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연스레 Aug 26. 2020

2. 정신줄 잡으시고요. 희귀병 들어갑니다

xxx 증후군이 뭐예요??


평화기에서 혼란기로,


직장생활 10년 차에 퇴사하였고 2020년은 고대하던 안식년. 공들여 먹고, 놀고, 쉬는 일 밖에 없는 평화기에 병이 찾아왔다고? 명분이 딱히 없는데? 왜 쉴때?

잠깐!! 이거슨 직장인 시절 휴일&휴가 첫날 아프기 시작해서 출근날 아침부터 괜찮아진다는 현대 노비병과 평행이론??!! 힝.. ㅠ 억울해유.


억울한 사람 천지인 이 곳에서의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소속은 혈액 종양 내과.

특별한 약물 처방이나 치료 없이 채혈 - 혈액검사 결과 확인 - 수혈 -채혈...의 무한 반복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헌혈 양이 줄어 매일 혈액을 공급받는 일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러한 수고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혈액 검사 수치는 반등 없이 지속적 하한가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이라 죄스러웠다. 그 사이 CT 도 찍었고 골수검사를 추가로 받아 종합 검사 결과만을 기다렸다.


매일 아침 교수님 회진 시간은 3분 남짓 될까? 업데이트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준비한 질문들을 빠르게 쏟아낸들 담당 교수님은 현재의 증상만으로는 병명을 알 수 없고 희귀 케이스라 쉽지 않으니 검사 결과 기다려보자, 곧 진료 방향이 잡힐 것이라 하셨다. 그 이상 답변은 딱히 없으셨다.


깜깜이 기간 동안에는 병원에서 어색하게 지냈다. 마치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듯 커튼 꼭꼭 치고, 입 꾹 닫고 에어팟 귀에 딱 붙이고 넷플릭스&유튜브만 재생했다. 속 시끄러우니 진지한 건 지양하고 맛있는 녀석들 & 유튜브 먹방 정주행.




교수님 호출이에요!!




갑자기 긴급 호출이 있었다. 입원 보름 차에 드디어 종합 결과가 나왔다!! 나를 포함 수많은 의료진들은 모두들 교수님만 바라보며 침꼴깍. 교수님이 심호흡 한번 크게 쉬고 휘리릭 말씀해주셨다.


“우리가 예상했듯이 (우리요??) 희귀 난치병이며,  95% 확률로 “에반스 증후군(Evans syndrom)”으로 사료됩니다.”


“.....?? ?? 네?? 그게 뭐예요??”


알지 못해 제대로 놀라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눈알만 굴리고 있으니 교수님이 추가로 설명해 주셨다. 물론 내 귀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로 흘러나왔지만.






병명부터가 낯설다. 증후군(신드롬)으로 끝난다고??

미친 듯이 검색해 봤다. 희귀 난치병답게 관련 정보와 자료를 찾는 일부터 애를 먹었다. 어찌나 빈약하던지, 혈액 관련 희귀병 환우 모임 카페에도 가입해서  유사 사례들까지 싹싹 긁어모았다.


내가 이해할만한 수준으로 정리해보았다.


- 에반스가 이 질환 사례를 첨으로 보고해서 붙여진 병명

- 자가 면역 혼란 질환, 내 몸 스스로가 신체 내의 적혈구/혈소판/백혈구 세 가지 모두를 파괴, 주요 특이사항임

- 원인 불명

- 용혈성 빈혈&혈소판 감소 증세가 합쳐짐

- 성인의 경우는 대부분 만성질환, 자주 재발함

- 확실한 치료법, 치료약 없음

- 매우 드문 희귀 질환

- 완치 사례 (현대 의학을 바탕)는 못 찾음

- 에반스 증후군 걸린 반려견들의 사례/자료가 더 많음


그나마 해볼 만한 치료법으로는 수혈이나 스테로이드&면역글로불린&항암제 사용 정도다.

그러니까 에반스 증후군 치료법 & 신약이 나오기 전까지는 수시로 혈액 검사받고, 위험 수치들이 나오면 재입원해서 수혈받고 약물 복용해서 일상생활 가능 수치까지 올려놓고 퇴원해야 한다.


게다가  임신도 어려워졌고, 혈소판 수치가 낮으면 비행기도 타지 말란다. 심지어 이 병은 잘 먹고 잘 쉬고, 운동하여 컨디션을 좋게 유지한들 수치를 올릴 수 없다고 한다(어쩌라??). 인력으로 어찌할 바 없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후아... 숨이 턱턱 막힌다. 평범한 일상에 깜빡이 안 키고 훅 들어온 희귀 난치병을 어느 누가 곱게 소화하리오. 길가다 별안간 명치 세게 맞은 꼴인데!!






건강검진>응급실>희귀 난치병, 지독한 악몽 같다.

아침에 눈 떠 병실 천장을 바라보다 눈물이 주룩, 수혈받으며 스도쿠 게임하다가 훌쩍, 자려고 누워 오만가지 잡생각 하면서 입 막고 오열. 서럽고 기막혀 자다가도 이불 킥 날리고 베개 팡팡 내려치고 난리난리.

현실을 자각하던 부정하던 간에 오롯이 괴로워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도 누군가 커튼을 열고 들어와 토닥여줬음, 커피 한잔 마시러 나가자고 해줬음 했다.


부모님께는 어느 정도 눈물을 내보내고 말씀드리기로 했다. 이제는 보호자가 아닌 나의 피보호자이신 부모님께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괴로움과 충격을 드리고 싶진 않아 당장 연락드리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컸나?? 수치들이 쭉쭉 떨어지더니 혈소판 수치가 기어코 3천까지 내려갔다(정상범위 15만~40만).

비상이다!! 위험신호가 떴다.

 

매거진의 이전글 1. 흔한 건강검진의 끝이 응급실이라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