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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퍼 제이드 Jun 30. 2024

내 안의 주황이에게

인사이드아웃2 에서 배운 점

인사이드 아웃 2를 보셨나요? 인사이드 아웃은 늘 저의 최애 top3 중 하나에 들어가는 영화여서 2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표를 예매했어요. 9년 전 인사이드 아웃 1을 본 건 제가 호주에 살 때였는데, 이 영화를 내가 더 어렸을 때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던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소용돌이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쳤고 그 당시 저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전혀 몰랐거든요. 
 

감정본부에 새로 등장한 캐릭터 “불안이”와 “부럽”는 라일리가 뭔가를 이뤄내고 성취를 해야지만 라일리가 빛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연히 라일리가 바라는 걸 이루면 물론 더 좋겠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녀는 단지 ‘라일리’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엄청 찔렸어요. 저도 오랜 시간 내가 무언가를 특히 커리어적으로 크게 이뤄내야만 더 빛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불안이는 굉장히 좋은 의도로 라일리의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고, 스스로를 밀어붙여 노력하게 독려합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어쩌지,

새로운 반에 적응 못하면 어쩌지,

선생님이 나를 좋은 학생으로 안 보시면 어떡하지,

하키 대회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등등..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어떡하지'파티를 하며 잠을 뒤척이고, 이불 킥할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주황이가 이 과정에서 생산해 낸 믿음은 아동기의 신념인 "나는 좋은 사람이야"가 아닌, "나는 충분하지 않아 [부족한 사람이야]"였습니다. 


“불안이 [주황이]”를 보면서 나에게 '불안'이란 감정은 언제 생겼는지 떠올려봅니다. 작은 체구에 커다란 눈을 가지신 저의 엄마는 제 학업적 가능성을 지나치게 믿는(?) 편이셨고,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어린 제이드는 시험 성적은 곧 내가 엄마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의 크기라고 여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원하는 만큼 하지 못했을 때 좌절하고, 원망하고 불안해 하기 시작했지요.


부족하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책망하며, 결핍과 아픔을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제 '믿음 파일함'에는 "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해 이러이러한 점에서 부족하고,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고 변화해야 한다"하는 의무적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주황이 [불안이]의 통제불가능한 폭주와 라일리에 대한 집착이 싫고 동시에 슬프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불안이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불안이는 라일리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지요. 마치 엄마가 저를 너무 사랑해서 본인의 입장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고 성취를 해내는 것만이 저를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으셨기 때문인 것처럼요. 불안이는 라일리를 너무 사랑했고 정도가 지나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지요. 


불안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를 앞으로 달려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실 모든 감정들은 라일리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불안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일이 잘못될 때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다치지 않게 하려 합니다. 


불안이과 기쁨 이의 문제는, 그들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라일리를 입체적인 인간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라일리는 때때로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미성숙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하고 입체적인 것들이 모두 합쳐져 라일리가 되는 것입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불안이 가 만든 "나는 충분하지 않아" 자아도, 아동기의 자아"나는 좋은 사람이야" 도 모두 깨집니다. 그리고 다양한 믿음들이 조화롭게 형성된 입체적인 자아로 거듭납니다 (나는 모든 감정과 다양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의 입체적인 믿음이 하나로 모여 다채롭게 형성되는 장면을 보며, 영화관에서 저도 모르게 손뼉을 크게 쳐서 제 안의 "당황이"가 출동했었죠. 



특히 모든 감정이 힘을 합쳐 라일리를 껴안을 때 울컥했어요.

"힘든 일이 많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라일리를 사랑한다"

라일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성취해 냈기 때문이 아닌, 시도하는 그 모습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종종 미숙하고 부끄러운 모습도 있지만 다양한 감정과 경험의 시행착오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그토록 라일리가 원하던 하키 팀에 선발되었는지 여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라일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고 그녀는 계속해서 그녀만의 이야기를 창조해 갈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라일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레터를 타이핑하고 있는 저를 위한 이야기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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