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티를 지우려다 찾은 범인

by 경영로스팅

AI가 쓴 티를 지우려고 금지어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열다섯 개쯤 됐을 때 다시 읽었습니다. 절반이 제 말버릇이었습니다.


이유는 금방 찾았습니다. 저는 20년 넘게 영어식 화법으로 한국어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에 기반하여", "첫째, 둘째, 셋째"로 쪼개는 구조. 한국어에서는 생경한 리듬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고경영진 앞에서는 그게 오히려 통했습니다. 익숙한 말보다 낯선 구조가 귀를 잡았던 겁니다.


그런데 ChatGPT가 나타나더니 그 화법을 처음부터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영어 데이터를 압도적으로 많이 학습했으니 당연합니다. 20년짜리 제 무기가 하룻밤 사이에 누구나 꺼내 쓸 수 있는 기본 설정이 됐습니다.




AI를 도구로 써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초안을 맡기고, 고치고, 다시 맡겼습니다.

그렇게 나온 글을 지인에게 보여줬습니다. 돌아온 말은 하나였습니다. "이거 AI가 쓴 거지?"


제가 직접 쓴 부분도 섞여 있었습니다. 독자한테는 "누가 썼느냐"가 아니라 "AI 같으냐 아니냐"만 남습니다.


그래서 AI 한국어의 말버릇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번역투입니다. "~에 대해", "~를 통해", "~에 기반하여"가 줄줄 나옵니다. "업무 효율화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가 AI고, "업무 효율화 얘기 하겠습니다"가 사람입니다.


그다음은 형용사입니다. AI는 "다양한", "효과적인", "혁신적인"을 붙이는 걸 좋아합니다. 뭐가 다양하고 뭐가 효과적인지는 안 알려줍니다. "다양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가 AI고, "영업 3년, 기획 2년, 해외 주재 1년"이 사람입니다.


접속사도 문제입니다. "또한", "그러나", "한편", "더불어." AI는 문장 사이를 꼭 이어 붙입니다. "매출이 떨어졌다. 또한 인건비가 올랐다"가 AI입니다.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인건비는 올랐습니다." 사람입니다. 그냥 끊으면 됩니다.


마지막은 문장 길이입니다. AI가 쓴 글을 자세히 보면 한 문장의 호흡이 거의 똑같습니다. 줄자로 잰 것처럼. 사람 글은 들쭉날쭉합니다. 긴 문장 뒤에 짧은 문장. 그 리듬이 사람입니다.




이 네 가지만 걸러내도 꽤 달라집니다. 동료가 "이거 AI한테 시켰지?"라고 묻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문제는, 이 네 가지가 제 말버릇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AI를 고치는 게 아니라 제 말버릇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근데 진짜 문제는 다섯 번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