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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Dec 09. 2017

죽음에 대한 명상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 이야기



1. 꺼진 핸드폰



저녁나절 산책을 했다. 유서 깊은 산사의 풍경을 핸드폰에 담았다. 해가 질 쯤해서  핸드폰 배터리가 빨간불의 경고를 보내더니 꺼졌다. 나는 생각했다. 죽음은 이런 것이다. 


죽음은 누구나 당연히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개는 무방비 상태에서 겪게 되는 것,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다. 전원이 꺼진 핸드폰은 검은색 물체일 뿐 그 의미도 기능도 사라졌고 아무것도 아니다. 무수한 전화번호와 그들과의 인연들,  무수한 메시지와 약속, 수많은 사진이며 메모들, 비밀번호... 그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고 핸드폰은 곧 충전했지만 이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목숨은 재충전이 불가능하다.


죽음은 모든 인간의 통과의례이자 과제이지만 죽음에 대해 아는 이는 없다. 죽은 자는 누구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고,  눈만 뜨면 일상적으로 죽음을 목격한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을 정면으로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다른 이의 죽음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나에게는 피하고 싶고 재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알버트 얀츠 빙큰브링크, 1605-1664   사진출처 :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2. 죽음을 명상했던 시대



중세 말의 유럽 사회에서 죽음은 너무나 무시로, 또 가까이 있었다. 흑사병과 종교전쟁으로 죽음은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면죄부를 받건 뭘 어떻게 하건 죽음은 그들이 풀어야할 숙제였다.


중세사회의 죽음은 교회만의 영역이자 권력이었다. 교회의 사면을 받지 못한 죽음은 안식이 아니라 공포였다. 천국에 들지 못하고 지옥을 헤매야하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에는 교회의 용서를 받지 못해 지옥을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절대적이라 믿었던 중세의 교회와 그들의 교리와 믿음은 사실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무너졌다. " 교회가 무너진 자리에 이성의 신전을 다시 세우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인간의 사유를 진리의 기준에 놓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후 죽음을 인문학적 성찰의 문제로 끌어들인 사람은 헤겔이다.  이제 죽음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문제이고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이미 중세의 생각하는 사람들은 책상 위에 해골을 두고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마주하는 힘을 기르고 있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매일 아침 인사가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라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이다.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성인이나 수도사의 그림은 물론 중세의 그림에는 심심찮게 해골이 함께 한다.


    Vanitas still life, N.L. Peschier, 1660      사진출처 : https://www.rijksmuseum.nl




3. 죽음을 그리기 시작한 나라, 17세기 네델란드



1517년 루터가 면죄부의 부당함에 항의하면서 무수한 화형과 종교개혁이 시작된다. 가톨릭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네델란드에는 종교개혁의 위협을 피해 도망온 돈 많은 유대인들이 많았다.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동인도 회사도 그들의 작품이라 한다. 그들은 상업을 일으켰다.  보수적인 스페인 제국의 몰락과 함께 진보적인 네델란드는 이윽고 유럽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7세기는 네델란드의 황금기였다.

 

신흥 계층의 성장과 함께 그림의 수요는 많아졌다. 매 5분마다 새 걸작이 탄생되었다는 시대가 네델란드의 17세기이다. 그들은 귀족이나 왕족과는 달리 칼빈 사상을 취했고 진보적인 사상을 담았다. 성경을 주제로 하기 보다는 그들의 일상생활에 주목했다.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라는 새로운 장르는 이 시기에 탄생한다.


그리고 아주 독특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니타스를 주제로 한 정물화였다.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그림, 정물화에는 침묵이 흐른다. 그들은 부귀와 영화의 무상함을 그렸고 시들어가는 꽃과 썩어가는 음식을 그렸다. 그리고 수도 없이 그려지는 소재가 해골이었다. 


해골은 죽음의 이미지로 널리, 그리고 진지하게 그려졌다. 해골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고 부귀와 영화의 덧없음을 성찰하는 일상 속의 기도와 명상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Vanits still life, Aelbert Jansz. van der Schoor, 1640 - 1672 ,  Rijksmuseum       




4. 바니타스와 메멘토 모리



바니타스와 메멘토 모리는 17세기 네델란드 미술을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는 말이지만 

익숙지 않고 헷갈리는 개념이라 박스에 넣어서 이해를 돕고자 한다.


1. 바니타스 Vanitas 

라틴어로 허무, 덧없음을 뜻한다.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헛되고 헛되며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서 1장 2절의 성경 구절에서 유래한다. 

2. 바니타스 정물화

중세 사회를 휩쓸었던 전쟁과 흑사병, 무엇보다 30년 전쟁이 17세기 유럽이 죽음에 대한 묵상을 하게 만든 배경이다. 그 결과 당시 가장 진보적이었던 17세기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바니타스 정물화라는 양식이 유럽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시들어가는 꽃과 썩어가는 음식물, 깨어질 유리그릇, 벌레며 해골 등의 소재로 " 죽음을 기억하라 "  "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는 경고와 각성의 그림을 그렸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기본 정신은 메멘토 모리다. 

3.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로마에서 전쟁에 승리한 장군에게 수여하는 관에 이러한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 한다. 생애 최고의 날에 죽음을 기억하게 한 것이다. 중세 수도사들은 물론 미국의 청교도인들도 해골을 곁에 두고 청빈의 삶을 살며 죽음의 교훈을 묵상했다 한다. 


Still Life, Osias Beert (attributed to), 1600 - 1624



5.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


아래의 그림은 램브란트의 수제자로 알려진 니콜라스 매스의 작품이다. 

늙은 여인은 고양이의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극하게 끝없는 기도를 하고 있다. 참으로 소박하고 경건한 그림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위태위태한 풍자화로 읽혀진다. 물론 그는 풍자화를 그리는 작가는 아니다. 


나는 한 치 앞을 모르고 눈을 감고 있는 늙은 여인의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진다. 어리석고 착각에 빠진 인간의 슬픈 자화상 같아서이다. 그리고 고양이가 식탁보를 조금만 더 끌어당기면 난장판이 될 광경이 조마조마하게 연상이 된다. 인간의 삶이 이런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람의 삶과 고민은 모두 나름의 뜻과 이유가 있겠지만 그림 밖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삶은 희극이지 않은가.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Old Woman Saying Grace, Known as ‘The Prayer without End’, Nicolaes Maes, c. 1656



6.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


올 한 해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어이없는 교통사고가 있었고 암 진단을 받고 보름 만에 가신 분이 있었다. 한결같이 그렇게 갑자기 가리라고는 본인은 물론 그 누구도 상상을 하지 않았다. 

삶이 너무 부질없었다. 이렇게 끝나는 것이 인생인데 영원히 살 것처럼 아끼고 모으고 숨겨놓고 챙기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 끝낼 것을 그리 따지고 싸우고 변명하고 노하고 삐지고.. 그러느라 세월을 다 보냈다. 

이렇게 끝나면 더는 없을 시간인데 제 몸 하나 아끼는데 세월을 다 보냈다. 그래서 삶이 너무 허망했다.


삶이 덧없고 헛되다면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죽음이 있어서 삶은 더욱 값진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은 나의 숙제가 되었다.



죽음이 없었더라면 역사도 문화도 그리고 인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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