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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 로스팅

AI는 정말 우리의 일을 대신할까?

AI가 바꾸는 고용의 진실과 착시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AI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사람을 뽑지 않겠습니다.”


듀오링고 CEO는 올해 초 내부 이메일을 통해 그렇게 선언했습니다. 반복적인 업무는 AI에 맡기고, 인간은 오직 창의성과 판단력이 필요한 역할에만 배치하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쇼피파이도 비슷한 방침을 내세웠습니다. CEO 토비 뤼트케는 “AI로 대체할 수 없는 업무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채용을 승인하지 않는다”며 AI-퍼스트 정책을 공식화했습니다.


국내 기업들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카카오는 ‘AI가 대체 가능한 직무에 대해 신규 채용을 제한한다’는 보도로 논란이 일자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업계 전반의 분위기는 이미 이 방향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신입 개발자 채용은 줄어들고 있으며, 단순 반복 업무에 대한 충원은 보류되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AI는 문서를 요약하고, 고객 문의를 분류하며, 기획안 초안을 만들어냅니다.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하며, 심지어 사람의 말투까지 모방합니다. 2025년 초 ‘AI 실업’이라는 검색어가 구글 트렌드 최고 순위에 올랐던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기술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사람의 역할을 잠식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예상 밖의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AI로 인해 대규모 고용 감소가 발생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는 것입니다. 번역가, 회계보조, 백오피스 인력처럼 AI에 취약한 직종의 고용은 지난 1년간 오히려 소폭 증가했습니다. 미국의 실업률은 4.2%, OECD 고용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데이터와 체감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느끼지만, 통계는 오히려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AI를 생산과 서비스에 실제로 적용하는 기업 비중이 여전히 낮다는 점입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해당 비중은 10% 이하에 불과합니다. 기술의 가능성과 기업의 실행력 사이에는 여전히 간격이 존재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AI가 전면적인 대체가 아닌 보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정 정리, 메일 분류, 고객 채팅 응대는 AI가 하지만, 협상과 기획, 사람 간 갈등 조정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입니다. 실제 업무 현장에서 AI는 도우미로 기능하며, 그 판단의 중심은 인간에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AI는 이제 도구가 아니라 조직 개편의 명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2024년, 구글·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총 15만 명 이상을 감원했습니다. 2025년 상반기에도 5만 명 이상의 해고가 이어졌습니다. AI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수 있어도, 강력한 구조조정의 정당화 수단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코노미스트 기사에서는 이 현상을 변화의 전조라 표현합니다. 지금은 고요해 보이지만, AI 도입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노동시장은 급격히 재편될 수 있습니다. 기술은 확산되고 있으며, 채용 전략은 선별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아직은 작은 변화일 수 있으나, 미래를 미리 비추는 거울일 수 있습니다.


이제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AI가 할 수 있을까?”에서 “왜 이 일을 사람이 해야 하는가?”로. 기술은 일의 방법을 바꾸지만, 그 의미까지 바꾸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인간만이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의 표정을 읽고 상황을 판단하는 간호사, 감정의 뉘앙스를 파악해 고객을 응대하는 브랜드 매니저, 맥락을 엮어 스토리로 만드는 에디터의 일은 AI가 흉내 낼 수 있어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기계가 처리하는 정보는 빠르지만, 사람은 의미를 연결하고 감정을 번역합니다.


AI는 유능합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설정하지 않고, 맥락을 기억하지 않으며, 결과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여전히 의심하고, 망설이며, 되묻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AI는 일을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일을 정의합니다. 우리가 이 문장을 쓰고 있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곧 우리가 아직 필요한 가장 명확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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