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알파고가 뒤흔든 바둑계의 풍경

by 경영로스팅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충격은 컸지만 금세 잊혀졌다. 그러나 2022년 ChatGPT가 출시되어 우리의 일상을 바꾸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 시작점으로 다시 알파고를 떠올렸다. 장강명은 알파고가 바둑계에 던진 파장을 ‘먼저 온 미래’라고 명명한다.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겨졌던 바둑에서 AI가 승리를 거두자, 수많은 바둑 프로 기사들의 권위와 자존이 무너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한다.

2,000년 넘게 이어져 온 바둑의 신념은, 알파고의 등장 이후 놀라울 만큼 빠르게 무너졌다. 기사들은 더 이상 서로를 마주 보고 두지 않고, AI가 보여준 수를 분석하며 혼자 바둑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유한 수법과 개성은 점차 사라지고, 최적화된 수순을 따라가는 일이 성적을 결정하게 되었다. 바둑이라는 ‘예술’은 어느새 ‘효율’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었다.

장강명은 바둑계에서 벌어진 이 급격한 변화를 문학에 겹쳐 본다.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창작조차 언젠가는 기계가 재현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는 상상은, 이제 과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못할 것이다’가 아니라 ‘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작가는 이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작가는 전·현직 기사 및 바둑 전문가 35명을 만나 그들의 혼란과 체념, 때로는 기대를 기록했다. 누구도 “AI는 소설은 못 쓸 것”이라 단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기술에 대한 낙관이라기보다, 인간의 특권에 대한 의심의 고백이다. 창작의 고유성을 믿고 싶은 사람들조차 이제 확신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바둑계에서 벌어진 가장 아이러니한 현상은, 기계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감보다 노력과 학습이 중요한 세계에서, 노력형 기사들이 AI의 도움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프로에게 직접 배울 수 없던 사람들도 AI를 통해 ‘공정한’ 실력을 얻게 되었다. 민주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프로 기시들의 직업적 권위의 상실과 생계의 위협이 담겨있다.

장강명은 바둑계가 알파고를 맞이하면서 겪었던 부정, 분노, 타협, 수용의 과정을 밀도 있게 묘사한다. AI의 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격언을 고수하던 기사들, 기술을 받아들이느니 은퇴를 선언한 프로들, 그리고 기계를 활용해 성장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이 차례로 그려진다. 이 여정은 단지 한 업계의 변화가 아니라, 지금 영화와 방송 작가들, 그리고 프로그래머들이 겪고 있는 심리의 과정이기도 하다. 바둑이 먼저 도달한 그 미래는, 더 이상 먼 곳에 있지 않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감동이란 무엇인가, 창의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같은 질문은 매일 더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매일 288편의 감동적인 작품이 AI로부터 쏟아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감동을 감동이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희소성이 사라지는 세계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작가는 AI가 아직 하지 못하는 일을, 인간이 감당해야 할 역할로 분명히 남겨둔다. 상상하고, 의미를 만들고,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기술을 멈추게 할 수 없다면, 기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이 책은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한 사유를 요청한다.

책을 읽는 내내, 기계가 역할을 넓혀갈수록 우리는 무엇을 위해 쓰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스스로 되물었다. 기계의 압도적 위력 앞에서 인간은 때로 무력해 보이지만,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다. 끝내 남는 것은 ‘재미없는 삶보다는 재미있는 삶’이라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진실이다.

알파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인공지능을 낯선 존재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딥마인드는 바둑계를 뒤흔든 ‘알파고’의 다음 단계로, 인간 유전체를 해석하는 ‘알파폴드’와 ‘알파지놈’으로 방향을 옮겼다. 이제 기계는 바둑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 문학과 예술, 교육과 의료, 그리고 삶 그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장강명의 경고는 성급한 비관이 아니라, 조용히 생각을 건네는 질문에 가깝다. 먼저 온 미래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래서 장강명은 비관하지도 낙관도 하지 않으면서, 숨 가쁘게 달려오는 기술의 속도 앞에서 조용히 책을 맺는다.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을 붙들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지만, 그것이 더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 또한 함께 배어 있다.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하호정 4단의 고백은 기계 앞에서 무력해진 바둑계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으며, 작가의 주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알파고 때문에 바둑 산업이 파괴되고, 프로기사의 권위가 낮아졌죠. ‘내가 사랑했던 바둑’이 이제 왜 숫자로 평가받는 건가’ 하고 슬펐죠.

그런데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잖아요. 알파고가 둔 충격 자체는 슬프지만 알파고가 보여준 수를 모르고 죽었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그만큼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수가 많았으니까요.

우리가 ‘알 사범님’이라고 하잖아요. 그 수를 몰랐던 무지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이 이야기를 해준 다음 날 하호정 4단은 내게 메시지를 보내 생각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저는 AI가 없던 시절이 훨씬 좋은 걸로 의견을 바꿀게요. 낭만의 바둑을 두던 예전이 그리워요.

전에는 어떤 새로운 수를 연구할 때 거기에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배어 있었거든요. 그렇게 찾은 새로운 수에 환호하고 연구를 거듭하며 성장해 갔죠.

우리 인간이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낭만이 있었는데, 알파고 이 자식 이후에는 뭔가 서늘해져 버렸네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몸은 편해지는데 영혼은 시드는 것 같고, 지금의 바둑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해서 의견을 반복합니다.” (p280-281)




아래 문장들은 인공지능을 향한 작가의 근본적 통찰이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내면의 동기이기도 하다.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 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하는 것. 그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알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인공지능은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와는 다르다.” (p25-26)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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