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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an 22. 2020

머뭇거리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

딸아이가 태어난 지 어느덧 2주가 넘었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서 감사하다. 너무 자주, 그리고 많이 먹는 것 아닌지 가끔 걱정된다는 점만 빼면, 아직은 걱정 안 끼치는 착한 우리 딸이다.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바로 가훈을 정해서 문지방에 붙여놓는 일이다. 가훈이라고 하면 너무 보수적이고 옛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가족도 일종의 조직이고, 조직은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기반이 되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칙이라는 나침반이 있어야 원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훈도 원칙이다.


내가 정한 우리 가족의 가훈은 '머뭇거리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이다. 나 스스로에게 청소년 때부터 계속 되새겨왔던 말이기도 하고, 딸아이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라서 그렇게 정했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의 클래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아들아, 머뭇거리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강헌구 / 한언출판사)에서 따왔다. 읽던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이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어떤 감흥이 떠오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만났던 시기에 내가 쳐했던 상황과 내 마음 상태, 그리고 저 강렬한 제목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면서 나를 거세게 흔들어놨었다.


2005년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학교에 매일 갈 이유도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대략 70%)만 학교에 출석했다. 그런데 계산 착오였다. 졸업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 내 계산이 틀렸던 거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교장선생님이 나를 불러 앉혀놓고 나는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를 너무 많이 빠졌으니 고등학교 1학년을 다시 다니라는 거다. 어린 마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아니 공부하는 의미는 모르겠다 치더라도 내가 유급이라는 상황까지 몰리다니. 나름대로 중학교 때까진 전교 10위권 모범생이었는데.


유급 소식을 전해 듣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언젠가 내게 선물했던 책 <아들아, 머뭇거리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강헌구 / 한언출판사)였다. 엄마도 아마 직접 구매하신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서 선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커버도 열어본 적 없던 그 책의 제목이 참담한 심정이었던 내게 극적으로 다가왔고, 난 그 책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이 만약 오글거리는 삼류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면, 난 아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뒤에 눈물을 흘리며 더 멋진 인생을 살리라 맹세했을 거다.


현실은 좀 달랐다. 무엇보다 그 나이 먹을 때까지 교과서 말고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독해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저질이었다. 그 두껍지도 않은 자기계발서 한 권 읽는 데 며칠이 걸렸다. 한 페이지 읽는 데 2분은 걸렸던 것 같다. 진짜 과장 하나 없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독해력이었다. 아무튼 평생 처음으로 내 의지로 한 권의 책을 마쳤다. 여태 너무 머뭇거린 것 같은 죄책감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르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짧은 인생, 멋지게 한 번 살아보기로 했다.


지금 내 모습은 내가 그 시절 마음에 그렸던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유급 위기에 처했던 그 일탈 청소년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그 일탈 청소년은 전액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갔고, 꽤 괜찮은 직장을 다녔고, 지금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책 한 권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컸다. 우리 딸도 이 말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면 좋겠다. 인생은 머뭇거리기엔 너무 짧다고. 머뭇거리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살기 바란다. 나도 마찬가지다. 짧은 인생 중 벌써 30년이나 살았다. 머뭇거리기엔 남은 인생이 더 짧아져 버렸다. 딸아, 아빠가 살아보니까 머뭇거리기엔 인생이 진짜 너무 짧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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