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씩은 해봤을 법한 가슴 따듯해지는 상상.

베일리 어게인 (A Dog's Purpose, 2017)

by 두부

- 글 특성상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독자분들께서는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해당 영화를 먼저 감상 후 읽어주시면 더욱 깊게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





종을 불문하고 우리 주변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도 반려견 한 마리를 입양하여 함께 산지 2년이 되어간다.



처음 만난 날 이름을 지어주던 것

딱딱한 사료를 먹지 못해 미지근한 물에 불려주던 것

예방접종을 모두 마치고 첫 산책을 나갔던 것

강아지 용품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한 번씩 들러 간식이라도 하나 집어 들게 되고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면 아래에서 뭐 하나 얻어먹을 때까지 알짱대고

슬개골이 빠져 수술 후 입원을 하고, 면회도 가고..

병원비는 왜 그렇게 비싼 건지 큰 비용을 지불한 달이면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손도 많이 가고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한순간도 후회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모든 순간이 멋진 추억으로 남았고 앞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루 끝에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무엇을 하고 있었든 간에 다 던지고 쏜살같이 뛰쳐나와서 반겨준다. 그럴 때면 종일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씻겨져 나가는 느낌이다.


반려견은 나를 항상 사랑해준다. 내가 일이 잘 풀려 기고만장할 때도, 더없이 초라해져서 한심할 때도 나를 사랑해준다.

그런 단어 그대로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마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도 있던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이 말 못 하는 조그마한 짐승에게 많은 것을 받고, 배우며 살아간다.


이 행복한 추억이 쌓일수록 행복하지만 동시에 이는 끝이 있는 추억임을 알고 있기에 무섭기도 하다.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길어야 20년 안팎이다.

특별한 사고가 없다면 반려견은 주인보다 먼저 생을 달리한다는 말이다.

이미 내 삶의 한 부분이 된 이 피조물을 떠나보내는 날 나는,

그리고 내 가족들은 어떤 모습일까?


따위의 슬픔을 넘어선 공포에 가까운 걱정을 하던 어느 날, 가슴 따듯한 상상력으로 위로와 감동을 동시에 준 영화 만났다.



베일리 어게인 (원작 A dog's purpose, 2017)





우리는 어떤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 걸까?
삶에 목적이란 게 있기는 한 건가?


유기견 보호소로 보이는 곳에서 태어난 강아지 한 마리.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의 목적에 대한 의문을 품은 강아지의 첫 번째 견생이 시작된다.



그러나 충분한 고민을 해볼 시간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첫 번째 생이 마감된다




그리고 바로 시작된 두 번째 견생.


특이한 점이라면 짧았던 이전 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는 것.


아직 이름이 없는 이 강아지는 이번 생에서야말로 처음 가졌던 의문인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겠다고 다짐하며 두 번째 생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개농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태어났다.





좁은 케이지 안에서 갇혀 지내던 이 작은 레드 레트리버는 강아지를 보러 온 사람이 열어놓은 문틈 사이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얼마 가지 못해 근처에 있던 두 남자들에게 잡히고 만다.


이 남자들은 강아지를 주우면서부터 몇 달러에 팔까부터 생각하며 그저 물건을 주운 정도로 여기면서 타고 왔던 차에 레드 레트리버를 싣고 길을 떠난다.





설상가상으로 이 멍청한 두 남자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 그것도 시동을 꺼 에어컨조차 나오지 않는 자동차 안에 강아지를 두고 식사를 하러 떠나버린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생이 끝나버리는 걸까. 아직 질문에 대한 답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뜨거운 차 안에서 그렇게 두 번째 생이 끝나가려 하고 있을 때 마침 지나가던 한 모자가 차 안에 있는 강아지를 발견하고 이를 구해주게 된다.


첫 번째 주인인 "이든"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든의 가족은 구조한 레드 레트리버에게 "베일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키우기로 결정한다.


베일리는 이든과 함께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자기가 태어난 목적을 "이든과 함께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 대학생이 된 이든은 베일리에게 금방 올 거라는 말을 남긴 채 학업을 위해 도시로 떠나게 되고. 베일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별 앞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이든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다.


