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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배반: 언어의 이해

AI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캔버스 위에는 갈색 파이프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프랑스어로 적혀 있다. 파이프의 형태는 명확하고 단순하며, 배경은 밝은 베이지 색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 작품은 현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이 작품 앞에서 멈춰 서서 파이프와 문구 사이의 모순된 관계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마그리트는 이 그림을 통해 재현과 실재 사이의 간극에 대한 깊은 고민을 유도한다. 《이미지의 배반》은 언어, 이미지, 의미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현실과 재현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수수께끼이다.


《이미지의 배반》은 언어, 이미지, 의미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현실과 재현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수수께끼이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1929)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967년에 생을 마감한 20세기의 주요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일상적인 사물들을 예상치 못한 맥락에 배치하여 관객들에게 충격과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경험은 그의 예술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며 예술 활동을 병행했던 그는 1926년 첫 개인전을 열며 초현실주의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마그리트는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연인들》,《사람의 아들》, 《골콘다》, 《빛의 제국》등 그의 다른 작품들도 널리 알려져 있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적 접근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뒤흔들며 일상적인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AI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사용한다. 자연어 처리(NLP) 기술은 텍스트를 분석하고 의미를 추출하는 데 활용된다. 딥러닝 모델은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며 단어와 문장의 패턴을 인식한다.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와 같은 모델은 문맥을 고려한 언어 이해와 생성을 가능하게 한다. 감성 분석 기술은 텍스트의 감정적 톤을 인식하며, 기계 번역 시스템은 언어 간 변환을 수행한다. 질의응답 시스템은 주어진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찾아내는 능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들은 여전히 통계적 패턴 인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인간의 언어 이해와 비교하면 한계를 가진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복잡하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 제기하는 것처럼, 언어와 의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AI는 표면적인 언어 처리에는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깊은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낸다. 인간의 언어 이해는 경험, 문화, 감정, 직관 등 다양한 요소와 연결되어 있어 AI가 이를 완전히 습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AI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더욱 정교한 언어 이해 능력을 갖출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AI의 언어 이해 능력을 인간의 것과 비교하기보다는, AI가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와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이 현실과 재현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듯, AI의 언어 이해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언어와 사고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The Lovers)》(1928년),《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1964)


르네 마그리트, 《골콘다(Golconda)》(1953),《빛의 제국(L'Empire des lumières)》(1953-1954)




AI 언어 이해를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


언어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AI의 언어 처리 기술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은 언어를 맥락과 사용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동적인 활동으로 보지만, AI는 주로 통계적 패턴 인식에 의존한다. 이 차이는 AI가 언어의 깊은 의미와 문화적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어 처리, 딥러닝, 트랜스포머 모델 등의 기술 발전은 이 간극을 좁히고 있다. 미래에는 AI가 언어의 맥락적, 사회적 측면을 더 잘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언어 이해와 AI의 언어 처리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각각의 고유한 특성과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AI와 인간의 언어 이해는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며, 이는 언어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비트겐슈타인(1953)의 언어게임 이론은 언어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후기 저작 《철학적 탐구》에서 그는 언어를 고정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사용되는 맥락과 규칙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게임'과 같은 활동으로 이해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체스나 축구처럼 각각의 규칙이 존재하며, 그 규칙 안에서 의미가 형성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얼마나 많은 문장들이 존재하는가? 가령 주장, 물음, 명령 같은 것들. 이런 종류는 무수히 많다"고 언급하며 언어의 다양성과 유동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언어를 고정된 체계로 보던 기존의 관점을 넘어, 언어를 살아있는 실천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언어의 의미는 사용에 있다"는 그의 유명한 문구는 언어의 본질을 설명하는 핵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20세기 중후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은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와 비교될 수 있다. 소쉬르(1916)는 언어를 추상적 체계인 랑그(langue)로 이해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실제 사용되는 언어, 즉 파롤(parole)에 더 주목했다. 촘스키(1957)는 언어능력의 생득성과 보편문법을 강조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사회적, 맥락적 측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오스틴(1962)의 화행 이론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개념과 유사한 점이 있으며, 언어의 수행적 측면을 강조한다. 채터와 크리스티얀센(2022)은 《진화하는 언어》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언어를 의사소통을 위한 즉흥적이고 불완전한 과정들의 집합체로 보았다. 이들의 연구는 언어의 본질이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천적 활동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다양한 이론들은 언어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AI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이해한다. AI의 언어 처리는 주로 대규모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한 통계적 패턴 인식에 의존한다. 자연어 처리(NLP) 기술은 텍스트를 분석하고 의미를 추출하며, 딥러닝 모델은 단어와 문장의 패턴을 학습한다.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와 같은 모델은 문맥을 고려한 언어 이해와 생성을 시도한다. AI는 의미론적 분석, 감성 분석, 기계 번역 등 다양한 기술을 통해 언어를 처리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여전히 언어의 표면적 구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강조한 언어의 맥락적, 사회적 측면을 AI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AI의 언어 이해는 데이터 기반 확률적 모델에 의존하며, 인간의 경험과 문화적 맥락을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AI의 언어 처리는 주로 대규모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한 통계적 패턴 인식에 의존한다.

