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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meric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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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Feb 23. 2022

미국에 집을 사버렸다

2700km 떨어진 낯선 땅에 신축 주택을 구입한 이유

주택 구매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7,500 달러를 계약금으로 입금했다. 이것으로 나는 생애 첫 주택을 가지게 됐다. 그것도 이주한 지 채 3년이 안 된 미국에서 말이다.



지금 거주하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2700km나 떨어진 텍사스 달라스 지역에 위치한 주택을 구매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우선, 샌프란시스코 지역엔 내가 살 수 있는 살만한 집이 (거의) 없다. 학군이 좋고 안전한 지역이면 원화로 15억 원을 훌쩍 넘어가기 때문에 내 외벌이로는 감당이 안 된다. 빚으로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더라도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대게 30년이 훌쩍 넘은 조그만 집들이기 때문이다. 괜히 캘리포니아, 특히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노숙자들이 그렇게 많은 게 아니다. 그만큼 주택 공급은 부족하고 가격은 비합리적으로 비싸다.


렌트로 눈을 돌린다고 달라질 건 별로 없다. 2021년에만 렌트비는 15% 넘게 뛰어올랐다. 내가 지금 내고 있는 렌트비만 원화로 400만 원 정도인데, 5월에 리스를 갱신하게 되면 440만 원으로 오른다는 얘기다(월세 인인상은 1년에 최대 10%로 규제). 연봉은 기껏해야 3-4% 정도 오를 텐데, 감당하기 너무 힘든 수준의 인플레이션이다. 원래 렌트의 장점은 유연성인데 이 지역은 렌트 공급도 충분치 않아 이곳저곳 입맛에 맞게 옮기는 것도 여의치 않다. 6개월 넘게 매일같이 Zillow에서 이사 갈 곳을 찾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곳은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와중 가격은 계속 올랐다.


주거 문제로 걱정이 늘어가던 중 달라스 관련 소식을 팟캐스트에서 듣게 됐다. 매년 상당수의 사람들이 뉴욕, 캘리포니아, 시카고를 떠나 텍사스 내 달라스 메트로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왜 다른 곳도 아니고 텍사스일까? 궁금해졌고, 유튜브와 구글을 뒤지기 시작했다. 2-3주에 걸쳐 미친 듯이 달라스에 대해 공부했던 것 같다. 그 무엇보다 달라스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퀄리티 높은 주택들이었다. 공립학교 학군이 좋다는 점도 이내 알게 됐다. 학군 좋은 지역에 큼지막하고 멋진 주택을 4분의 1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니, 아이가 있는 부모로서 '이거다!' 싶은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주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사에 가장 큰 걸림돌은 직장이다. 어디에 살던 월급 나올 곳은 필요하니까. 이런 점에서 나는 이보다 행운일 수 없었다. 코로나가 선물해준 재택근무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변화에 적응하기로 하고 유연한 근무환경을 도입했다. 요지는 회사에 나오든지 집에서 일하든지 직원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는 굳이 이곳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묶여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물론 가끔 회사에 나가 동료들과 임원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관계를 구축하는 게 커리어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있지만, 어차피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게 인생인 것을. 나는 기꺼이 유연성과 재택근무를 택했다.


일을 시작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점에 팀장에게 이주를 요청한다는 게 살짝 부담스럽긴 했다(마음대로 근무지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주State를 옮기는 건 임금 및 세금 관련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팀장과 인사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역시 내 팀장은 쿨했다.


"나 텍사스로 이주하고 싶어. 이곳 캘리포니아는 주거비 및 기타 물가가 너무 비싸서 말이야. 괜찮을까?"

"그래? 텍사스로 이주하면 연봉이 현지 수준에 맞춰서 조금 조정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어. 그건 이미 인사팀에 문의하고 답변 들었어. 내 입장에선 문제 안 되는 수준이야."

"그래. 네가 마음 편하게 일할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게 맞지. 내가 인사팀과 상의해서 사전승인 절차 진행할게. 언제부터 옮길 거야?"


2700km 떨어진 타주로 팀원이 옮겨가는데 필요한 대화는 이게 전부였다. 혹시나 팀장 또는 인사팀이 호의적이지 않으면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링트인을 매일 기웃거리고 레주메를 고쳐 쓰고 있었는데, 이날 팀장과 대화한 이후에 바로 접었다. 여기보다 좋은 회사를 찾는 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닐 거란 확신이 들어서다.



다음 편에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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