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에 갇힌 거인
지난 6월 13일 막을 내린 애플 WWDC 2025는 기대보다 허탈감을 더 크게 남겼습니다. 12년 만의 디자인 변화라던 ‘리퀴드 글라스’는 단지 UI 투명도를 조금 조정한 수준에 그쳤습니다. iOS 26이라는 이름과 애플 인텔리전스의 소소한 기능 개선 외에 새로움은 없었습니다. 하드웨어 신제품 발표는 끝내 나오지 않았고, 2시간 넘게 이어진 키노트는 공허했습니다. 무대 위의 애플은 더 이상 혁신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더 씁쓸한 것은 애플 스스로 이 위기를 자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애플 직원들은 자사의 AI 기술이 경쟁사보다 최소 2년은 뒤처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리의 정확도는 83%로 구글 어시스턴트의 93%에 한참 못 미칩니다. 30억 매개변수 AI로 수천억 매개변수 모델과 겨루겠다는 것은 무모한 싸움입니다.
투자 규모는 현실을 더 선명히 보여줍니다. 2024년 애플의 AI 투자는 200억 달러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800억 달러, 메타는 650억 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현금 부자 애플이 정작 미래에는 인색하다는 점이 역설적입니다.
애플의 폐쇄적 생태계 전략은 더 이상 강점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수직 통합이 경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는 개방적 협력이 승패를 가릅니다. 삼성은 구글 제미나이와 손잡고 AI 기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반면 애플은 여전히 스스로 쌓은 성벽 안에 갇혀 있습니다.
시장은 냉정했습니다. AI 혁신을 앞세웠지만 아이폰 판매는 줄었습니다. “AI 때문에 기기를 바꿨는데 별로다”는 불만이 쏟아졌습니다. 브랜드 신뢰도는 흔들리고, 고객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애플 경영진의 말은 문제의 깊이를 드러냅니다. 에디 큐가 “10년 뒤엔 아이폰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한 것은 비전이라기보다 항복 선언처럼 들립니다. 자사 핵심 제품의 미래를 부정하는 기업이 혁신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애플의 차별화 전략도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디바이스 AI는 성능 한계를 드러냈고, 2026년 출시될 스마트 글라스는 이미 메타 레이밴의 성공 이후를 쫓는 후발 전략일 뿐입니다. 모두가 AI 연합을 이루는 시대에 애플은 고립된 영광에 스스로를 묶고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애플이 여전히 과거의 성공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입니다. AI를 부가 기능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이미 디바이스의 정의를 바꾸고 있습니다. 코닥이 디지털을 외면했고, 노키아가 스마트폰을 과소평가했던 역사가 지금 애플 앞에서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애플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개방형 AI에 몰두하는 지금, 애플만의 독창적 길을 열 수 있다면 게임은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Neural Engine의 혁신적 진화, 완전히 새로운 AI 하드웨어 창조, 프라이버시와 성능을 동시에 잡는 기술이 그 길일 것입니다.
애플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을 지켜내며 또 한 번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그 방정식에 갇혀 어두운 내일을 맞을 것인가. 남은 18개월은 애플의 미래를 가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애플은 다시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스스로의 그림자 속에 머물게 될까요. 애플의 다음 한 걸음이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