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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 로스팅

MRI로 해석 가능한 AI

앤스로픽 CEO의 새로운 AI 안전 전략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우리는 버스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향할지, 얼마나 속도를 낼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2025년 4월, 앤스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자신의 블로그 글 “해석 가능성의 시급성(The Urgency of Interpretability)”에서 이 같이 비유하며, AI 기술의 진보는 되돌릴 수 없지만, 그 구현 방식과 사회적 파장은 우리가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해석 가능한 AI’를 제안합니다.


해석 가능성(Interpretability)은 AI가 어떻게 판단에 이르렀는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입니다. 단순히 정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답에 이르는 사고 경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시대에, AI 역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어야 신뢰받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AI 모델은 블랙박스처럼 작동합니다. 결과는 탁월하지만,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정교함이 곧 불투명함이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AI의 판단은 때로 인간보다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명 가능한 AI는 신뢰를 회복하는 핵심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 금융, 채용 등 고위험 분야에서는 판단의 결과뿐 아니라, 그 근거를 요구받기 때문입니다. 이 설명 책임이 법제화되고 있다는 점은 기술 개발자에게 새로운 기준을 요구합니다.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답으로 ‘기계적 해석(Mechanistic Interpretability)’을 제시합니다. AI 모델 내부의 기능과 회로를 분석하고, 정보가 어떤 경로를 따라 가공되고 출력되는지를 추적하는 기술입니다. 그는 이를 ‘AI를 위한 MRI’로 비유하며, 보이지 않던 것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합니다.


앤스로픽은 이를 실제로 구현해냈습니다. 3,000만 개 이상의 기능(feature)을 식별하고, 이들 사이의 회로(circuit)를 추적해 모델의 사고 흐름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이는 ‘결과 중심의 AI’에서 ‘이해 가능한 AI’로 전환하는 첫 걸음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달라스가 있는 주의 수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모델은 ‘달라스 텍사스 오스틴’이라는 사고 회로를 따라 답을 도출합니다. 그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날 때, 우리는 AI의 판단을 단지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함께 검토하고 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기술은 AI의 내부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편향된 학습, 기만적 행동, 위험 정보 노출과 같은 잠재적 문제를 사전에 감지하고 차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엽니다. 해석 가능성은 더 이상 이론적 연구가 아니라, 기술 안정성과 윤리 구현의 실질적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앤스로픽은 이를 실증하기 위해 모의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레드팀이 의도적으로 삽입한 문제점을 블루팀이 해석 도구를 통해 진단해낸 사례는, 이 기술이 실제 환경에서도 효과적임을 보여줍니다. 복잡한 모델일수록 해석은 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아모데이는 이 기술을 생태계 전반의 기준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사와의 협력, 정부의 경량 규제, 학계의 참여를 제안합니다. 기술의 속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투명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설계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먼저 해석 가능한 AI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회적 권력과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미래는 그 기술을 누가 먼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바뀌고 있습니다. 얼마나 정답을 잘 맞히는가보다, ‘왜 그런 답을 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결과의 정확도보다, 그 근거의 설득력이 더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설명 없는 기술은 채택되지 않고, 채택되지 않은 기술은 시장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해석 가능한 AI는 신뢰 기반 제품 설계의 중심축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고객 경험, 브랜드 신뢰, 내부 의사결정 과정까지, 설명 가능성은 기술을 넘어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설계 철학을 다시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설명 가능성은 규제에 대응하는 유일한 해법이자, 기술 주권을 위한 선제 조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기술의 ‘작동 방식’ 자체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설명 가능한 모델은 곧 확장 가능한 모델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기술만이 신뢰를 얻습니다. 그리고 신뢰받는 기술만이 오래갑니다. AI의 미래는 더 빠른 연산 속도나 더 많은 파라미터가 아니라, 그 안을 얼마나 깊이, 정교하게 읽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AI라는 버스 위에 타고 있지만, 이제는 그 핸들을 잡을 시간입니다. 침묵하는 기술보다, 말할 수 있는 기술이 먼 길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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