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Jan 04. 2020

뉴욕에서 본 첫 면접 후기

컨설팅 회사(Bain 서울오피스) 면접을 위해 뉴욕 맨해튼으로 날아왔다. MBA 입학 이후 처음 보는 대면 면접이고, 2015년 대졸 신입 면접 이후 회사 면접은 5년 만이다. 1차 면접 결과는 어쩌면 이 글을 다 쓰기 전에 나올 것이고, 1차 면접이 통과됐다면 내일 바로 최종면접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내일도 결과가 좋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채용 오퍼를 준다고 한다. 여러가지 좋은 점이 눈에 띄는 면접 프로세스인데 우선 결과를 빨리 알려줘서 좋고, 뉴욕 이틀간 체류 비용을 충분히 지원해줘서 더 좋다. 땅이 큰 미국에서 회사가 면접자의 교통/숙박 비용을 처리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왕복 비행기 티켓에 2박 맨해튼 호텔비, 식비, 택시비까지 이렇게 충분하고 편리하게 처리해 주는 건 꽤나 감동적인 일이다. 돌아보면 한국에서 대졸 면접 볼 때 받는 몇만 원으로는 KTX 교통비도 충당할 수 없었다. 아니 심지어 입사 이후 업무 관련 택시비도 치사하게 제한하거나 따로 허락을 받아야 했던걸 생각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직원한테도 그렇게 야박한데 면접자에게 관대할 턱이 없지.


미국은 지금 날씨가 매우 이상하다. 12월 중순부터 1월 초인 지금까지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다. 지금도 맨해튼은 가랑비가 내리고 있고, 패딩을 입으면 더울 정도의 늦가을 날씨다. 아침부터 정장을 빼입고 호텔을 나와 맨해튼 거리를 활보하니까 마치 뉴욕 직장인이 된 듯한 느낌이 잠깐이나마 들었다. '이런 게 미드에서 보던 직장인의 아침 일상인가' 싶다기 보단 '아 잠깐은 모르지만 난 여기서 오래 살긴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게 뉴욕은 그냥 관객 많고 지하철 더러운, 조금은 더 운치 있지만 지저분하고 복잡한 또 다른 서울일 뿐이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미국까지 MBA를 왔는데 다시 뉴욕에 만약 정착하게 되면 뭔가 한국 돌아가는 느낌일 것 같다. 뭐 이것도 어디든 인턴쉽 오퍼를 받고 나서 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서울 대 뉴욕이라면 난 일단 뉴욕이다. 최소한 공기는 좋으니까. 난 정말 미세먼지가 싫다.


오늘 컨설팅 케이스 면접은 생각보다 평이했다. 확실히 받은 느낌은 케이싱 자체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지, 어떻게 대화/토론을 이끌어 가는지, 얼마나 잘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지가 중요했던 것 같다. 결국 면접도 사람을 설득하는 한 방식일 뿐이니까. 자산운용회사에 다닐 때 면접관으로서 신입사원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일개 대리 주제에 참여했던 면접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면접관의 위치에 앉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알게 해 준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때 면접관으로서 난 책상 반대편에 앉아있는 면접자들의 능력(?)에 대해서 1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말하는지에만 신경 썼을 뿐이다. 결국 알맹이는 못 보고 힌트만 본 뒤, 알맹이는 예상만 하는 거다.


본래 면접관이 알고 싶어야 할 팩트는 '이 사람은 이 포지션에 적합한 능력/인성/의지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하지만 이건 단순 문답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때문에 다른 질문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유추하려는 것인데, 실제로는 다른 질문에서 그냥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이 사람은 설득력 있게 말을 잘하는가?' 또는 '이 사람은 호감형인가?'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사람을 평가를 하는 거다. 이 중 최악은 '이 사람은 면접 준비를 열심히 했는가?'다. 쉬운 질문에 대한 쉬운 답이 원래 했어야 할 어려운 질문과 얻지 못한 답을 대신한다는 말이다. 금융 관련 예를 들자면 이렇다: 내일 삼성전자 주식이 오를지 내릴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고 치자. 하지만 누구한테 '내일 삼성전자 주식이 오를까요 내릴까요?'하고 물어봤자 답(알맹이)을 얻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나 매니저들이 그 대신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작년 같은 날 삼성전자 주식을 올랐나 내렸나?', '지난 1년 동안 하루 기준 삼성전자 주식이 상승 마감한 확률은 어떤가?', '내일 코스피는 오를까 내릴까?' 등이다. 이런 질문들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그저 잘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이 애초에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란 것뿐이다. 우린 자주 이런식으로 잘못된 질문에 대한 맞는 대답으로, 당면한 문제와는 동떨어진 판단을 내린다. 다시 생각해봐도 면접자가 면접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고 얼마나 열정적인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향후 퍼포먼스에 대한 매우 빈약한(poor) 예상 지표(proxy)다. 나는 AI, 머신러닝이 이런 점에서 인간의 의사결정을 도와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가볍게 뉴욕 인터 후기를 쓰려다가 너무 멀리 돌아왔다:

- 베인은 면접자를 매우 존중해주는 좋은 employer다

- 뉴욕 한인타운 32번가 BBQ 치킨은 최고다. 한국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맛이 나고 닭은 훨씬 더 크다

- 면접은 언제나 면접관을 설득하는 일이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뛰어난지, 똑똑하고 일 잘하는지가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거다

- 미국 날씨가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건 버지니아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뉴욕의 1월 3일 오늘도 따뜻하다

- 글 쓰는 사이 내일 최종면접 초대를 받았다. 내일 난 첫 MBA 인턴쉽 오퍼를 받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 캐릭터만큼 넌 성장하고 있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