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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 로스팅

AI, 학습의 시대에서 경험의 시대로

데이터 고갈 vs. 경험을 통한 정교한 AI 학습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2024년, 튜링상을 수상한 리처드 서튼 교수는 Agenti AI 시대에 주목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강화학습의 개념을 정립한 인물로, 현재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 교수이자 DeepMind Alberta의 수석 과학자로 활동 중입니다. 서튼 교수는 수십 년 전부터 “지능은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다”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은 2024년 11월, DeepMind가 발표한 보고서 『The Era of Experience』를 통해 인공지능의 새로운 기준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AI 발전을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2000년대는 ‘데이터의 시대’, 2010년대는 ‘모델의 시대’, 그리고 우리가 맞이한 지금은 ‘경험의 시대’입니다. DeepMind는 AI가 더 이상 정적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배우고 적응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핵심 메시지는 명료하지만 강력합니다. “AI는 정답을 찾는 엔진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축적된 경험의 질과 구조입니다. 이 전환은 AI의 설계 철학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기존 AI는 주어진 지표, 즉 ‘프록시’를 최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나 DeepMind는 이러한 방식이 문제 해결 능력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점수를 잘 맞추는 것과 실제 맥락에서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정답보다 상황을 이해하고 맥락에 반응할 수 있는 AI가 필요합니다.


DeepMind는 이를 위해 ‘XTX(cross-time generalization)’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안합니다. 이는 시간이 흐르고 맥락이 달라져도 일관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날씨, 감정, 조건이 바뀌더라도 본질을 파악해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입니다. AI는 더 이상 단일 목적을 위한 계산기가 아니라, 일관된 정체성을 지닌 에이전트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 철학은 이미 DeepMind의 실제 프로젝트에서 구현되고 있습니다. 알파고는 수천 번의 실패를 반복하며 전략을 정제했고, 알파폴드는 기존 생물학 지식의 한계를 넘어 단백질 구조를 예측했습니다. 알파코드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풀기 위해 스스로 알고리즘을 생성하며 학습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정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반복된 시행착오와 피드백 속에서 진화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끈 대규모 데이터 기반 접근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고품질 학습 데이터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으며,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지속적인 성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AI가 앞으로 성장하려면, 스스로 경험을 만들어가고 학습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제 AI의 경쟁력은 모델의 크기나 파라미터 수가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게 경험을 설계했는가, 그리고 그 경험이 얼마나 일관되고 유의미하게 축적되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질문의 구조, 실패를 허용하는 시스템, 피드백을 축적하는 루프가 모두 하나의 유기적인 설계 안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AI는 더 이상 실험실 속 계산기가 아니라,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다뤄져야 합니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은 AI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정답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복 실험보다는 완벽한 결과를, 시행착오보다는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구조는 경험 기반 AI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이제는 기술을 얼마나 빨리 도입했는지가 아니라, 그 기술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했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그렇다고 전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 빠른 실행력과 디지털 적응 능력을 갖춘 국가입니다. 여기에 실패를 설계하고, 피드백을 구조화하며, AI에게 실험과 성장을 허용하는 문화가 더해진다면, 경험의 시대를 이끄는 중요한 선도국이 될 수 있습니다.


『The Era of Experience』는 단지 기술 보고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AI를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철학적 선언입니다. 기술은 누구나 확보할 수 있지만,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고 경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오직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모델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단계에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AI가 어떤 삶을 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리처드 서튼 교수는 AI는 더 이상 예측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설파합니다. AI는 경험을 축적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실패를 허락하며, 어떤 피드백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AI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결국 AI의 미래는 모델이 아니라 구조에 있습니다. Agentic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서 갈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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