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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Feb 01. 2020

MBA 갈까, 말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로 꽤 많은 사람들이 MBA나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유학에 대한 질문을 이메일로 보내온다. 생각난 김에 MBA 갈지 말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내 생각을 조금 나누고,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가 공부 중인 다든(University of Virginia Darden School of Business) MBA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미국) MBA 갈까, 말까?

내가 공부하고 있는 미국 MBA를 기준으로 어떤 사람이 오면 좋은지 생각해봤다.


미국에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

MBA도 학위 기준으로는 석사과정인데 굳이 다른 석사과정과 구분해서 'MBA'라고 부르는 건, 적어도 내 생각에는,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취업(커리어 개발)이 최우선 목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유학 중이라고 하면 '공부 힘드시죠?'하고 걱정해주는데, 사실 공부는 크게 힘들 것 없다(열심히 하려고 마음먹고 하면 힘들다. 근데 대부분 그렇게 마음먹지 않는다. 눈 앞에 닥친 취업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보통 미국 학생들은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한 징검다리로써 MBA를 선택하고,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학생들은 미국 취업을 위해 MBA를 선택한다. 쉽게 말해 MBA는 '커리어 개발 사관학교'다. 졸업 후 꿈에 그리던 직장에 가는 게 성공의 척도다.


문제는 외국인으로서 MBA를 미국에서 나와도 여전히 현지 취업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여러 측면에서 외국인 현지 취업이 좀 더 어려워졌다. 때문에 MBA에 지원하는 외국인 지원자 수도 빠르게 줄고 있다. 지금 여름방학 인턴쉽 구직 중인 내 입장에서도 이런 '외국인 노동자'로서 겪는 취업장벽은 큰 스트레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A를 나오지 않고 미국에 취업하는 길은 더욱더 좁기 때문에, MBA가 미국 취업의 기회를 많이 넓혀주는 게 현실이다. 여러 난관이 있긴 해도, 미국 취업을 목표로 했던 MBA 선배들은 결국 어떻게든 미국에 자리 잡는 모습을 봤다. 미국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미국 학부도 안 나왔고 미국 박사 학위도 생각이 없는 경우라면, MBA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옵션이다.


이것 말고도 *커리어 방향을 바꾸고 싶은 사람, *학위 받으면서 편하게 즐기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 등의 경우를 생각해봤지만, 전자는 거의 미국 학생들에게만 해당되고 후자는 회사에서 스폰서쉽을 받고 오는 경우만 해당이 돼서 굳이 여기서 다룰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다든 MBA는...

버지니아 대학교로 유학 간다고 주변에 얘기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총 조심해'였다. 버지니아텍이라는 다른 학교와 헷갈려서다. 버지니아텍에서 일어났던 끔찍했던 총기난사 사고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버지니아'하면 '총기난사'를 떠올린다. 아무튼 그 학교는 이곳 버지니아대학교에서 꽤 떨어져 있는 전혀 관련 없는 학교라는 점 다시 한번 밝히면서, 우리 학교 소개를 좀 하려 한다(같은 학교에서 MBA 학위를 받으신 선배님이 브런치에 써놓으신 글도 여기 있으니 참고).


MBA 학교 순위

MBA 학교 순위를 발표하는 5대 주요 기관으로는 1) US News, 2) Financial Times, 3) Economist, 4) Bloomberg Businessweek, 5) Forbes가 있다. 각 기관이 발표하는 순위마다 순위 산정에 들어가는 변수들의 종류와 비중이 달라, 종종 학교 순위에 큰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래도 Tier 1이나 Tier 2에 속하는 학교들의 구성에는 큰 변동이 없기 때문에, 매해 변동성이 큰 순위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Top 7', 'Top 15', 'Top 30' 등으로 구분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든은 미국 Top 15 MBA에 해당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Financial Times Global MBA Rankings의 종합순위를 보면, 다든 MBA는 전 세계에서 18위, 미국에서 12위에 위치해 있다. 종합순위 외 각 전공 부문별 순위도 발표되는데, 다든이 강한 부문은 General Management(일반경영)와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 책임)로, 각각 전 세계 2위, 미국 1위로 평가받고 있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듯이 학교 순위라는 것도 큰 그림의 한 부분일 뿐이다. 숫자를 떠나서 직접 내 경험을 비춰 봤을 때, 다든은 이런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

- 월드클래스 교수진: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단한 교수님들이 많다. 똑똑해서 놀라고 인간성에 놀라고 커리어에 놀란다. 일단 똑똑한 건 당연하다고 치자. 다든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교수님들 모두를 이름으로 부르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상대적으로 교수-제자 관계가 한국보다는 수평적인 미국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60세 교수도 그냥 Elliot! 하고 부르고,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화한다. 어디든 또라이는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대부분 교수들이 착하고 모범적이고 학생들 지도에 열정적이라니, 가장 놀라운 부분이다. 화려한 커리어도 빼놓을 수 없는데, 알리바바 초장기 투자 성공으로 엄청난 자산을 축적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미 얻은 교수, 자신이 파트너로 있는 사모펀드나 헤지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교수들, 여러 번 창업 후 성공적으로 매각한 교수들 등 아직 내가 만나본 교수가 20명이 채 안 될 텐데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랍다.


