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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Feb 12. 2020

테슬라의 프랜차이즈 사업

테슬라 시승 후기

어제 처음으로 테슬라 차를 타봤다. 늘 관심은 있었지만 타 볼 기회가 없다가, 어제 학교에서 시승 행사가 열려서 드디어 기회가 왔다. '모델 3'과 '모델 X' 두 차종을 시승해봤다. 어쩐 일로 학교까지 와서 이틀 동안이나 시승행사를 열었나 싶었다. 알고 보니 우리 학교 학장님이 '모델 S'를 타는 테슬라 광팬이라서 직접 사측에 요청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고.


테슬라 모델 3


나는 '차알못'이기 때문에 차 스펙이나 승차감에 관한 리뷰는 패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디스플레이가 보통 자동차 내비게이션 화면보다 3배 이상 크다는 점이 눈을 사로잡았고, 순수 전기로 가는 모터의 힘이 놀랍도록 셌다는 정도만 기억에 남았다. 사고가 무서워서 원래도 과속 없이 안전운전을 하는 내가 평생 느껴본 가장 빠른 가속이었다. 그나저나 중요한 건 스펙이나 퍼포먼스가 아니다. 테슬라의 가치는 자율주행 기술에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아직 미국에서 운전자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은 불법이다. 일부 테스트를 위해 이를 허용하는 소도시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예외에 불과하다. 나를 시승시켜준 테슬라 직원에게 들은 바로는 1~2년 안에 많은 주에서 '완전 자율주행' 허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단다. 물론 이를 위한 테슬라의 기술은 (거의) 준비돼 있다. 이미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테슬라 차량 대부분은 하드웨어적으로 준비가 돼 있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만으로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자동차 얘기를 하면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논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


부스트 기능을 앱에서 구매하면 자동으로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고  차 가속이 이내 빨라진다. 테슬라 차는 전자기기다. (출처: https://www.teslarati.com)


직접 타보자마자 모델 3이 사고 싶어 졌다. 가격도 4만 불 정도로 합리적인 데다, 자율주행 기능은 장롱면허를 가진 아내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둥지를 틀면 3-4년 정도 후에 한 대 뽑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 생각이 바뀌는 데에는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테슬라의 '로보택시' 계획 때문이다.


테슬라는 로보택시라는 이름으로 자율주행 택시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1-2년 내 론칭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조만간 미국 도로 위에는 100만 대의 테슬라 차량이 깔릴 텐데, 이 차들을 이용해서 무인택시 사업을 한다는 아이디어다. 내가 모델 3 차주라고 하자. 하루 중 80-90% 시간 동안 차는 주차돼 있다. 자원 낭비다. 사용하지 않는 동안 내 차를 로보택시 모드로 설정하면, 그 즉시 내 차는 무인택시가 된다. 사람들은 카카오택시를 부르는 것처럼 앱으로 로보택시를 부를 수 있고, 내 차가 가까이 있다면 내 차가 불려 간다. 수익의 20-30%는 테슬라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내 부수입이 된다. 놀고 있는 내 차로 돈을 버는 거다.


테슬라의 추산에 따르면 이렇게 내 차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연간 최대 30,000 달러까지 벌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차 가격이 40,000 달러 정도임을 감안하면 꽤나 남는 장사다. 이렇게 되면 프랜차이즈 사업 모델과 다를 게 없다. 테슬라 차량을 사는 차주들은 프랜차이즈 점주나 마찬가지다. 로보택시 비즈니스를 통해 창출한 수익의 20-30%를 테슬라(본사)에 떼어주고 나머지를 챙긴다. 테슬라는 차(프랜차이즈 지점)도 팔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도 얻는다. 수익에 만족한 점주들은 보유 차량 수를 늘려갈 것이다. 언젠가 시장이 포화될 텐데 이 지점은 점주들이 얻는 수익이 추가적으로 지점(보유 차량)을 추가하는 데 드는 비용과 같아지는 순간일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는 테슬라가 굳이 점주들과 수익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직영으로 운영하면 수익을 100% 자기가 먹을 수 있는데 말이다. 식당 비즈니스 경우에는 직영에 필요한 투자/운영자본이 너무 크고 지속적으로 인건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방식의 매력이 크지만, 로보택시는 무인 자동차다. 그냥 차를 만들어서 길에 던져 놓으면 알아서 영업하고 저절로 돈을 번다. 내가 테슬라라면 점차 직영으로 전환하겠다. 테슬라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공개 이벤트에서 일론 머스크는 앞으로 리스로 판매하는 모든 모델 3 차량을 모두 바이백 하겠다고 했다. 다시 사들여서 자기네가 직접 로보택시 영업 차량으로 쓰겠다는 말이다.


이번 시승은 내가 테슬라를 사고 싶게 만드는 동시에 살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최소한 내가 미국에 사는 동안에는 테슬라 차를 구매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구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필요할 때 앱으로 불러 쓰면 된다. 운전하는 수고도 필요 없고 차 유지비도 아끼는 윈-윈이다. 이제 와서 보니 테슬라는 단순한 전기차 생산 기업이 아니다. 테슬라는 무인 운송 플랫폼 회사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왜 그런지 이해가 갔다. 테슬라가 만들어갈 5년, 10년 뒤 도로 위 풍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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