베일리는 늘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었으나 그 질문에 다시 의문을 품게 된다.



이든과 내가 함께가 아니라면,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뭐지?



이든은 금방 오겠다고 했지만 야속하게도 개와 사람의 시간의 흐름은 달랐다.


이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베일리였고, 영원히 그렇게 해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을 그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가족들은 늙고 병든 베일리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가지만 병원에서는 무얼 하더라도 결과는 다를 게 없을 것이라며 안락사를 결정하고, 가족들은 이든에게 급히 연락을 한다.



이든이 급하게 병원을 찾아오지만 둘에게 남은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베일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꼬리를 흔들며 이든을 반겨준다.


오랜만에 만난 이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


하지만 베일리에게는 이미 그럴 힘도, 시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 누구보다 이든을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은 베일리였지만, 손쓸 방도 없이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이든을 바라보면서 베일리의 두 번째 삶이 마감된다.


이든도, 베일리도, 못다 한 채로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남긴 채, 이젠 정말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슬퍼할 시간도 없이, 베일리의 세번째 삶이 시작된다. 이번에도 역시 이전 생에 대한 기억을 모두 가진 채로 다시 태어나게 된 베일리. "삶의 목적"에 대한 의문이 더해가는 가운데, 이번에는 애완견이 아닌 경찰견 "엘리"로의 삶을 살게 된다.






이든의 반려견 "베일리"로,


경찰견 셰퍼드 "엘리"로,


대학생의 소울메이트 웰시코기 "티노"로,


작아서 귀여울 때 입양되었으나 덩치가 커지자 결국 버려져 유기견이 된 "와플스"로.


베일리는 계속해서 다시 태어난다, 여러 주인을 만나고 여러 삶을 겪다가 이번에는 버려져 갈 곳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된다.

입양되던 날부터 유기되던 날까지 나무기둥에만 묶여있던 베일리는 마지막으로 놀았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즐거움과는 먼 생활을 얼마나 한건 지도 모르겠다.


유기되어 떠돌며 나날이 지쳐가던 베일리는 목적지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도시를 벗어나 익숙한 곳에 다다른다.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있는 곳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냄새들로 가득한 곳으로.




이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냄새들 중에서, 베일리는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던 냄새를 찾아내고 곧장 그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베일리가 살아온 세월만큼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 "이든"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데다가 모습도 바뀐 채 돌아온 베일리를 이든은 알아볼 수 있을까?


돌고 돌아 이든을 다시 만난 베일리는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국내 개봉 제목 "베일리 어게인"이지만


원작의 제목은 "A Dog's Purpose". 직역하면 개의 목적이 된다


이러한 제목처럼 영화는 한 마리의 개가 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개의 시각에서 풀어나간다.


사람과 사람 간에 얽혀있는 복잡한 관계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갈등, 대학 진학, 직장생활 등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잠시 동안의 이별...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 역시 "개의 시각"에서 바라보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으로 "사람"이 사건사고를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 아닌 이전 생의 기억을 가지고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는 "동물"을 사용한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주인공인 베일리는 여러 번의 삶을 살면서 견종도 이름도 계속해서 바뀌지만 그 속에 있는 주체는 "베일리" 단 한 마리로 고정되어있다. 개인적으로 국내 개봉 시에 제목을 "베일리 어게인"으로 바꾼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될 정도로 영화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제목 덕인지 몰라도 영화를 보는 내내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것보다 베일리에게 집중하게 되었고, 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베일리의 모습은 나를 포함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때론 슬픔으로, 때론 따듯한 감동으로 눈물짓게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거나 키우려고 생각 중인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 준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께하는 반려견이

현관문을 열어도 반겨주지 않는 날이 .

밥 먹을 때 탁 아래에서 알짱대 꼬맹이가 없는 날이 오면.

함께한 시간이 끝난 후에, 견딜 수 없이 슬퍼지면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지개다리를 먼저 건너가서 내가 올 때까지 또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우리의 그 시간들을 간직하고 다시 살아가 있을거라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행복게 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 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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