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라굽쇼?
삼성전자의 감비아 지사에서도 대리쯤 되었던 나에게는 밀접하게 업무를 협업해야 되는 일종의 [파트너]를 빙자한 시어머니가 있었다. 시어머니라 호칭함은, 우리 엄마와 같이 나를 사랑해 주지도, 키워주지도, 하다못해 나에게 돈을 쓰지도 않았지만, 시시건건 간섭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시어머니가 더 많지만 80년대 사고에 머물러 있는 저자의 구시대적 관용구 사용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아 정확히는 시누이에 가깝다. 시어머니는 아들이라도 뺏긴 억울함이 있지, 시누이는 이러나 저러나 저새끼를 누가 데려갈까 생각하던 남동생(혹은 오빠)를 치워준 사람인데 왜 그렇게 얄미운 것인가.
아무튼, 이야기가 좀 샜는데, 저 파트너는 얼마나 애매한 관계냐면 우선 기본적으로 다른 팀이다. 다른팀, 옆의 사람 하지만 우리팀원보다 나와 밀접하게 일하는 사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나는 휴대폰 AS팀, 그 망할 시누..아니 파트너는 휴대폰 판매팀인데, 우리 둘다 구로구 담당이라 팀은 다르지만 같은 목표(많이 팔고, AS 잘해서 또 사게 만들자)를 가지고 파트너로 일해야 된다는 소리다. 물론 내 상사는 AS팀 팀장님이고, 그사람 팀장은 판매팀 팀장새ㄲ....님이니 보고라인도 다르고, 서로 상하 관계도 아닌 협업하는 관계임을 분명히 해둔다.
그래 여기까지야 좋다만, 안그래도 남인데 같이 붙어있어야 하는 회사의 대부분의 존재가 불편한데 이 사람은 나보다 나이도 ##년 많고, 그에 따른 경력도 기셔서 다른 팀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나를 자신의 부하직원 부리듯 하는데서 문제가 불거졌다. 처음에는 뒤늦게 입사한 죄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겠지라며, 동방예의지국 사고 방식에 힘입어, [죄송합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전직장 초특급 전통 꼰대 한국 대기업에 비교해도 이사람의 태도가 점점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일반 여성말고, 내 기준으로다가) 마치 8월 한여름에 생리통이 극심한 생리 이틀째날 출근길에 15분을 걸어 땀뻘뻘인 채 9호선 급행열차를 탄 사람의 신경질을 늘 나에게 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와 같은 팀원이 그 사람이 내게 보낸 메일을 보더니 [##님이 원래 메일을 이렇게 보내세요?]라고 묻는 순간 아 나는 호구 잡힌거구나를 실감, 아니 확인 받을 수 있었다.
메일내용은 사실 그간 그분이 내었던 신경질에 비하면 굉장히 예의바르고 공손한 버전이었으나, 다른사람이 보기에는 그조차 무례하고 요청하지 말아야 할 일을 나에게 요청한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판매 실적이 안나온거를 (나에게 짜증내며), AS가 안되서 이건이 발생하였다. 너 어떻게 책임질래] 정도의 귀여운 내용이었다. 그 메일 건을 시작으로 그 파트너의 태도에 대한 내용이 팀 내에 공론화 되었다. 그리고 HR과 나의 팀장님까지 소환되어 그 파트너에 대한 문제 및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되기 시작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던 옛날 말은 틀렸다. 나는 맞은 놈, 아니 맞은 년인데도 이직한지 1년 채 되지 않은 회사의 이슈 중심에 섰다는 것이 불편하였고, 때린 놈은 지사장의 학교 선배이자 전 직장도 같이 다녔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이야기 하며 나를 압박해 왔다. (이제와서 소심하게 궁시렁 거리자면 후배가 지 상사로 온게 뭐가 자랑이라고, 그걸 본인이 얼마나 못났으면 가만히 있는 지사장이 마치 자기 편인 마냥 뒷배 삼은게 어이 없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그 파트너가 작전은 잘 세운 게 맞는 것 같다) 지금도 가장 크게 후회하는 일이지만, 나는 그때 정식으로 HR에 리포트하고 그 사람의 인사기록에 [문제있음]을 남기기 보다, 유야무야 그사람의 사과를 받는 선에서 해당 사건을 정리 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하야, 대망의 사과의 날이 다가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듯 우린 구로구의 삼성전자 휴대폰 판매량을 같이 이야기 하다가 시간이 되어 [회의하실까요]라고 말하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파트너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같이 업무를 하다보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로 시작되는 [미안, 죄송]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오묘한 내용을 약 15분에 걸쳐 쏟아 냈다. 나는 들으면서도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가 아니라 이건 사과인가 서술인가에 대해 헷갈려 하며 [사과]를 얌전히 기달렸다. 하지만 파트너의 입에서는 끝끝내 [미안, 죄송, 사과]는 나오지 않았고 서로가 예민했던 거에 대해 추후 잘 협업해 보자고 이야기 하며 문장을 끝맺었다.
나는 타고난 호구로소이다를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이 논란의 중심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기에 파트너의 애매모호한 말을 사과로 번역하며 회의실을 벗어나려고 했다. 어쨌든 이 사람과 회의실 문 밖을 나가는 순간은 다시 파트너로 구로구의 휴대폰 판매량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사과 하나 받자고 충분히 불편한 상황을 더 악화 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리를 일어서는 순간 파트너의 한마디가 나를 멈춰세웠고, 그 뒤의 여러 마디가 그 사람과 협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제이님], [저도 피드백 드릴게 있는데요, 제이님 대답하실 때 마다, 제 말끝마다 [네], [네] 라고 하시는데 그거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거 이해하셔서 답하는거 아니시고 저 좀 불편하거든요]
이건 무슨 개소리지?
정말 한 2초 정도는 저 말이 달팽이 관을 통해 들어와서 뇌로 인식된 이 단어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몰라서 멍했던 거 같다. 그의 말을 해석하자면, 내 말버릇으로 누군가와 대화할때 추임새를 [네, 네]라고 하는데 그걸 트집잡아 너가 이해해서 대답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불편하니 하지 말란다... 글을 쓰면서도 이 개소리가 어느 바둑이 짖는소린지 이해가 안가는데.. 그딴 말에 피드백이라는 포장을 하다니..
이 과정에서 제일 멍청한건 [아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나 였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저 개소리의 어이없음은, 왕복 8차선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자의 맥락없음과 결을 같이 한다.
추후 저 피드백(달리 붙일 말이 없으니, 우선 파트너가 지칭한 피드백이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자)에 대한 내 동료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는데, 아직도 저 말이 왜 저기서 튀어나왔는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그가 사과할만큼 잘못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대화를 서로 불편한 점을 주고 받는 [피드백 세션- 참고로 이놈의 피드백 문화에 대해서도 따로 쓸 만큼 할말이 많다]으로 삼았는데 자기는 할말이 없으니 무언가라도 [너도 잘못한거 있거든 이 기집애야!!!]라고 트집 잡고 싶은건 아니었을까 추측이 가장 설득력있었다.
아무튼 파트너와의 첫 어긋남은 이후에도 파트너가 바뀔때까지 쭈우우우우우우우우욱 이어지는데, 그나마 첫 갈등에서 바닥을 보여줘 바닥에서부터 점차 개선되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점은 참 고마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