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챗GPT
할리우드 작가들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2023년 5월 2일, 미국 작가조합(WGA, The Writer’s Guild of America)은 2007년 이후 15년 만에 총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작가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스트리밍 시대에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작가들의 수입을 정상화하고 AI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WGA는 3년 주기로 영화제작자동맹(AMPTP,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과 계약조건을 협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상이 결렬되면서 WGA는 1만 1천500명의 조합원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했고, 결과는 80% 투표 참여자 중 97.85% 찬성이었습니다.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원흉으로 지목된 것은 ‘넷플릭스’였습니다. 2007년 작가들의 쟁점이 온라인과 DVD 사업에서의 수익 배분이었다면, 2023년에는 스트리밍 사업의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였습니다. WGA는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면서 작가들이 저임금 일일 노동자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집세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니 최소한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수익을 올려달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수익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넷플릭스가 TV 시리즈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TV 시리즈 시즌당 22편 내외가 표준이었습니다. 작가들은 대략 6개월 준비 기간과 약 6개월에 걸친 방영 기간 동안 안정적 수입을 예상할 슈 있었습니다. 다음 시즌 방영도 예측 가능했기에 연간 단위 수입을 예측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드라마시즌당 8-10편을 새로운 기준으로 내세웠고, 다음 시즌 재게가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넷플릭스가 대세가 되면서 TV 방송국들도 새로운 편제에 맞추어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고, 이러면서 작가들은 몇 개월 단위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WGA에 따르면, 2013-14 TV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작가의 33%가 최저 임금 수준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작가들의 소득 중앙값은 4% 감소했고,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감소율은 23%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트리밍에서 일하는 작가들의 평균 고용 기간도 짧아지고 있습니다. 일반적 TV 시리즈가 52주인 반면, 스트리밍 작품은 20-24주에 불과합니다. 변화한 제작 환경도 작가들의 생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작 스튜디오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작가 수를 줄이고 있고, 신속하게 대본을 만들 수 있는 소규모 그룹인 ‘미니룸’을 만드는 것이 관행이 되면서 작가들의 고용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도 WGA 파업 이유 중 하나입니다. WGA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의 저작권을 부정하고 있고, 인공지능이 만든 스토리 초안을 작가들이 수정하는 방식도 금지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 대본이 인공지능의 학습에 사용되는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작가는 챗GPT를 '표절 기계'라 비난하기도 합니다. 창작자의 허가 없이 학습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업이 쉽게 끝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넷플릭스를 제외한 모든 스트리밍 사업자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NBC유니버설 등 영상 엔터테인먼트 사업자 모두 2022년 실적 악화로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고, 2023년 1분기 실적도 그리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가 파업은 로스앤젤레스의 연관 산업에도 큰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입니다. 세트 제작 업체나 의상이나 꽃 관련 소품 사업자들로서도 영업 중단에 따른 손실이 커질 것입니다. 2007년 100일간의 작가 파업 당시, 로스앤젤레스 지역 경제가 약 21억 달러 (약 2.8조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명과 암은 늘 함께 존재합니다. 콘텐츠 산업이 <스트리밍 시대>로 접어들면서 작가들의 수익은 악화되었을지 모르나, 콘텐츠의 다양성과 글로벌화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공지능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 다양한 콘텐츠가 더 빠른 속도로 재생산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작가를 포함한 콘텐츠 제작 생태계에서 인간성 상실 가능성은 더 커질 것입니다. 작가들이 인공지능이 만든 스토리 초안을 각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WGA의 이번 파업은 앞으로 인공지능이 초래할 인간성 상실을 인류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