결국, 언어란 단순히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구축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다. AI는 언어의 표면적 패턴을 통해 우리와 소통할 수 있지만, 언어에 내재된 감정, 역사, 문화를 온전히 체화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이 한계는 AI의 결점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경험이 지닌 가치를 상기시키는 계기일 것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문화를 형성하며, 세상을 해석하는 창이 되어준다. 언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AI의 발전과 함께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인간과 기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서로를 보완하는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AI와 인간이 협력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 깊어지고 풍성해질 것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89 – 1951)



AI 언어 이해 능력 연구


AI의 언어 이해 능력에 대한 연구는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Anthropic과 Google Brain의 연구는 AI가 언어를 이해하고 추론하는 방식을 새롭게 조명하며, 언어 모델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Anthropic의 연구는 AI 모델의 내부 작동 원리를 탐구하여 언어 이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Google Brain의 연구는 복잡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AI의 추론 능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개발했다. 이들은 AI가 단순히 패턴을 인식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 언어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유연하게 활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AI의 언어 이해는 인간과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는 AI의 신뢰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인간의 언어와 사고 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이 연구들이 제시하는 발전 방향은 AI와 인간 간 상호작용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Anthropic의 'Language Understanding' 심층 연구(2024)는 AI 모델의 내부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 연구는 자사의 대규모 언어 모델인 Claude를 활용해 수백만 개의 특징(features)을 분석했다. 이 특징들은 도시, 인물, 추상적 개념 등 다양한 실체와 연결된 뉴런 활성화 패턴을 포함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특징들이 AI의 내부에서 서로 군집을 이루며 의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접근 방식은 연구자들이 AI의 반응을 보다 직접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예를 들어, 재훈련 없이도 AI의 특정 행동을 미세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각 AI 모델마다 개별적으로 특징을 카탈로그화해야 하며,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Anthropic의 연구는 AI의 작동 원리를 투명하게 만들고, 언어 이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Google Brain의 '언어 모델 추론 능력' 연구(2023)는 AI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Least-to-Most Prompting"이라는 전략을 개발해, 복잡한 문제를 간단한 하위 문제로 분해한 뒤 이를 단계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이 접근법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복잡한 추론 과제를 수행할 때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예를 들어, AI가 수학 문제나 논리 퍼즐을 해결할 때, 각 단계를 체계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다음 단계의 입력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최종 해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AI가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특히 복잡한 문제 해결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다만, 이 방법은 모든 문제 유형에 똑같이 효과적이지 않으며, 특정 도메인에 따라 추가적인 최적화가 필요할 수 있다. Google Brain의 연구는 AI의 언어 이해와 추론 능력을 한층 강화하며, 향후 문제 해결 능력을 더욱 발전시킬 기반을 마련했다.




AI의 언어 이해 능력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과 최신 기술 연구 사이에서 흥미로운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언급한 언어의 맥락 의존성과 유동성은 AI가 아직 완벽히 구현하지 못한 영역이다. 그러나 Anthropic과 Google Brain의 최근 연구는 AI가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Anthropic의 'Language Understanding' 연구는 AI 모델 내부의 의미 네트워크를 분석하며 언어의 맥락적 이해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또한 Google Brain의 'Least-to-Most Prompting' 전략은 AI가 복잡한 문제를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AI의 언어 이해 능력이 단순한 패턴 인식을 넘어 깊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의 언어 이해와 인간의 언어 사용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 보여주는 것처럼, 언어와 의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AI는 표면적인 언어 처리에서는 뛰어난 성과를 보이지만, 언어에 내재된 문화적 맥락, 역사적 함의, 그리고 감정적 뉘앙스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이는 AI가 인간의 경험과 직관을 온전히 모방하기 어려운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경험이 지닌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며, AI와 인간의 언어 이해 능력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결국, AI의 언어 이해 능력 발전은 인간의 언어와 사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AI 연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언어의 작동 방식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며, 언어학, 인지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새로운 연구 주제를 제시한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언어 능력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만들 뿐 아니라, AI의 한계를 통해 인간 언어의 복잡성과 풍부함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앞으로 AI와 인간이 협력하여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언어의 본질과 인간 정신의 독특성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발전을 넘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적 여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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