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음’과 ‘생성’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
유튜브는 이제 하나의 제국입니다. 카카오톡과 함께 국내 MAU 1, 2위를 다투고 있지만, 사용 시간에 있어서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사용자 1인당 월평균 45시간 이상이 유튜브에 쓰이고 있습니다. 하루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는 어김없이 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텍스트보다 영상, 검색보다 시청에 익숙해지는 흐름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유튜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은 릴스를 중심으로 사용 시간을 42% 늘렸으며, 국내 이용자는 2,360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틱톡은 국내 성인의 약 16%가 사용 중이며, 짧은 영상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숏폼 콘텐츠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 소비의 기본 단위가 되었습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국내 MAU 기준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유료 구독자 수 공개를 중단하고 광고형 요금제를 확대하는 등 수익성 중심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국내 OTT 플랫폼들은 생존을 위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티빙은 2024년 매출이 33% 증가했지만 71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웨이브 역시 277억 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두 플랫폼은 합병을 추진하고 있으나, 논의가 길어지며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그 사이 사용자의 시선은 짧고 선명한 콘텐츠로 완전히 기울고 있습니다.
영화 산업은 더욱 명확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2024년 국내 영화 관객 수는 1억 2,310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CGV는 4개 지점을 폐쇄했으며,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는 합병을 논의 중입니다. 박스오피스 매출도 1조 3,000억 원에 그치며 반등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웹툰 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네이버웹툰은 2025년 1분기 4,727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387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외형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수익성과 창작의 균형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습니다. 2024년 일본 만화 시장 성장률은 낮은 한 자릿수에 그쳤으며, 디지털 만화 점유율이 전체 소비의 70~75%를 차지할 정도로 포화 상태입니다. 콘텐츠는 넘치지만 독자의 집중력과 충성도는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숏츠피케이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는 짧아지고, 감정은 압축되며, 이야기의 흐름은 해체되고 있습니다. 마치 스낵처럼 한 입 크기의 감정만이 선택받는 시대입니다. 전체보다 반응 가능한 조각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생성형 AI가 결합하며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ChatGPT, Runway, Midjourney 등은 텍스트·이미지·영상을 자동으로 생성하며 창작의 문턱을 낮추고 있습니다. 콘텐츠는 이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속도는 개성을 앞지르고, 차별성은 희미해지며, 결과물은 유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초단편 숏드라마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릴숏과 드라마박스는 영어권과 일본 시장을 빠르게 점유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비글로 등 신규 플랫폼이 시도 중입니다. 짧고 자극적인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짧은 콘텐츠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폐쇄성을 낳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유사한 콘텐츠만 반복 추천하고, 사용자는 점점 좁은 시선 안에 머물게 됩니다. 창작자는 플랫폼이 원하는 정답에 맞춰 움직이며, 실험과 도전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양성과 창의성은 효율과 생성이라는 기준 아래 조용히 밀려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콘텐츠는 두 갈래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AI와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자극형 콘텐츠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자의 감정과 의도가 담긴 서사형 콘텐츠입니다. 속도와 효율은 전례 없이 높아지겠지만, 그 안에서 이 이야기를 누가, 왜,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8’ 상영 전, 톰 크루즈는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Everything you see is authentic. We did it all for you. (여러분 보시는 모든 것은 진짜입니다. 이것은 모두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결국 반복 가능한 생성이 아닌, 누군가의 신념과 땀이 깃든 이야기만이 끝까지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더 많은 클릭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미션 임파서블’처럼 더 깊은 경험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