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달러 패권의 비밀 병기

블랙록과 트럼프는 왜 디지털 달러에 올인할까

지금 동대문에서는 USDC(USD Coin)으로 실제 결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외환 송금도, 중개 은행도 필요 없습니다. QR코드 하나로 달러가 실시간 정산되며, 스테이블 코인은 조용히 우리의 일상 안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더 이상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닙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달러이며, 기존 금융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조용하고도 결정적인 기술입니다. 느리고 복잡했던 금융의 틀을 다시 짜면서,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Larry Fink)는 이 흐름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2017년까지만 해도 그는 비트코인을 “돈세탁 수단”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지만, 2025년에는 블랙록의 비트코인 ETF를 승인받으며 “토큰화는 금융의 미래”라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었습니다. 실물 자산과 가상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토큰화하는 이 흐름은 금융 접근 방식 자체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그 흐름의 환율이자 기반입니다. 래리 핑크는 이를 “금융의 인터넷화”라 명명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이 기술을 보다 노골적인 전략 자산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는 반대하지만, 민간이 발행하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는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현실적이고 계산된 선택입니다.

실제로 주요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들은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백억 달러의 유입이 자동으로 발생하는 이 구조는 스테이블 코인을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미국의 금융 방어선으로 작동하게 만듭니다. 트럼프는 이 메커니즘을 지정학적 영향력의 확장 수단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 교수이자 한국 블록체인 정책과 제도 설계의 선구자인 인호 교수는 이 복합적인 흐름을 누구보다 앞서 읽은 인물입니다. 인호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을 “미래 금융의 운영체제”라 정의하며, 한국이 지금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면 수출 대금을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동대문에서 이루어지는 USDC 결제를 예로 듭니다. “결제는 이미 시작됐지만, 정책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호 교수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주권과 통화 질서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한국은 아직 스테이블 코인을 법적으로 정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실험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질서를 설계하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인호 교수는 “규제를 풀라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설계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발행 주체 요건, 준비금 구조, 환매 기준, 투자자 보호 장치를 모두 아우르는 정합적인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기술보다 제도가 먼저이고,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입니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이미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을 국가 전략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신중한 관망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사이 경쟁의 룰을 선점할 기회를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기술의 이름으로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질서를 재편하는 언어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누가 정의하고, 누가 발행하며, 어떤 규칙 위에 운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결국 미래의 금융 권력을 좌우합니다.

새로운 금융 질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주도적으로 설계할 것인가.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통화 주권은 곧 과세 주권이고, 과세 주권은 국가의 통제력과 재정 자율성의 핵심입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이미 움직이고 있으며, 새로운 금융 질서는 조용히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