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중
2008년 개봉한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와 함께 실시간으로 전장을 분석하고 작전을 수행합니다. 그 장면은 당시에는 공상처럼 느껴졌지만, 2025년 지금 NATO는 그 상상을 현실로 바꾸고 있습니다. AI가 단순 무기를 넘어 전장을 해석하고 지휘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2025년 4월, NATO는 헬싱(Helsing)과 헬싱 덴마크가 개발한 AI 기반 전투 시스템을 공동 조달 방식으로 도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전장에서 수집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실시간으로 작전 판단을 보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전장 전체를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AI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입니다.
핵심은 ‘속도’입니다. 인간의 판단은 3초 이상 걸리는 반면, 이 AI 시스템은 0.1초 이내에 감지-판단-결정-지시의 루프를 완성합니다. 폐쇄 루프 시스템(closed-loop system) 구조로 설계되어, 위성, 드론, 레이더, 군 통신망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해 전장의 ‘디지털 신경망’을 형성합니다. 명령 체계의 디지털화가 본격화된 것입니다.
헬싱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 아닙니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와 협력 중이며, 드론 기반 실시간 표적 인식, 전파 간섭 방지 기술, 작전 중 정보 우선순위 자동 판단 등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NATO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달은 단순 계약이 아니라 NATO의 전략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 시스템은 ‘미국산 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의 의지도 반영합니다. 기존까지 NATO의 AI 기반 군사 기술은 대부분 미국 방산 기업 주도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헬싱의 사례는 유럽 내 AI 방산 생태계의 자립 신호탄으로 읽힙니다. 군사 기술의 디지털 주권 확보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자동화된 전쟁에는 윤리적 우려도 존재합니다. NATO는 “인간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원칙을 고수하지만, 실시간 자동 표적 식별과 무인기 공격 시스템 연계가 활성화되면, AI가 실질적으로 생사 판단을 대신하는 구조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전장의 효율성과 인간의 윤리 사이에서 충돌이 본격화될 것입니다.
NATO는 이번 시스템 도입을 통해, 전장을 아날로그 지휘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작전 운용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글이 인터넷 정보 검색을 통합했듯, AI가 전장의 모든 요소를 분석하고, 작전을 자동 기획하는 방향으로 전쟁의 문법 자체를 바꾸는 시도입니다. 전쟁의 알고리즘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에게도 이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지금껏 한국은 무기 체계 중심의 국방 투자를 지속해 왔지만, AI 기반 실시간 작전 통제 기술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입니다. 단순한 드론이나 로봇 기술이 아니라, 작전 구조 전체를 설계할 수 있는 AI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디지털 전장에서 뒤처질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따라가는 기술’이 아니라 ‘설계하는 기술’입니다. AI 기반 전장 시스템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통신 인프라, 윤리 프로토콜을 하나의 생태계로 구축해야 하며, 이는 민간 기술 기업, 군, 정부 간 전략적 연합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NATO의 사례는 단지 군사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총알보다 알고리즘이 빠른 시대. 미래의 전장은 누가 더 많은 무기를 가지느냐보다, 누가 더 빠르고 정밀하게 판단 구조를 설계하느냐로 승부가 날 것입니다. NATO의 이번 실험은 디지털 전쟁 시대의 서막입니다. 그리고 그 서막에 한국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지금이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