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자. 충분히 의심했다고 생각한 다음에도, 한 번 더.
모 기업 대표의 SNS에 글이 올라왔다.
정확한 내용을 옮기기엔 좀 뭐하니 대충의 뉘앙스만 전하자면..
"광고 컨펌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라는 것에 심취해서 원래의 목적을 잃는 경우를 본다. 발표자에게 '원래 이 광고의 목적이 뭐였죠?'라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일이 있다. 빛나는 아이디어 보다도 원래의 목적에 집중하는 창의가 중요하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얼핏 보기에 좋은 글이었는데도,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너무 웃겼다.
광고가 가진 목적은 이렇게 하면 달성될 수 있다고 실컷 설명했는데, 다 듣고 나서 '원래 이 광고의 목적이 뭐였죠?'라고 짐짓 훈계하듯 질문하는 고객의 얼굴이 눈에 그려졌기 때문에.
그런데 왜 그 발표자는 대답을 못했을까?
뭐라고 대답하나. 제안요청서나 전략문서에 있는 목적을 그대로 읽을까?
돌아올 대답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잘 아시네요. 그게 잘 표현되었다고 보세요?"
그래서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있었던 것일 거다.
원래 이 광고의 목적이 뭐였냐는 질문은, 나는 이 광고가 우리 목적하고 부합하는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즉 마음에 안 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약자의 촉으로 읽어낸 것일 거다.
그런데 정작 물어본 고객은 그걸 모른다. 그냥, '그런 본질도 잊고 광고를 찍으려 했다니'라고 생각하겠지.
강자가 약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거야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상황을 상상할 때 피식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왜들 이렇게 "난 똑똑하지만 나 말고는 다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반려된 광고가 정말 후지고 엉망이더라도,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원래의 목적을, 발표 자리에서 저런 질문을 받아야 할 만큼 잊어버리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잘못된 해석이 있을 수 있고, 부족한 환경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의도를 중간관리자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가능성을 다 무시하고, "광고가 엉망이니 찍은 애들이 참..."이라는 식의 훈계조로 한마디를 하는 고객의 모습과, "아, 마음에 안 들었구나"를 눈치채고 우물거리는 발표자의 표정을 상상하는 건 참 코미디였다.
그런데 제일 웃긴 건 그 글에 달린 반응들이다.
대충 짐작할 수 있을만한, 공감을 가장한 채 발표자를 함께 비웃는 반응들.
그중에서도 꼭 빠지지 않고 달리는 '국내에선 아직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리나라 기업문화가'로 시작하는 글들은 희극의 정점이라 할만했다.
국내에 그리 많은 CEO들이 있었다니! ㅋ
이 글을 포함해서, 모든 글을 읽을 때는 비판적 시각을 일정 부분 유지해야 한다.
SNS 같은 곳에 올라온 글이 알려줄 수 있는 건 필자의 주장이지 사실이나 법칙이 아니다.
읽기에 맞아보이는 말과 맞는말 사이에는 지구가 두 개쯤 들어갈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