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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Oct 15. 2019

MBA 1학기 끝

기대 vs. 실제

불꽃같았던 MBA 첫 학기(쿼터)가 끝났다. 마치 6주가 6개월처럼 느껴진 시간이었다. 재밌는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지난 6주의 대부분은 내게 성장통으로 다가왔다. 여태까지 줄곧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서 그런지 학교에서 정해준 일정을 그저 꾸역꾸역 소화해나가는 게 꽤나 버거웠다. 역시 나는 바쁘게 열심히 사는 것보다 남이 시킨 대로 하는 게 힘든 스타일이다.


아무튼 첫 학기도 끝났으니 내가 상상했던 MBA 경험과 지난 학기 동안 실제로 겪은 MBA가 어떻게 달랐는지 돌아봤다.


케이스 수업 (Case Method)

미국 Top 15 MBA 프로그램 중에 모든 수업을 Case method 방식으로 진행하는 곳은 하버드(HBS)와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다든(Darden) 뿐이다. 케이스 방식은 교수가 교과서를 토대로 사실(fact)을 학생들에게 전달(혹은 주입)하는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작성된 케이스를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배우는 방식의 수업이다. 교수는 90%의 시간을 토론을 중재하는 데 쓰고, 모든 답(의견, 생각, 경험)은 학생들에게서 나온다. 사실 이 케이스 수업이란 게 직접 해보지 않고는 감이 잘 안 온다. 일단 강의 형식 수업은 지겨워서 절대 더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든이 운영하는 케이스 방식에 대한 기대가 컸다. 대다수 다른 학생들도 같은 기대를 가지고 다든을 선택한다.


나는 MBA 2년 동안 영어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었기 때문에 케이스 방식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또 미국 친구들의 발표를 많이 들으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실제 6주간 케이스 방식 수업을 들어보니 이 두 기대 모두 충족됐다. 우선 매일 한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생각(성적의 20~40% 비중이 수업 참여다)이 들기 때문에 뭐라도 한마디는 하게 된다. 바보 같은 발언을 하기 싫기 때문에 어떻게 똑똑한(?) 문장을 만들지 생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좋은 영어 문장을 빠르게 입으로 뱉는 훈련을 하게 된다. 


또 Leading Organization(리더십 과목) 같은 수업에서는 자기가 자라온 배경이나 겪었던 어려움들, 인종차별과 남녀차별 등 민감한 사회이슈에 대한 토론을 통해 미국 사람들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흑인 친구들이 오늘날 미국 인종차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백인 친구들은 반대편에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듣고 있으면 꽤나 흥미롭다. 내 입장에서는 보탤 얘기가 많지 않아 대화에 끼어드는 건 좀 힘들었다. 우리나라엔 이런 대화 기회 자체가 많이 없기 때문에 더 생소하고 어려웠다.


케이스 방식이라고 다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단점은 불확실성(?)이다. 실제 있었던 사건들과 데이터를 통해 공부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다. 똑 부러지는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도 가능하고 저것도 가능하다는 게 대부분 수업의 결론이다. 항상 정답을 찍는 교육만 받아왔던 한국 또는 중국 학생들에겐 특히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수업을 듣고 나서도 꽤나 많은 학생들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그나마 정답(?)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할 수 있는 Finance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많은 학생들이 금융권에서 일하다 온 나 같은 친구들에게 많은 질문을 날린다. 즉, 수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많다는 거다. 더 많은 질문을 낳는 토론 수업이라니... 물론 이런 불확실성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서 더 좋다는 게 다든의 입장이다. 현실 기업 상황에서도 정해진 답이 없고, 데이터는 불완전하며, 선택에 있어 그 결과를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취업 자원 (career resource)

MBA는 취업 훈련학교다. 처음부터 목적이 공부가 아니고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거다. 그래서 8월 말에 학교가 시작하는데 어이없게 9월부터 구직을 시작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나서 그 학위로 구직을 하는 게 아니라, '나 좋은 학교 들어왔으니 기본은 증명했다' 이런 시스템이랄까. 실제로 좋은 MBA 프로그램의 기준 중 중요한 것이 기업들이 얼마나 그 MBA 학생들을 뽑고 싶어 하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다든은 컨설팅 업계에서 매우 좋아하는 학교다. 2019년 졸업생 기준으로 40%가 맥킨지, BCG, 베인 등 컨설팅 회사에 취업했다.


내가 미국 MBA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미국 취업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MBA 프로그램에 들어간다고 한들 요즘 외국인의 미국 취업은 쉽지 않다는 말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취업비자 받기가 어려운 건 두 말할 필요도 없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엔 외국인 채용 자체를 꺼려하는 기업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와보니 미국 취업은 듣던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아직 1학기만 지났기 때문에 이 부분에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외국인에게 채용문을 열어놓은 기업 자체가 많이 없다. 그나마도 우리가 알만한 미국 기업으로 시야를 좁히면,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미국 내 기업 리스트로 A4용지 반장을 채우기 힘들다.


