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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an 15. 2020

돈 걱정 없으면 뭘 하시겠어요?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지난달 책을 읽던 중 이런 질문을 마주했다: "돈 걱정 없으면 뭘 하시겠어요?". 정확히는 "돈 걱정이 없다" +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이란 조건이었다. 이런 조건이 허락된다면 난 뭘 하고 있을까? 저 질문의 목적은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유용한 지표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아무튼 돈 걱정 없고 다른 사람들 눈치 볼 일 없다면 난 과연 뭘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혹시나 앞으로 내가 뭘 할지 결정하는 데 괜찮은 힌트가 될까 싶어서.




옵션 1: 일 안 하고 여행 다니면서 그냥 논다

이렇게 사는 건 몇 년은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여행이 즐거우려면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느낀다. 정해진 집이나, 회사나, 학교 등 뭔가 이 여행이 끝나고 할 일이 있을 때, 즉 지금 이 여행하는 시간이 한정된 자원이라 더욱 소중할 때, 여행이 더 즐거워지는 것 같다. 동남아 같은 휴양지는 3주 정도 있어보니 2주 정도 지나면 몸과 마음이 늘어지면서 지루해진다. 관광지 위주에 여행을 많이 하는 유럽도 2주 이상 볼 체력이 안되고, 또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워낙 여행이 보편화되고 인터넷 SNS 등으로 눈과 귀에 익숙해져서 예전 같은 신선한 충격이 적다. 아날로그 시절에 존재하던 여행의 낭만은 더 이상은 없는 걸까. 아무튼, 돈이 많아지고, 돌아가서 할 일이 없고, 발이 편해지고, 신선한 느낌이 없다면 돈 걱정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살기는 싫다는 결론이다. 내 아내는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을 거라고 하는데, 나는 뭔가 배움/성취가 없다면 만족할 수 없다는 선결조건이 있다.


옵션 2: 스타트업 등 흥미로운 직장에서 돈 걱정 없이 일한다

직접 창업을 하거나 좋은 파트너와 스타트업을 하는 옵션은 일단 아주 재밌을 것 같다. 거기다 돈 걱정이 없다면 어느 정도 나 스스로 펀딩을 할 수 있을 테니, 스타트업의 가장 큰 어려움인 재무적 장애물이 적다는 뜻이고, 이런 조건에서 좋은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건 아주 흥미롭지 않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로또 등 복권에 당첨되면 자기 사업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다 비슷할 거다. 문제는 이 옵션은 우선 선택 불가라는 거다. 애초에 '돈 걱정 없으면 뭐할지' 생각하는 이유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꼭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은 선택 불가한 옵션이다. 아, 물론 돈이 없어서 펀딩을 열심히 받으면서 훌륭한 스타트업을 키우는 방법도 있는데, 일단 이건 내가 그리는 행복한 내 삶의 모습은 아니다. 아직 내가 그럴 역량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역량이 없는데 노력으로 승부하려는 자세는 내 삶의 자세가 아니다. 나중에 더 준비가 된 시점에 기회를 잡아 언젠가는 창업을 하겠지만, 일단 이 옵션은 고이 접어 넣어두자.


옵션 3: 공부/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전문가가 된다

난 공부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서 공부는 '한국식 시험 준비형 공부'를 제외한 수많은 다른 형태의 '학습'들이다. 수능 공부는 정말 싫었지만, 스스로 경제학 공부를 하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다. 사람 줄 세우기를 위해 문제를 꼬는 일이 없는 미국식 시험들도 - GMAT, TOEFL, CFA - 예전에 꽤 즐겁게 공부했었고 결과도 좋았다. 관심 있는 분야의 비문학 독서도 즐기는 편인데, 특히 경제학, 행동경제학, 뇌과학, 경제 역사, 자서전, 학습연구, 습관/행동양식 연구, 통계학 등 분야에 흥미를 느낀다. 오늘 더 배우고 발전했다는 느낌은 내가 아는 내 삶의 가장 큰 만족감인 것 같다. 반대로 내가 어떤 분야를 너무 모른다는 느낌, 앎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내가 아는 가장 벗어나고 싶은 결핍감이다. 여러 번 생각해봐도 내가 돈이 많아서 돈 걱정이 없이 아무거나 할 수 있다면 분명 난 어떤 방식으로든 공부를 할 것 같다. '연구'가 얼마나 잘 맞을지 모르지만 일단 박사학위를 시작으로 흥미 있는 분야를 파고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MBA 분위기에 휩쓸려 취업에 온 신경을 쏟다 보니 정작 공부는 뒷전이다. 뭔가 공부하는 행위가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 상황이 난 싫다. 그래서 더욱 빨리 인턴쉽 리크루팅을 마무리하고 더 평온한 마음으로 미래를 찬찬히 그려보고 싶다. 이러나저러나 지금도 내 마음은 계속 옵션 3으로 끌려가고 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Pepi Stojanovs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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