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가 이코노미, 한국의 딜레마
유튜브 슈퍼챗과 프리미엄 구독 수익은 국내에서 발생합니다. 시청자도, 크리에이터도, 콘텐츠도 한국 기반이지만 수익은 유튜브 해외 본사를 거쳐 정산되며, 과세는 대부분 자진 신고에 의존합니다. 한국은 이미 디지털 조세 누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동대문 같은 상권에서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실물 거래에 활용되고 있으며, 전체 외환 거래의 0.5%~1%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아직은 작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드나 은행 결제는 추적이 가능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을 쓰는 순간 거래 주체와 경로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 흐름은 AI 에이전트 서비스의 확산과 맞물려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에이전트는 상품을 비교하고 결제를 대신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인간 주체가 거래를 대신하면, 과세의 단서는 구조적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기존 조세 체계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름과 국적, 소득이 있는 주체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AI 에이전트는 법적 실체가 아니며, 세무당국이 호출할 수 있는 식별자조차 없습니다. 거래는 존재하지만 과세 대상은 증발합니다.
기술 구조도 과세 회피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결제는 암호화된 토큰으로 저장되고, 거래는 클라우드 기반 API로 해외에서 처리됩니다. 세무당국은 거래를 감지조차 하지 못하며, 과세의 실효성은 빠르게 무너질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결제를 수행하려면 원칙적으로 전자금융업 인가와 보안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AI 에이전트는 이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작동하게 될 것이며, 사용자들은 그 편리함에 빠르게 익숙해질 것입니다.
문제는 세금만이 아닙니다. 잘못된 주문이나 결제 오류가 생겨도 책임을 물을 주체가 없습니다. 사용자, 에이전트, 서비스 제공자 사이의 법적 귀속이 모호한 구조 속에서, 책임 공백과 과세 공백은 함께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국 디지털 산업은 오랫동안 한국어와 규제를 진입장벽 삼아 자국 시장을 방어해 왔습니다. 그러나 AI 시대는 다릅니다. 더 이상 한국어라는 언어가 시장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규제가 없으면 산업이 사라질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에이전트 경제에서 핵심은 결국 성능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더 성능 좋은 AI가 결제를 독식하게 될 것입니다. 국내 기업이 아무리 도메인 특화 경쟁력을 갖추어도, ChatGPT가 버전 업그레이드 한 번만으로 그 시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판교는 국가 개입을 경계했지만, 이제는 역설적으로 규제 당국과의 협업이 불가피한 시대입니다. 다만 자국 플랫폼을 규제하는 틀에서 벗어나, EU처럼 외국 서비스를 규제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미국계 AI 서비스 의존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세, 인증, 책임, 통제라는 인프라를 선점한다면 독점 구조를 지연시키거나 우회할 수 있습니다. 기술은 멈출 수 없지만, 질서는 설계할 수 있습니다.
OECD는 디지털세를 통해 사용자 기반 과세 구조를 확장하고 있지만, AI 에이전트처럼 비인간 주체가 자동으로 결제를 수행하는 구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기술은 언제나 제도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이제 AI 에이전트는 결제를 넘어 계약, 배송, 인증, 조정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이 흐름은 스테이블 코인과 결합해 통화 체계를 흔들고, 블록체인 기반에서 신뢰와 권한을 재편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기술 진보가 아니라 국가 권력 구조의 대체입니다.
기술은 이미 발전 중입니다. 늦는 쪽이 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 통제력을 잃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게 될 조세의 붕괴는 디지털 전환의 부산물이 아니라, 국가 작동 방식을 재편하는 초기 증상입니다.
국가는 과세를 통해 다시 질문을 시작해야 합니다. 과세는 수단이 아니라, 주권의 증명입니다.
‘소버린 AI’보다 ‘소버린 과세’가 더 심각한 화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