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여백을 잃어가는 우리
외부 자극과 또 다른 자극 사이의 간격을 여백이라 부른다면, 그 여백은 생존의 자양분입니다. 여백이 너무 길면 나태해지고, 너무 짧으면 몰입은 끊깁니다. 적절한 자극과 간격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을 조율하게 만듭니다. 이 여백은 인간다움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우리는 그 여백 속에서 비로소 집중하고, 내면에 침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여백은 자신의 질문과 타인의 응답 사이에 존재합니다. 질문은 단지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성찰하는 출발점입니다. 그 여백은 사유의 공간이며, 우리가 생각하고 되묻고 의미를 구성하는 시간입니다. 여백이 있어야 판단은 성숙해지고 해석은 살아 움직입니다. 때로는 그 말하지 않은 침묵이야말로 가장 깊은 대화입니다.
그러나 모바일과 AI는 이 두 종류의 여백을 모두 불편함으로 간주합니다. 기다림은 지루함으로, 망설임은 비효율로 처리됩니다. 대신 화면은 매끄럽게 전환되고, 질문은 바로 답으로 대체됩니다. 인간이 견디기 어려워했던 여백을 기술은 덜어냈고, 그렇게 우리는 모두 사용자로서 평등해졌습니다. 편리함은 빠르게 확산되었고, 여백을 견디는 지성은 점점 드물어졌습니다.
그 결과 모바일 시대는 자극의 과잉을 불러왔습니다. 손끝 하나로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알림은 끊임없이 주의를 흩어놓습니다. 정보는 넘치지만 한 가지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능력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자극이 강해질수록 주의는 산만해지고 몰입은 파편화됩니다. 이 과잉의 끝에는 숏츠가 있고, 집중력 저하라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합니다. 문제는 집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집중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면은 항상 새로운 자극으로 넘어가고, 생각은 깊어지기도 전에 끊겨버립니다. 마음은 피로하고, 잠은 얕습니다. 뇌는 더 강한 자극만을 갈망하며 현실보다 더 자극적인 화면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습니다.
AI 시대는 자극 대신 응답의 과잉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신의 질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정제된 문장이 도착하고, 사고가 채 여물기도 전에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망설임이 없는 곳에 사유는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질문이 짧아질수록 생각은 얕아지고 의미는 흐려집니다.
여백은 단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유가 자신을 가다듬는 시간이며, 통찰이 자라는 틈입니다. 질문과 응답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우리는 더 깊은 해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 역시 어느 날, 생각이 충분히 여물기 전에 도착한 AI의 문장을 그대로 붙여 넣은 적이 있습니다. 문장은 정제되어 있었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낯선 공허가 남았습니다. 생각 없이 얻은 답은 말이었을지 몰라도, 내 문장은 아니었습니다.
모바일 시대는 집중력 저하가 문제였다면 AI 시대는 공허함이 화두가 될 것입니다. 쏟아지는 자극과 넘치는 응답 사이에서 우리는 사유의 여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반응할수록 삶은 얕아집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멈춤의 용기입니다. 질문과 질문 사이, 그 침묵의 공간을 우리는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