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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an 16. 2020

딸을 설계한 아빠

교육심리학에서 유명한 실험 하나가 있다. 자식 교육에 관련된 리얼 버라이어티(?) 실험이다. 그리고 이 실험은 한 장의 편지에서 시작된다. 헝가리 출신의 라즐로 폴가(Laszlo Polgar)는 클라라(Klara)라는 이름의 여성에게 수상한 러브레터를 보내기 시작한다. 라즐로는 체스 선생이자 교육심리학자였고, 클라라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라즐로는 교육에 대한 한 가지 강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천재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생각이었다:


A genius is not born, but is educated and trained.


Laszlo는 이런 확신이 너무도 강했고, 과학자로서 이 가설을 실험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클라라에게 편지를 쓴 거다. 실험에 같이 참여할 아이들을 낳아줄 아내가 필요하다고: 


Needed a wife willing to jump on board.


클라라도 라즐로 정도는 아니었어도 선생님으로서 교육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고, 이 둘은 실제 결혼해서 딸 셋을 낳게 된다. 라즐로는 이들을 모두 체스 그랜드 마스터로 키우기로 계획했고 이내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은 학교에도 보내지지 않고 홈스쿨링을 통해 철저하게 계획된 삶을 살았다. 온 집은 체스 관련 책과 기사, 사진들로 도배돼 있었고, 세 자매들은 매일 하루 종일 서로 체스를 하며 놀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 딸들은 모두 '체스 천재'가 됐을까? 답은 물론 '그렇다'이다. 특히 세 딸 중 막내 Judit이 가장 뛰어난 체스 선수로 성장했는데, 그녀는 이미 5살에 체스로 아빠를 제쳤고 15살에 역대 최연소 체스 그랜드 마스터가 됐다. 그리고 이후 27년 동안이나 세계 1위 여성 체스 선수 자리를 유지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끔찍한 이야기다. 실험을 위해 결혼과 출산을 하고, 아이들의 선호와는 상관없이 학교도 보내지 않고 체스를 강제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런 실험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한다면 분명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받을 거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세 딸들 모두 어린 시절에 대해 행복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체스를 배우고 시합에 나갔던 기억들이 너무 즐거웠고, 항상 체스가 더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사실 '능력뿐 아니라 선호도 만들어지는가?' 하는 또 다른 주제라 다른 글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아무튼 나도 라즐로의 생각에는 꽤 동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유전자가 결정하는 부분도 지대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이 학습과 훈련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다고 믿는다(중요한 건 정말 제대로 된 학습과 훈련인데, 여기서 교육의 빈부격차 문제가 대두된다. 결국 좋은 선생님이 잘 설계된 학습/훈련을 시켜야 뛰어난 능력이 길러지는 건데, 이런 선생님들은 매우 비싸고 공교육에 남아 있을 리 없다). 이걸 믿는 건 믿는 것이고, 그렇다고 내 아이들도 이런 식으로 훈련시킬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럴 돈도 (아직) 없다. 다만,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선호를 찾아주고 능력을 길러주는 데 부모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나는 '효과적인 학습은 어떻게 하는 건지', '한 분야의 최고가 되는 길은 뭔지', '뭘 하는 게 재밌고 즐거운지'를 스스로 알아가야 했지만, 내 아이들에겐 이 아빠가 직접 가이드가 되고 싶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Michal Vrb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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