- 적당한 규모: 다든은 한 학년 학생 규모가 330명 정도다. 주요 MBA 스쿨 중 중간 사이즈 정도 된다. 참고로 하버드, 와튼 같은 대형 학교들은 800명 규모고, 가장 작은 포스터, 턱, 테퍼 등이 100-280명 선이다. 학생이 너무 많으면 얼굴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소속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가보지 않아서 그냥 추측이다. 너무 규모가 작으면 서로 친해서 좋긴 할 것 같다. 다만 그만큼 맨날 보는 얼굴이 거기서 거기라 재미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지금 다니고 있는 다든의 학교 규모가 내겐 딱 좋은 것 같다. 대형 학교였으면 투명인간으로 지냈을 거고, 너무 작은 학교였으면 '아싸'였을 게 확실하기 때문에.


- 케이스 수업 방식: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학부 때처럼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서 좋다. 강의는 지긋지긋하다. 케이스 방식의 수업은 끊임없이 토론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긴 하지만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힘들게 재미있을 건지 아니면 편하게 지루할 건지 선택이다. 어제 수업에서도 한 가지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다. 



Decision Analysis라는 통계 관련 수업이었는데, 코카콜라와 펩시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서 구별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실제로 실험해본 것이다. 목적은 '통계적 유의성'이란 개념을 가르치기 위한 것. 자진해서 실험에 참가한 Matt이란 친구는 10번의 Trial에서 10번 모두 코카콜라를 정확히 짚어냈다. 모두 충격에서 우러나온 비명을 지르며 기립박수를 쳤다. 교수 Joe는 100% 정답이 나온 경우는 자기가 다든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뒤 처음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결국 콜라와 펩시의 맛이 구별 불가능하다는 귀무가설이 맞다면 이처럼 Matt이 10번 중 10번 모두 콜라를 정확하게 구별해낼 확률(이게 p-value)이 1%보다 낮으므로, 우리는 '콜라와 펩시 맛이 구별 불가능하다'는 가설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왜 진작 이렇게 배우지 못했을까. 이 날을 우리 반 어느 친구가 과연 잊어버릴 수 있을까. 난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 위치 (한적함, 비교적 낮은 물가, 안전함): 다든은 살롯츠빌이라는 작은 컬리지타운에 위치해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2층 이상 건물은 시내에 나가야만 볼 수 있는 시골이다.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참 우울해질 수 있는 환경이다. 난 시골이 좋아서 행복하다. 시골이니까 물가는 당연히 싼 편이다. 주요 MBA가 위치한 도시들 중 월세가 가장 싼 곳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도 방 2개 딸린 아파트가 월 $1700니 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MBA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아주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유 있는 은퇴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라서 치안이 좋은 편이다. 집 근처,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치안 걱정해 본 적이 아직은 없다.


단점

- 비교적 낮은 다양성: 다든의 외국인 학생 비율은 30-35% 선이다. 다른 MBA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툭 까놓고 말하면 백인이 절대적 다수이고 흑인 비율은 정말 심각하게 낮다. 우리 학년 전체에 흑인 학생 수가 10명 정도 됐던가. 미국은 이런 다양성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개선 노력은 많이 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아시아인 비중도 다른 학교들 보다는 작은 것 같다. 학년당 한국인이 4-5명, 중국인이 20명, 일본인이 1명 정도 있다. 인도인이 30명 정도로 많은데, 인도에서 온 학생들은 어느 학교를 가도 많아서 패스. 피부색에 따른 다양성이 뭐가 중요한가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인간관계는 피부색이나 국적보다 사람 by 사람이긴 하지만, 집단 안에 너무 큰 주류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비주류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융합을 방해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이 점에서는 유럽 MBA의 장점도 있는 것 같다.


- 너무 빡센 커리큘럼: 다든 1학년 수업은 아침 8시에 시작한다.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런 MBA는 또 없다. 모든 수업의 출석도 필수고 수업 참여도가 전체 성적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수업 준비를 안 할 수 없다. 읽어야 할 케이스도 항상 산더미다. 한 수업의 길이가 85분이나 된다. 재미를 떠나서 몸이 힘든 건 사실이다. 좀 여유롭게 유학생활 즐기고 싶은 사람은 절대 다든에 오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 위치 (시골, 작은 공항, 몇 안 되는 맛집 수): 이건 개인 선호에 따라 선택과 포기의 문제다. 작은 도시다 보니 맛있는 것도, 재밌는 것도 별로 없다. 공항이 작아서 뉴욕 가는 비행기가 하루에 2-3개 밖에 없다. 그래서 비행기 티켓이 비싸다. 미국 전역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은 사람에게 좋지 않은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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