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 일상

떡진 머리

by Jay

학사 경고까지 맞은 나는 2학년 1학기에 결국 휴학을 선택했다. 원래대로라면 곧 죽어도 휴학을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20명 남짓한 학과에서 4~5명씩 조를 짜서 진행되는 전공 수업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던(?) 고장난 나는 휴학을 하는게 동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저 조별 과제가 정말 노가다수업으로 예를 들자면 목민심서(물론 한문)을 던져주고, 그걸 노트에 필사한 다음 뜻을 해석하고 모르는 한문은 지정해준 옥편으로 찾아 뜻을 적어 오는 수업이었다. 양도 방대하거니와 예시로 든 목민심서와 달리 해석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으로 치면 경상남도 구미시 뭐시기 읍의 고을에서 원님이 지방 다스릴때 쓰던 한문책을 던져주고 해석을 하라고 하니 도저히 한명이 다 해석할 수 없어서 조별로 구역을 나눠서 해석해서 합본하는 형태였다. 한 명이 빠지게 되면 그 분량만큼 다른 조원들이 나눠야 하는데, 그 다른 조원이 내 동기, 군대 다녀와 복학한 선배, 졸업 전 D+ 맞은 학점 복구를 위해 재수강 듣는 졸업학기 선배이면 프리라이딩이 왠말입니까. 물론 나는 양심을 갖춘 지성인이기에 피해주기 전에 빠졌지만, 그 구성원에서 프리라이딩이라는건 어지간한 배포가 아니고서야 쉽지 않은 구조기도 했다.


당시 고장난 나의 일상을 돌이켜 보면 불법 사이트에서 드라마를 다운받아서 보고, (그것도 좋아하는 드라마를 한두개 정해 열번 넘게 돌려보았다 지금은 반성하며 불법 다운로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커피빈 아르바이트를 가서 생활비를 벌고, 하루에 한끼 먹으며 살도 8kg 빠졌다.


돌이켜 보면 약간의 향수병과 무기력증과 우울감이 몰려온 상태였던 것 같다. 누가봐도 도박에 빠진 사람은 막상 본인이 도박에 빠진 것을 인식하지 못하듯, 나는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임을 알지 못했다.

내가 심각한 상황인 것을 인지하게 된 데에는 하루가 다르게 빠지는 살도, 휴학을 했다는 불안감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도 아니라 감지않은 떡진 머리에서였다.

당시 휴학하는 주제에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다 주신 돈으로 지상층에 살고 싶지 않았던 파워 모범생이었던 나는 저렴한 반지하 하숙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지하 복도를 기준으로 화장실은 공용이고, 지나가다 보면 각자의 방이 등장하는 구조였는데 당시 나는 몸을 일으켜 출근하고, 그대로 들어와 쓰러지듯 잤기 때문에 씻는다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반지하의 화장실은 공용시설이었기 때문에 옆방에 조선족 남자 아저씨가 정말 실수로(과연), 내가 머리 감고 있는데 들어온 사건 이후에는 화장실을 가기 싫었다.


그러다보니 세수야 한다 쳐도 머리를 감기 어려웠고 (화장실이 좁아서, 쭈그려 앉아 머리를 감다보면 옷이 다 젖어 자동으로 샤워도 해야 되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나의 머리는 20대 초반 여자의 머리로 보기 어려운 형태가 되었다. 그런 상태로 서비스업인 커피빈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점장님이 어느날 구석으로 날 불러 정말정말 미안하단 표정과 조심스러운 말투로 [저.. 혹시 머리를 감고 와주면 안될까?]라고 하시는 순간 [맞다, 내가 머리 언제 감았었지?]란 생각과 함께 엄청난 창피함이 몰려들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씻고 와주면 안되겠니라는 부탁을 듣다니. 그리고 언제 감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은 순간 나는 나에게 문제가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책임지는 것이 싫어 책임감이 필요한 일들을 내려놓았는데, 그럼으로써 나는 역설적으로 내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결국 책임감을 내려놓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나는 그런 용기까지는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막막함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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