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로 생을 마감한 성실한 회사원, 스나다 도모아키의 마지막을 담은 영화다. 그는 암 4기 진단을 받은 5월부터 일생일대의 마지막 프로젝터를 준비했다. 엔딩노트가 그것이다. 엔딩노트에는 그가 죽음을 준비했던 매뉴얼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11가지 항목이지만 여기에는 줄여 정리했다.) 딸이 감독이 되어 카메라를 들고 그 여정을 함께 했다.
1.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한 번 믿어보기, 이왕 믿은 신에게 세례 받기 : 그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을 찾았다. 불교집안이었으나 가톨릭을 선택했다. 신부는 지혜롭게 상담을 해줬다. "어떤 종교든 근원은 같다. 근본을 알면 이해는 쉬우며, 교리 공부를 많이 할 필요는 없다. 잘 이해가 안 가더라도 기도문을 읽어 조석으로 기도하라."
임종이 가까워지자 신부의 지시대로 가톨릭 신자인 막내딸이 세례를 베풀었다. 그들의 관용은 보기가 좋았다.
2. 손녀들 머슴 노릇 실컷 해주기, 손녀들과 한번 더 힘껏 놀기 : 그는 누워있기보다는 바닷가에서 손녀들과 어울려 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겼다. 머슴 노릇이 즐겁다 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고 담담했다.
3. 평생 찍어주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 "정권을 바꿔야 해"라는 그의 정치적 발언에는 소탈하고 기분 좋은 유머가 있었다.
4. 꼼꼼하게 장례식 초청자 명단 작성, 빈틈이 없는지 장례식장 사전 답사하기 : 10월이 되자 장례식에 올 친척과 벗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는 장례식장이 마음에 들고, 장례식에 헛되이 돈을 쓰고 싶지 않아 합리적인 성당을 택했다고 했다. 12월쯤엔 꼼꼼한 아들에게 장례 준비를 인수인계하고 "잘 모르겠으면 전화해!"농담도 했다. 더 살려고 울고 매달릴 생각은 없다 했던 그의 장례식장은 매우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5. 소홀했던 가족과 행복한 여행 : 11월에는 추억 속의 음식인 전복 스테이크를 먹으러 마지막 여행을 갔다. 쇼핑을 하는 가족들을 기다리며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섭섭해하기도 했다. 그는 불교집안의 늙은 노모에게 세례를 받겠다고 말을 한다. 노모는 번잡한 장례식이 싫다는 아들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6. 쑥스럽지만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자
부인: 하고 싶은 말 있어?
스나다: 사랑해
부인: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가족들에게 둘만 있게 해 달라 부탁하더니 그녀는 흐느꼈다. ) 같이 가고 싶어... 같이. 당신이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 너무 늦게 알았어. 더 많이 사랑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임종이 가까워지자 가족들은 병실에 모였다. 며느리는 "이렇게 다들 웃고 있으니까 여기가 천국 같다."라고 했다. 어린 손녀에서부터 아내와 늙은 노모까지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않았다.
스나다 : 사람 몸은 참 이상하지... 사람은 왜 죽는 걸까? 왜 죽을까?
아주 어린 손녀 : 아, 알았다. 왜 그러냐면 한 살부터 백 살까지 살면 하느님이 만든 몸이 점점 낡아 가는 거야. 책처럼 점점 낡아져서 죽는 거야.... 물건도 오래되면 시들어. 당근도 심어서 예쁘게 컸는데 오래되면 시들잖아, 꽃처럼.
딸: 아빠, 좋은 데 가는 거야?
스나다: 좋은 곳 같아...
딸: 정말? 어떤 곳인데?
스나다: 안 가르쳐 줘... 가르쳐 줄 수 없어, 은밀한 얘기니까....
그의 마지막은 조용하고 정중했다.
정말... 고마워요. (의사에게)
행복해요... 고마웠습니다.
스콧 니어링의 죽음은 조금 더 까탈스러웠다. 그의 삶은 누구보다 치열했고 완전함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에 '주위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지침을 미리 썼다. 1983년 100세가 되던 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삶을 끝내자 아내인 헨렌 니어링은 그의 지침대로 장례를 치렀다.
그는 죽음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랬다. 의학은 삶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고 죽음에도 무지한 것 같으니 의사의 도움 없이 집에서 죽기를,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랬다. 진통제나 마취제 없이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어 했고,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그냥 작업복을 입혀 침낭에 넣고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랬다. 상자에는 어떤 장식도 치장도 없이, 그리고 조용히 화장되기를, 화장이 끝나면 재를 뿌리되 어떤 장례식도 없기를 바랬다.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보리, 1997
스콧 니어링의 마지막 말은 " Good "이었다. 그리고 헬렌은 임종을 지키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두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구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 (죽음의 수용소에서, 2012)이라 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인생이 던져준 숙제이기도 하다.
아무 노력 없이 죽을 날이 가까워 갑자기 뭔가를 깨닫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을 준비하며 유언장을 쓰든 엔딩노트를 쓰든 뭘 하든 그것은 자신과의 대화다. 또 자기 인생에 대한 자기 평가다. 더 분명한 것은 죽음의 준비는 제2의 삶을 시작하게 해주는 일이기도 했다. 죽음을 이해하면 삶은 달라진다. 그리고 어쩌면 더 큰 삶에 합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대통합의 단계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변화는 우리 몸으로 보아서는 끝이지만, 같은 생명력이 더 높은 단계에 접어드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나는 어떤 식으로든 되살아남 또는 이어짐을 믿네. 우리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보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