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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Dec 22. 2019

MBA 리크루팅: 뭐 하고 살지?

내 가치관 돌아보기

MBA 여름 인턴쉽을 위한 구직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졸업하고 뭐 하고 살지 모르겠다. 다수의 친구들은 뱅킹이다, 컨설팅이다 하고 싶은 일들이 뚜렷한 것 같은데, 난 전혀 아니다. 사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내가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에 대해 뚜렷하게 인지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기 길에 대해서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부러웠다. '하고 싶다. 되고 싶다'하는 생각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꼭 그런 게 뚜렷해야 하는 걸까?


적어도 취업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뚜렷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 같다. 우선, 제한된 시간에 커버레터를 쓰거나 인터뷰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업계나 회사마다 요구하는 인터뷰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 번에 퉁으로 준비할 수가 없다. 컨설팅 리크루팅은 '케이스 인터뷰'라는 걸 준비해야 하고, 테크 회사 인터뷰를 위해서는 개별 회사의 문화나 각종 제품들을 나름 깊이 있게 공부해놔야 한다. 뱅킹은 수많은 네트워킹과 파이낸스 지식 복습을 요구하고, GMO라고 불리는 경영기획/마케팅 분야 취업은 또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때문에 이 중 내가 뭘 가장 하고 싶은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시간과 노력을 배분해야 한다.


나도 우선순위를 정할 때가 됐다. 11월이 이곳저곳에다 레쥬메를 뿌리는 시간이었다면, 12월은 1월에 있을 인터뷰들을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제 Blackrock에서 서류통과 소식과 함께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이걸 받고 '아, 진짜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Blackrock은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운용하는 글로벌 자산운용회사다. 사실 금융업을 떠나고 싶어 MBA를 선택한 나로서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 기회였지만, 혹시나 싶어 지난달 resume를 넣었었다. 역시 내가 하고 싶든 하기 싫든 내 경력상 자산운용회사에 fit이 잘 맞았나 보다. Blackrock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각각 인터뷰 요청을 보내왔다.


문제는 이 인터뷰들을 덥석 '감사합니다' 하고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패스할 것인지다. 단순히 생각하면 '외국인 미국 취업도 어려운데 무슨 업계 무슨 기업이든 인터뷰 기회를 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해야지. 일단 최대한 합격하고 나서 그중에 일하고 싶은 기업에 가면 되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말 일하고 싶은 업계와 기업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야지. 어차피 관심 없는 회사에 붙더라도 나한테 안 맞으면 금방 때려치울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없겠지만 일단 이제 1월에 아이 아빠가 되는 마당에 아무 회사나 가서 다녀보고 마음대로 때려치울 수도 없는 마당에, 전자처럼 그렇게 안일하게 마음먹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진짜 내가 뭘 하고 살고 싶은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킨들에 담아두었던 self-awareness에 대한 책 Insight: The Surprising Truth About How Others See Us, How We See Ourselves, and Why the Answers Matter More Than We Think를 펴 들었다. 아직 앞부분만 읽었지만 평점이나 추천에 비해 생각보다 별로인 책이다. 그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예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한달까. 아무튼 책 자체는 비추다. 하지만 내가 어떤 가치(value)를 추구하는지 무슨 일에 열정(passion)이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참고서 정도로는 괜찮은 것 같다. 부록을 이용해서 우선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부터  다시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부록에 나열된  단어 중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들에 해당되는 단어들을 선택해 모두 나열해봤다:


Honesty, Integrity, Growth, Responsibility, Honor, Professionalism, Expertise, Openness, Flexibility, Justice, Mastery, Rationality, Simplicity, Autonomy, Commitment, Compassion, Courtesy, Pleasure, Fitness, Generosity, Genuineness, Inner peace, Nonconformity, Purpose, Self-esteem, Virtue.


엄청 많아 보이지만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끼리 모아 그룹을 만들고 나니 다섯 개 가치관으로 추려졌다:


1. Honesty, Virtue, Honor, Integrity, Justice, Rationality, Genuineness

=> 합리적이고 진실된 행동.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 정의와 덕 추구


2. Growth, Responsibility, Expertise, Professionalism, Mastery, Simplicity, Commitment, Purpose, Self-esteem

=> 높은 전문성에서 오는 간결함. 책임감과 헌신. 사명감에서 비롯된 끝없는 성장


3. Openness, Flexibility, Autonomy, Nonconformity

=> 유연성과 개방성 유지. 능동적인 현실 부정, 정답에 대한 의심


4. Compassion, Courtesy, Generosity

=> 연민. 받은 것 배로 베풀기


5. Pleasure, Inner peace, Fitness

=> 몸과 마음의 평화에서 오는 기쁨


이것들이 내가 살면서 추구하고 싶은 가치관이고, 여기에 반하는 모습으로 살 때 삶에 대한 불만족이 올라오는 것 같다. 지난 직장을 돌아보면 저 다섯 가지 가치 중 단 하나도 충족되는 게 없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불편했고, 베풀기는커녕 특정 소수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는 조직이었다. 유연성과 개방성은 물론 낮았고, 사명감이나 전문성 따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궁극적으로 내 양심에 떳떳하지 못한 직장이었고, 불과 몇 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뭐 저런 가치관에 다 부합할 회사가 어디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곳이 결국은 있을 거라고 믿고 개방성을 유지하는 것도 내 가치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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