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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un 30. 2019

미국 정착기: IKEA 조립지옥

6월 13일 미국에 도착해 이후 지금까지 정착 과정을 딱 두 단어로 정리하면 Amazon과 IKEA다. Amazon에서 생필품 90%를 주문해서 배송받았고, 가구 90% 역시 IKEA 온라인 스토어에서 주문했다. Amazon은 거의 모든 배송이 공짜고, IKEA는 공짜는 아니지만 한 번에 워낙 많은 가구를 주문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IKEA가 내 손으로 직접 조립하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고 하는데, 난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냥 가장 싼 옵션이라 IKEA를 선택했다. 그리고 한 번에 150만 원 넘게 배송시켰다: 침대 프레임, 높이 조절 가능한 수동 책상, 2층으로 쌓을 수 있는 게스트용 침대 2개, 아일랜드 식탁용 의자 2개, TV 장식장, 플라스틱 서랍장 2개, 신발 정리 선반 3개, 전동 드릴 1개, 작은 정리박스 6개, 휴식용 의자 1개 + 의자 발받침 1개.



믿기 어렵게도 온라인에서 주문/결제한 지 거의 2주 만에 이 모든 상품들이 한 번에 배송됐다. 아무리 미국이지만 너무 느려서 취소하고 싶었지만 달리 다른 선택지도 별로 없는대다 이 놈의 IKEA는 온라인 구매는 가능해도 온라인 주문 수정/취소는 불가능하다. 21세기에 전화로 상품 주문을 취소해야 한다니. 그것도 전화해서 30분 넘게 상담원을 기다려야 한다니, IKEA의 고객 서비스는 아마존과 비교 불가하다는 걸 배웠다. 아마존에서 물건 한 번만 환불해 보면 알게 된다 그 위대함(?)을.


아무튼 배송 폭탄을 받음과 동시에 내 조립지옥이 시작됐다.



이틀이 꼬박 걸린 것 같다. 아무튼 다 빠진 나사 없이 잘 조립해 놓고 나니 이제 좀 사람 사는 집이 된 것 같다. 가구 조립하는 것도 나름 재밌긴 하지만, 이렇게 몰아서 많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다음 이사 갈 땐 누가 만들어 놓은 가구를 살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겠다는 난데없는 동기부여(?)도 생겼다.



업무용 의자는 아마존에서 구입 후 조립했고, 침대 매트리스는 Casper에서 온라인 주문했다. 소파는 Wayfair에서 구매했다. Wayfair는 상상 이상의 고객사랑을 보여줬는데, 100kg은 나갈 것 같은 3인용 소파를 우리 집 앞이 아니라 우리 아파트 정문 앞에 배송해놓고 달아났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파트 1층 현관에 소파를 던져놓고 갈 수가 있을까. 심지어 그때 난 집에서 소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 없이... 기필코 다시는 Wayfair와 거래하지 않는다. 절대. Never. 사실 IKEA도 저질 수준의 배송 서비스를 보여줬는데, 그래도 최소한 집 앞까지는 가져다줬다. 뭐 아무튼 이제 조립 지옥에서 벗어나 행복하다.




집 세팅이 거의 끝나고 여유가 생겨서 아내를 데리고 내가 여름부터 다니게 될 MBA 학교(University of Virginia Darden School of Business)에 산책을 갔다. 캠퍼스는 무엇을 상상하던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왜 이곳 캠퍼스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는지를 두 눈으로 처음 확인한 거다. 뭐,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낸 피땀 묻은 등록금으로 이런 비싼 건물을 짓는 건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팩트는, 미국 학교들은 대부분 동문들의 어마어마한 기부금으로 건물을 지어 올린다는 거다. 나도 훗날 건물 기부를 하면 건물 이름에 내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다. 꿈꾸는 건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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