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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표현을 못 해서 안달일까

진화 좀 후지게 한 듯

by JayD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나, 여튼 SNS들에서 벌어지는 의견충돌-매우 순화된 표현으로-를 보고 있자면 참 어쩌다 이지경으로 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비방, 잘못을 인지한 뒤에도 사과하지 못하는 모습들. 논점을 흐리는 꼬투리. 6세 유아 형태의 우기기. 그리고 늘 이어지는 정신승리. 좁디좁은 내 타임라인에도 수백 명이 싸워대는데, 이긴 사람만 있고 진 사람이 없어. ㅋ


해서 이런 게 생지옥이다 싶어 최근 SNS를 좀 등한시하다 보니 문득 의문이 생겼다.


사람은 왜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해, 설득하지 못해 안달일까.


비교적 온건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이런 생각을 이 곳에 정리 해 두는 것 조차도 포함해서 말이다. 거 그냥 대충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될걸, 굳이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전시하고 싶은 이 요상 망측한 진화는 왜 한 걸까.


나는 과학을 신봉하고 진화론을 -지구가 둥글다는 걸 지지하듯- 지지하는 사람으로, 어설프게 진화심리학에 대한 지지까지 담고 있으면서 깊게 연구하기보다는 추론하고 짜 맞추는걸 좋아하는 피곤한 성격이므로, 대충 추론해 보자고.


진화는 자연선택에 의해 일어난다. 최근에는 초신성 폭발에 의한 방사선의 영향으로 대규모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진화의 트리거가 되었다는 이론도 있는 모양이던데, 쨎든, 돌연변이가 일어나 서로 형질이 다른 개체가 발생하면, 자연선택으로 생존에 더 유리한 쪽이 살아남아,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가 더욱 널리 퍼진다는 게 진화론의 기본이다.


근데 진화론이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문제가 아닌 것이, 어떤 형질이 어떤 단위에서 어떻게 생존에 기여했는가가 아리까리 한 경우가 많다는 거지. 지금 추론해보려고 하는 지적 배설욕 -이거 뭔가 되게 건방진 표현 같은 감정이 들어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국어가 짧아 마땅한 대체어를 못 찾겠다.- 도 마찬가지다.


이게 개싸움의 원인인걸 하도 많이 봐 와서, 단일 생명 개체의 생존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생각을 도저히 못하겠다는 거지.


자 이게 무슨 소리냐.


내가 문명사회 이전의, 대충 한 2만 년 전쯤의 원시인이라 치자고. 근데 내 동료 걸음걸이가 영 맘에 안 들어. 저렇게 걸으면 골반 삐뚤어져서 나중에 나무 타고 열매 따기 힘들다고 아부지한테 배웠거든. 그래서 그걸 내 친구한테 말을 해 준단 말이지.


"야 너 그렇게 걷지 마"

"왜"

"골반 삐뚤어진대"

"내 골반 멀쩡해"

"아는데, 나중에 삐뚤어진다고"

"하이고오 미래에서 오셨어요? 싸물고 사냥에나 집중하시지?"

"걱정해서 해 준 말을 왜 그따위로 받어"

"그따위? 이새퀴 이거 등털에 핏기도 안 가신 게..."


라는 광경을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

개체 단위로의 생존에 있어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개체보다는 입 다물고 조용히, 생존에 유리한 정보를 혼자 알고 있고, 굳이 퍼뜨리려 하지 않는 존재가 오래 살기 유리하지 않았을까.


그럼 대체 이런 천박한 배설욕은 어느 유전자 구석지에 박혀서 여기까지 남아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걸까.


난 이게 아마도, 집단 단위에서의 생존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추론한다.

설명충만 잔뜩 있고 -물론 그걸 참고 들어줄 확률이 높은- 자신이 아는 내용을 모두 공유하는 집단과, 서로 신경 긁기 싫어서 입 다물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어떤 집단의 생존 확률이 더 높을까?

압도적으로, 전자의 생존 확률이 높았을 거다. 그렇게 남은 거라고 이게.


쉽게 예를 들자면, 어떤 놈이 사슴을 잡는데, 뿔에 치이지 않고 뒷발에도 안 차이는 기가 막힌 노하우를 깨달았다면, 자기만 알고 넘어간 조직보다, 떠든 놈 열 중 둘은 비명횡사하더라도 열심히 떠들어 전파시키는 조직의 생존율이 높았을 거란 거다.


그러니까 결국, 쌍욕 먹어가며, 뱉어가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저 모습이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진화한 결과라는 거지.


그럼 개싸움에 끼어서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하냐면, 그건 또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싸움에는 방법이란 게 있고, 인류가 문명 건설해서 산지 뻥 쫌 보태 만 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이제 좀 무식하게 서로 비방하고 까내리고 욕하는 방식은 탈피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말이야.


나라 간에 편 갈라 패싸움도 해 봤고, 동서 가로지르는데 세 시간이면 충분한 이 코딱지만 한 나라에서도 동서를 갈라서 서로 욕하고 그러다 사람도 죽고 하는 싸움도 해 봤지 않은가 말이야.


좀 현명하게, 그게 어려우면 예의 바르게 좀 싸우자고.

잔뜩 예의 바른 척 존대만 해가면서 540도쯤 말 꼬아가며 자존심 긁으면서, 이마에 핏대 선 채로 표정 유지하며 내가 이겼다고 정신승리하지 말고.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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