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꿈의 비밀

아브랑슈(Avranches)의 추억

by 경계인



작년 여름의 일이다. 남편과 나는 여름 바캉스를 맞아 리옹에서 출발, 파리를 거쳐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에까지 이르는 긴 로드트립을 했었다. 자정에만 잠깐 반짝이는 에펠타워를 보겠다고 차로 파리 시내를 관통하고, 도빌에 가서는 가슴 먹먹해지는 바다를 보며 영화 <남과 여>를 떠올렸다. 배가 고프면 크레이프나 샌드위치를 사 먹었고, 와인 한 병을 사서 마음에 드는 풍경을 앞에 두고 마셨다. 날씨가 더우면 차를 세우고 수영을 했다. 그랑빌(Granville)의 해파리 가득한 바다에서 그 해 남편에게 처음 배운 수영을 자신 있게 선보였을 때, 스스로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아이들처럼 튜브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던지. 몸이 편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고 또 행복한 기운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랑빌에서 다시 차에 오르기 전까지는.





쌩쌩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 차가 멈춰버렸다.




우리는 몽생미셸(Mont-Saint-Michel)을 거쳐 생 말로(Saint-Malo)에 갈 계획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최종 목적지 방데(Vendée)에 있는 조부모님 댁에 가는 것이었다. 그랑빌에서 수영을 한 후 다시 차에 올라 달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얼마쯤 달렸을까. 차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힘을 잃어가는 게 느껴졌다. 차들이 빠르게 속력을 내고 있는 이 도로에서 갑자기 우리 차의 속도가 줄어들자 남편은 도로 옆으로 난 작은 길로 차를 가져갔고, 그때 차의 시동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뒤에서 차를 밀기도 하고, 괜히 엔진룸을 열어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최고로 더운 오후의 시간대가 우리를 점점 더 지치게 했다. 푸조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과연 전화 연결이 될 것인가 하는 의심을 가득 안고서. 8월의 바캉스 기간에는 프랑스 나라 전체에 마비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가 조용하다. 마치 이 날만을 기다려온 사람들처럼 모두가 잠시 멈춤을 하고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전화는 생각보다 빨리 연결이 되었다. 한 시간 안에 수리 기사를 보내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우리 차의 나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0년이 넘었고, 20만 킬로미터를 넘게 달렸으니 이제 그만 보내줄 때가 된 것 아닐까. 생각이 점점 짜증으로 변환될 무렵, 수리 기사가 도착했다. 잠깐 살펴보더니 일단 센터로 가야 한단다. 그렇게 우리는 트럭에 실려 푸조 센터로 가게 되었다. 계획에도 없던 작은 마을, 아브랑슈(Avranches)에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를 빨리 고쳐서 저녁에는 생 말로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센터에 도착해 몇 명의 수리 기사가 차를 살펴보더니 최소 이틀이란다. 부품이 없어서 다른 데서 받아와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들도 이틀이 될지 사흘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마을의 호텔 방이 없었다. 몽생미셸이 가까워 사람들이 이 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가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짐 가방을 들고 하릴없이 길가에 주저앉았다. 그때 차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호텔 숙박비를 회사에서 지불해 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센터에서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싶었다. 서비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느려 터진 이 나라도 약간씩 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한 호텔을 찾아 결국 그곳에서 이틀을 묵게 되었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현대적이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그만큼 숙박비도 비쌌지만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우리 뭘 하지?



저녁을 먹고, 어두워진 마을을 산책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할 게 없어 보였다.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엔 아무도 없고, 묘한 정적이 흘렀다. 방을 찾아가는 복도에서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남편과 나는 바람이 어디에서 오는지 잠깐 둘러보았지만 이내 관심을 거두었다. 그날 밤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이빨이 못처럼 길게 생긴 남자가 내 얼굴을 덮치는 꿈이었다. 너무나 기괴하고 무서워서 아침까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랑빌과 아브랑슈 가운데에서 차가 멈췄다. 남편이 푸조 기사를 찾으러 가고 있다.



호텔에만 있을 수 없었다. 악몽을 꾼 데다 전날 느꼈던 이상한 기류까지 더해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우리는 마을 중심으로 나가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느리게 돌아다녔다. 그만큼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러갔다. 작은 성에 올라 노르망디 특유의 회색빛 삼각지붕을 구경했다. 마침 날씨가 맑아 멀리 보이는 몽생미셸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바다 위의 수도원이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로 떠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드디어 보험회사의 기사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푸조 센터로 데려다 주기 위해서였다. 기사는 우리가 밤을 보낸 호텔이 있던 곳이 옛날 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가 있던 자리였다고 했다. 그 맞은편은 법원이었단다. 기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내 악몽의 주인공이 단두대에서 사라진 사람들 중 한 명은 아니었을까 하고 이야기를 짜 맞춰 보았다.


사실 아브랑슈는 대학살을 경험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시기, 1793년에서 1796년 사이에 프랑스 서쪽에 위치한 방데에서는 왕당파와 혁명파의 처참한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중 영국으로 탈출하려던 800여 명의 포로들이 아브랑슈에서 모두 총살형을 당한 것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그런 비극을 겪고도 삶을 이어나갔어야만 했을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잠에서 깨어나도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이란 그런 것일까. 어쩌다 이 마을에서 이틀이나 묵게 되었지만 그 어떤 도시보다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차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서둘러 몽생미셸로 향했다.

아픈 역사와 악몽의 기억은 그곳에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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