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상상력
책과 옛날 게임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상상력에 의존한다는 거다.
최근의 게임은 상상할 구석이 없다.
스틸샷으로 보면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의 그래픽과
풀 성우 더빙, 다양한 이펙트는 눈을 홀리지만 머릿속은 받은 정보를 수용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큰 의미에서, 모든 게임이 체감형 게임이 되어간다.
옛날 게임은 얼마 되지도 않는 해상도로, 좋은 그래픽이라고 해 봐야 '노력했어요'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시절 게임을 할 때 뇌는, 받은 정보를 기반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리느라 바빴다.
예전 게임업계를 지배하다시피 한 JRPG들은 손이 바쁘지 않았어도 지루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이건 시스템 어쩌고의 문제보다 상상하느라 뇌가 바빴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과거 시스템 그대로 리메이크된 작품들은 뇌가 한가하다 보니 손까지 한가한걸 못 견디겠다.
요즘게임도 풀로 즐기고 있는 입장에서 꼰대처럼 요즘게임 별로라고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그때 그 맛도 참 좋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활자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뇌가 바쁠 일 없이 도파민만 뿜어대면 만사 해결되는 편한 때가 없다.
AI에게 물어보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대답해 주고, 미디어는 넘쳐나고, 하나같이 흥미 만점이다.
그래서 가끔 뇌가 불편한 책이 즐겁다. 읽으면서 막 머릿속에서 풀상상이 돌기 때문에.
부디 화려하고 편안한 콘텐츠'만' 즐기는 것에 뇌가 절여지지 않고, 이 즐거움을 오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