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Jan 10. 2020

미국 시민권이 12달러?

미국 출산 후기 - 2

미국 출산 후기 - 1: 아빠가 됐다


새벽에 리나가 태어나고 그날 오후, 병원에 상주하는 행정직원이 출생신고를 위해 병실을 찾았다. 나는 출생신고라고 하길래 엄청난 양의 서류처리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이름만 기재하고 사인만 몇 군데 하면 되는 간단한 절차였다. 서류에 사인을 하고 돌려줬더니 출생신고 가격은 12달러이고, 체크나 머니오더를 통해서 결제할 수 있단다. 체크는 미국에서 몇십 년째 아직 쓰는 어음/수표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머니오더라는 건 이번에 미국 생활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체크나 다른 결제수단이 없는 경우에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그 증표로 받는 게 머니 오더인데, 쉽게 말하자면 상품권과 비슷하다. 12달러 + 수수료를 내면 편의점에서 12달러의 가치가 있는 상품권을 내어 주고, 나는 이걸 판매자에게 전달해 결제할 수 있는 것이다.



12달러라니.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겐 시민권이 아니라 영주권이나 기타 비자도 받는 게 참 어렵고 복잡한 일인데, 리나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12불로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다니.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지금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어떻게든 미국 취업을 해서 취업비자를 받겠다고 고생 중인데 참. 리나에겐 12달러짜리 미국 시민권을 물려줬으니 나중에 따로 유산은 남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워싱턴 DC에 있는 대사관에 가서 한국민 출생신고도 할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봄에 한국에 들어갈 때 리나는 미국 여권과 한국 여권 둘 다를 가지게 될 거다. 나중에 리나가 둘 중 어느 나라에 살게 될지 모르지만, 그 선택권이 있다는 것도 참 부러운 일이다. 이게 12달러라니 이것보다 좋은 투자가 또 있을까.




미국 출산/육아 문화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우선 병실에서 회복하는 산모에게 주는 밥 메뉴가 재밌었다: 스크램블 에그, 콜라, 소시지, 팬케익, 라자냐, 비스킷, 요거트, 초콜릿 케익, 머핀, 감자구이 등. 한국에서는 미역국 같은 따뜻한 국물 음식을 위주로 먹는 것 같은데, 여기는 출산을 했다고 해서 꼭 챙겨 먹어야 하는 메뉴 한 두 가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냥 평소에 흔히 먹는 음식들을 병원 식당에서 요리해 가져다 줄 뿐이다. 건강을 떠나서 병원에서 주는 밥이 별로 맛없다 보니 아내가 별로 안 먹어서 걱정이었는데, 감사하게 미역국과 밥을 챙겨 가져다준 지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도 아내 옆에서 소시지 같은 것만 먹다가 미역국을 먹으니 신세계였다. 출산을 떠나서 그냥 미역국이 갑이다.


미국 출산 후 식단. 그나마 다행인 건 선택할 수 있는 메뉴 옵션이 아주 많다는 것. 그래도 대부분은 미국 호텔 아침 조식 느낌이다.


병원에서 2박 하는 동안 정말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거쳐갔다. 한국에서 출산을 안 해봐서 모르지만, 아 이렇게 많은 전문인력의 손길이 들어가는 일이니, 출산은 진짜 비쌀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물론 내가 가진 학생 보험이 출산을 많이 커버해 줄 거라 예상하고 있어서, 실제 내 부담금은 몇 십만 원 선이 아닐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병원을 오고 갈 때 직접 돈 계산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며칠 또는 1-2주가 지나면 집으로 병원 비용 청구서가 날아온다. 이때가 돼봐야 내가 병원에서 얼마를 썼는지 알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어쩌다 미국 병원에서 바가지 비슷하게 먹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웬만하면 계속 대학병원을 다닐 생각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 리나는 내 품에서 자고 있다. 그래, 힘들지만 이런 순간들 때문에 굳이 낳고 키우는 건가 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Josh Johnson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