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판타지의 유치함에 대한 잡상.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허망하다.
공산주의가 아닌 이상에서야 성공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더 열심히 사는 사람과 경쟁해 실패한다.
모두가 각자의 최선을 다해도, 결국 여전히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있다.
여전히 부는 성공한 쪽으로 편중된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성공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실패할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타짜끼리는 도박이 되지 않는다. 판에 호구가 앉아있어야 타짜가 돈을 번다.
노력해서 대단한 가치를 창출한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돈을 줄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이 하위 계층이 되고 중위 계층이 되어야 상위계층이 부를 모으고 사회가 유지된다.
다시, 이것이 자본주의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의외로
[노력하고, 실패해서 성공한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호구가 없는 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혹은 돈 잃은 능력 없었던 호구에게 칼 맞고 죽지 않기 위해 개평을 줘야 한다는 소리다.
그래야 그 개평으로 집에 돌아가 다시 열심히 돈을 모아 잃어주러 도박판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 논리가 무시될 만큼 부의 편중이 심해지고 있다.
호구는 돈이 없는데,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돈이 없는데 자꾸 도박판에 앉혀질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타짜를 상대로, 대대로 타짜인 집안의 3대째 타짜를 상대로 공정하게 도박한판을 벌여 이기지 못한 죄를 추궁받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타짜를 이기면 너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개평은 도박공부를 게을리하는 사람을 만들 뿐이라고. 굶어봐야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했다.'
이 말은,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했지만,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로도 쓸 수 있다.
노력은 성공과 등치 될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행복이지 성공이 아니다.
모두가 노력해서 모두가 성공하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요즘은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
결국, 누군가는 못살게 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효율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열심히 노력한, 혹은 뛰어난 사람은 점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즉 나눌 필요 없이 부를 창출할 수 있게 되고 있다.
승자의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소리다. 비긴 사람이나, 패자가 될 사람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는 소리다.
그 전제 하에서 사회가 유지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발생할 패자와 약자가 계속 판돈을 걸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게으른 사람, 능력이 현재 시대와 맞지 않는 사람, 노력했으나 패배한 사람이 있는 그 상태로 사회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고민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가 아니며, 공산주의도 아니다.
되려 끊임없이 성정 해야 하는 욕심쟁이 자본주의를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