가 돌아갈 곳은 없다.


어느 기준으로 봐도 한국 아파트 가격은 너무 비싸다. 특히 중산층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시장에 돈이 차고 넘치는 요즘 세상에서 자산 가격이 비싸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내려갈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도 비싸지만 더 비싸질 수도 있다. 그래도 결국 마냥 오르기만 하는 자산은 있을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득으로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긴 힘들다. 의식주도 감당할 수 없는 월급을 받으며 모두가 서울에 마냥 붙어있는 건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턴어라운드 할 수밖에 없다. 월급이 오를 일은 절대 없으니 남은 건 집값 하락 뿐이다.


소득 대비 집값이 너무 비싸니 조만간 떨어질 거란 말을 하는 게 아니다. 한국 집값은 미국 대도시를 따라잡거나 추월했는데 소득격차는 벌어지기만 하는 현실에 소심하게 한탄해 보는 것뿐이다. 혼자 성실히 벌어 가족을 위한 지붕 하나 지탱하는 게 사치가 돼버린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을 뿐이다. '내집 마련'이란 꿈을 심어놓고 무책임하게 그 꿈을 짓밟는 사회의 부조리에 마음이 불편할 뿐이다.




누가 뭐라든 오를 집값은 더더욱 오르고 청년들의 '영끌투자'는 계속되겠지.

파티가 끝나고,

수영장 물이 빠져,

누가 발가벗고 있었는지가 드러날 때까지.

그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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