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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 로스팅

21대 대선이 드러낸 세대 간 차이에 대한 생각

산업화, 정보화, 지능화 세대의 선택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2022년 대선에서 지역보다 또렷하게 드러난 것은 세대 간의 선택이었습니다. 2030 세대는 4050 세대와, 4050 세대는 6070세대와 확연히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며 왜 이렇게 서로 다른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요. 거주 지역, 자산, 직업과 같은 외형적 요인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각 세대가 살아낸 기술 환경이 결국 서로 다른 사유의 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되고,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며, 생각하는 방식까지 길들입니다. 각 세대는 서로 다른 기술의 세계에서 성장했고, 그만큼 각기 다른 질문의 방식을 체득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다른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바로 그 질문하는 방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1) 현재 6070세대는 산업화라는 두 번째 물결에서 땀의 윤리를 배웠습니다. 울산의 조선소, 구로의 공단에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쉼 없이 일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묵묵히 기계를 다루며, 자신의 몫을 책임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증거였습니다. 성실함은 가장 분명한 미덕이었고, 노력의 과실은 공평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윤리는 질문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어떤 방식이 더 나은가를 묻기보다는 멈추지 않고 따라야 했습니다. 노동은 신념이 되었고, 묵묵함은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땀의 윤리는 세상을 일으켰지만 동시에 사유를 뒤로 미뤘습니다.


(2) 지금의 4050 세대는 정보화 혁명의 길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PC와 키보드,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 세상을 연결했고, 더는 모든 것을 외울 필요가 없는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외우는 대신 판단해야 했고, 선택이 늘어난 만큼 기준이 중요해졌습니다. 이들이 체득한 것은 판단의 윤리였습니다.


정보는 넘쳐났습니다. 검색 몇 번으로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수천 개의 결과가 쏟아졌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기억의 외주화는 판단의 내재화를 요구했고, 이 윤리는 각자의 기준과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판단의 윤리는 혼란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게 만들었습니다.


(3) 2030 세대는 지능화라는 네 번째 물결의 초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들에게는 질문보다 답변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추천 영상, 인스타그램의 릴스, 틱톡이 추천하는 다음 숏츠. 생각하기 전에 선택지가 먼저 도착하는 시대에서 이들은 자주 질문할 기회를 잃습니다.


이 세대가 체화한 것은 위임의 윤리입니다. 플랫폼은 내가 무엇을 좋아할지 예측하고, 알고리즘은 나보다 빠르게 선택합니다. 이 위임은 효율적이고 정확하지만 점점 스스로 질문할 필요를 잊게 만듭니다.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대는 시대마다 다른 윤리를 배웠습니다. 땀의 윤리는 성실함을, 판단의 윤리는 책임을, 위임의 윤리는 효율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세 윤리는 서로 충돌하기보다 한 인간 안에 공존하며 각기 다른 지층을 만듭니다. 세대 간 차이는 그 윤리의 차이일 뿐, 우열이 아닙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신해 더 많은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그 이면에 잠재된 위험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필터 버블은 알고리즘이 만든 보이지 않는 감옥입니다. 사용자의 선호를 반영한다는 명분 아래 보고 싶은 것만 반복적으로 노출시킵니다.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과 미국 대선에서의 가짜 뉴스 확산은 이 필터 버블이 사회 전체에 어떤 파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정보와 답변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더 많이 알고 있지만 덜 생각하고, 더 쉽게 결정하지만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묻지 않는 일이 익숙해졌습니다. 판단은 점점 개인의 몫이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대신해 주는 기능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질문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필터 버블을 깨뜨리는 길은 더 많은 정보를 쌓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질문을 되찾는 데 있습니다. 자동화된 판단을 멈추고,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 선택을 다시 의심해 보는 것입니다. 질문은 정체를 흔들고 세계를 낯설게 만들며, 그 낯섦 속에서 비로소 사유는 다시 시작됩니다.


빠른 답변을 제시하는 AI 교과서보다 낯선 질문 하나를 던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점수를 잘 받게 하는 교육보다 서로의 시선을 교차시키는 토론이 중요합니다. 답을 맞히는 기계보다 생각을 열어주는 친구가 더 절실합니다. 기술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들을 되찾는 일이 사유의 온도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속도를 견디는 일입니다. 그 속도를 견딘다는 것은 나와 다른 사유의 결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나를 다시 성찰하는 일입니다. 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이해는 빠른 답이 아닌 긴 여백에서 태어납니다. 그 여백을 지켜내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세대 간의 다름을 품고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절실한 사유의 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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