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Jan 01. 2020

게임 캐릭터만큼 넌 성장하고 있니?

커버 이미지: Photo by JESHOOTS.COM on Unsplash


난 게임에는 크게 취미가 없는 사람이다. 모바일 게임은 금방 실증 나서 하루 넘게 해 본 적이 없고, PC 게임은 중학교 때 실컷 한 뒤 질려버렸다. 그래도 아직까지 가끔 즐기는 게임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위닝일레븐'이라는 축구 게임이다. 원래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많이 하는 게임이지만, 게임 하나 하려고 그 비싼 걸 살 순 없으니 그냥 2만 원짜리 게임패드(조이스틱) 하나 사서 노트북에 설치해 플레이한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꾸준히 했으니 벌써 10년 차다.


MBA와 Data 석사 공부를 하면서 학기 중에 게임할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12월 겨울 방학에 접어들면서 모처럼 여유가 생겨서 하루에 한 시간 남짓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친구와 함께 1 대 1 매치 플레이를 해야 훨씬 재미난 게임이라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게임은 축구게임이다. 게임 모드 중에 선수 한 명을 골라서 키우는 'Become a legend'라는 모드가 있다. 실존하는 손흥민 같은 선수를 선택해서 키울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이름으로 축구선수 하나를 생성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 좋은 팀에서 뛸 수밖에 없어서 키우는 게 여러모로 짜증 나긴 하지만 뭐 그게 RPG 게임들의 묘미 아닌가.


아무튼 내 이름을 가진 선수 Jay Choi는 프리미어리 하위 팀에서 공격수로서 열심히 성장 중이다. 데뷔 첫 시즌에 나름 골도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열심히 키운 보람을 느끼는 중이다. 지난 5개월 간 너무 바쁘게 살다 방학을 하니까 인터뷰 준비든 공부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에 빠져 게임을 좀 많이 했다. 하루는 아침을 먹고 아내에게 "나 방에 가서 Jay Choi 좀 키우고 올게" 하면서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한마디 했다. "현실의 Jay Choi는 성장하고 있니?" 진짜 빵 터지면서도 매우 뼈가 아픈 말이었다. 심장도 아파왔다. 그래, 게임 캐릭터는 열심히 키우고 있는데 정작 현실의 난 요즘 성장이 정체된 느낌이었지. 순간 하마터면 위닝일레븐 접을 뻔했다.


아내가 저 질문을 한 지난주 이후, 난 여전히 게임을 조금씩 하고 있지만 패턴은 바뀌었다. 전에는 그저 심심하면 게임패드를 붙잡고 한두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지금은 스스로 '아 오늘은 이런저런 일들을 했고 이 정도 성장했으니까 게임 조금 해도 괜찮겠다'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안 들면 죄책감 때문에 게임도 못하겠다. 적어도 게임 캐릭터보다는 내가 더 성장해야 될 것 아닌가. 게임 속 Jay Choi 보다는 적어도 현실 속 Jay Choi가 더 멋지게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정말 참 매우 아주 엄청 꼰대 같은 질문이지만 2020년 새해 계속 내 맘에 남을 질문이 될 것 같다.


여러분은 오늘 적어도 게임 캐릭터만큼은 성장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가 뭐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