어쨌든 수많은 기업들이 매일 학교를 찾아오는 건 사실이다. 학교와 약속된 시간에 이 곳 버지니아 샬로츠빌까지 날아와 회사 소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오피스아워라고 하는 개인 Q&A 시간을 제공하고, 또 해피아워라고 불리는 네트워킹도 진행한다. 회사들은 크게 high-touch냐 low-touch냐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high-touch란 말은 그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선 학교에 찾아온 HR 사람들 또는 그 회사에 일하고 있는 다든 동문들에게 자기 존재를 각인시키고 어필해야 한다는 뜻이다. 


Investment bank와 consulting 회사들이 모두 high-touch에 속한다. 사람 하나 뽑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네트워킹을 요구한다. Investment bank를 노리는 친구들은 매일같이 가고 싶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전화통화로 관계를 구축하느라 전화기를 붙잡고 산다. 지난주 BCG(보스턴 컨설팅)은 20명이 넘는 컨설턴트들을 데리고 학교에 나타나 네트워킹 행사를 가졌다. 아니, 채용 좀 하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뭐 잘 이해 가진 않지만 확실히 이런 점에서 꼭 MBA 과정을 거쳐야 갈 수 있는 회사와 포지션들이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이런 회사들이 학교에 찾아오는 이벤트들 말고도 학교 취업센터에서 제공하는 자원들은 많이 있다. 레주메 특강, 커버레터 특강, 레주메 피드백, 네트워킹 방법 세미나, 산업별 인터뷰 전략 세미나, 개인 취업 컨설팅, 2학년 멘토링 프로그램 등이 그것들이다. 다만 이것들이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는 아직 좀 의심스럽다. 다 저런 식으로 똑같은 전략을 취하면 결국 누가 이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마이너리티인 외국인 학생 입장에서 말이다. 3주 정도가 지나고 나니까 '아, 미국애들이랑 같은 전략으로 가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 뭐 물론 '그 대신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 구체적 생각이 아직 있는 것도 아닌 게 문제다. 어쨌든 뭔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건 확실하다.


사람 (community)

다든은 외국인 비율이 30%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미국인 비율이 아주 높은 MBA다. 학년당 학생수는 340명으로 중간 수준이고, 여성의 비율은 40%다. 40% 정도가 기혼 또는 거의(?) 기혼이고, 15% 정도가 자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 혼자 짐작하고 있다. 샬로츠빌이 워낙 시골이다 보니 학생들 간 관계는 아주 가까울 수밖에 없다. 같이 안 놀면 따로 혼자 할 게 없는 작은 커뮤니티기 때문이다. 흔히 MBA application 과정에서 많이 듣는 close-knit community다.


지난 브런치 글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아무래도 커뮤니티를 워낙 강조하는 학교다 보니 시작부터 친목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지속되고 있다. 억지로 엮고 엮다 보니 결국은 모두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고, 적어도 같은 학년 340명 학생들의 얼굴은 대강 아는 레벨로 가는 것 같다. 물론 나는 하위 5% 소셜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절반밖에 얼굴을 모를 거다. 그래도 만약에 한 학년에 700명씩 되는 학교, 그것도 대도시에 있는 학교에 갔다면 이만큼 친목을 쌓을 수도 없었을 게 확실히다. 대도시 캠퍼스 속 700명 학생들 사이에선 조용히 숨어 살아도 티도 안 나기 때문이다. 여기엔 숨을 곳이 별로 없다.


한 반(section)은 65명 정도로 이뤄져 있고 1학년 동안엔 매일 모든 수업을 같이 듣는다. 다시 초등학교에 온 느낌이랄까. 평균 나이가 28살 정도가 되는 어른들인데도 미국 친구들은 참 순수한 것 같다. 파티나 운동회에 가면 다들 영락없는 20대 초반 대학생 같다. 기혼인 친구들은 아무래도 나와 통하는 점이 더 많아서, 같이 부부 동반 식사를 하기도 하고 와이너리에 가기도 한다. 모두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대부분 착하고 친절한 좋은 사람들이다. 미국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 문화를 가까이서 배울 수 있다는 게 MBA의 큰 장점이라고 느끼고 있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국 친구들과 친해지는 건 중국 친구들과 친해지는 데 비해 두 배 이상 노력이 든다는 점이 어렵긴 하지만.




정리하자면 1) 케이스 수업은 그 단점에도 불구하고 강의식 수업에 비해 확실한 장점이 많아 기대 이상이고, 2) MBA 취업 자원은 놀랍도록 넘쳐나지만 여전히 외국인에게 미국 취업은 외로운 싸움이란 게 현실이고, 3)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나 같은 안티소셜도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다든 커뮤니티가 만족스럽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해져 가는 건 MBA가 내게 꼭 맞는 옷은 아니라는 점이다. 2년 뒤에 내가 얼마나 성장해서 MBA란 옷에 맞춰져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불편하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내가 MBA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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