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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an 13. 2020

내가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

지난주 뉴욕에서 봤던 MBA 인턴쉽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엄청 바랐던 기회는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건 언제나 기분 나쁜 일이다. 소개팅에 나가서 그저 그런 상대에게 내가 먼저 거절당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거절을 해도 내가 했어야 하는데 싶은 찝찝한 기분. 아무튼 그 면접이 나에게는 내가 MBA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유일한 가능성이었는데, 이제 그걸 놓쳤으니 앞으로 최소 몇 년은 미국에 살게 될 것 같다.


이틀간의 면접을 머릿속으로 되감기 해보며 내가 떨어진 이유를 생각해봤다. 정확한 이유야 회사 측만 알겠지만, 최대한 면접관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려고 머리를 많이 굴려봤다:


1. '적당한' 간절함의 부족

나는 대놓고 말했다. 컨설팅을 전에 고려해 본 적도 없고, 가까운 지인 중에 컨설팅하는 사람도 없어서 아직 특별한 열정은 없다고. 하지만 지금껏 만나본 귀사 사람들이 젠틀하고 스마트해 보여서 관심을 가지고 탐색해보려 한다고. 현재 컨설팅뿐 아니라 바이오제약사와 테크 기업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사실 이렇게 모든 걸 맘에 있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건 언제나 도박이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어쨌든 사람을 뽑는 인사팀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충성심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너무 과하면 없어 보인다는 그런 적당한 간절함에서 엿보이는 충성심. 내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이 '그 회사를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일하고 싶어 하는가'는 그 사람이 그 조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어떤 정보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코카콜라를 매우 사랑한다. 콜라를 만들어 주는 그 회사도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이 날 채용한다고 해서, 내가 콜라 좋아한다고 해서 더 열심히 일하거나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correlation과 causation은 다르니까. 난 증권사에서 일할 당시 매우 열심히 일하고 또 나름 잘했지만, 그 회사에 대한 애정은 1도 없었고, 원래부터 그 일이 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느 곳에 있든 흥미로운 문제가 앞에 있으면 그걸 푸는 게 재밌을 뿐이다.


아무튼 난 이번 면접에서 그 최소한의 충성심과 간절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난 웬만하면 모든 면접에서 헛소리 없이 솔직하게 임하려고 한다. 물론 최대한 잘 포장하면서 말이다. 이번에는 이 부분이 내 채용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해본다.


2. 케이스 인터뷰에서 보여준 평범한 퍼포먼스

객관적으로 이번 컨설팅 케이스 인터뷰에서 내 퍼포먼스는 평이했다. 뛰어나서 쉽게 합격할 정도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조건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 불합격받을 퍼포먼스도 아니었다. 결국 다른 조건이 뒤떨어졌다는 게 결론이다. 총 네 번의 케이스 인터뷰 중 첫 세 번은 평균을 살짝 넘을 정도로 나름 괜찮게 했고, 마지막 4회 차 인터뷰에서 좀 말아먹었다. 여기서 중간만 했어도 붙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하필 마지막 면접관이 좀 나와 안 맞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답을 정해놓고 그쪽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면서, 막상 따라가다 보면 수동적으로 하지 말고 당신이 리드하라는 식이었다. 일부러 압박 면접을 하는 거라 마음으로 이해는 갔지만 내가 평정심을 잘 유지하지 못했다. 특히 내 설명에 대한 딴지가 많았는데, 물론 내 설명과 논리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그분의 이해도도 그렇게 높아 보이진 않았다. 그분도 자기 논리로 날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3. 운(?)

채용과정에서 운은 항상 크게 작용한다.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갔었던 전 직장 신입 채용과정도 돌이켜보면, 면접자들의 스펙이나 인상 등 크게 누구 하나 떨어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뽑힌 사람은 그냥 차장님이 랜덤 하게 '그래도 얘가 젤 나을 것 같아'하는 면접자였다. 이번 내 컨설팅 면접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항상 변수가 많기 때문에 어떤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너무 자기 탓만 할 일은 아니다. 특히 나와 안 맞았던 4번 면접관이 MBA 리쿠르팅을 담당하는 분이었는데, 이 분의 KPI는 합격자들의 오퍼 수락률을 포함한다고 했다. 즉 오퍼를 수락할 만한 사람에게 오퍼를 줘야 그분의 조직 내 성과평가가 좋아진다는 말이다. 이런 것도 하나의 변수다. 그분 입장에서 난 면접도 잘 못 보고 그 회사에 오고 싶은 열정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합격시킬 이유가 하나도 없었을 거다. 근데 만약 인사 담당자가 4번이 나이라 1, 2, 또는 3번 면접관이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



앞으로도 면접 탈락은 계속 내게 일어날 일이다. 그래도 뭐 괜찮다. 앞으로 나의 커리어를 결정하는 건 내가 어느 회사 면접에 떨어졌느냐가 아니라 어느 회사 면접에 붙었느냐일 테니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Hunters Rac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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