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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May 31. 2018

삼국시대 불상 돌아보기

마음수련 명상과 미륵불



미륵불에 새긴 꿈



생각해보면 나 또한 늘 뭔가를 꿈꾸고 기다렸다. 근거도 없이 내일은 뭔가가 달라지고 나아지리라 믿으며 이것저것 매달렸던 것 같다.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좋은 사람을 꿈꾸었다. 뉴스를 보면 세상이 평화로워지기를 기원했다. 나쁜 놈들은 누가 안 잡아가나 기다렸다. 뉴스가 이해되지 않는 늙은 모친은 그저 잘난 자식이 나를 한 번 돌아봐 주길 기다렸다. 


역사 속 어느 한 귀퉁이에 존재할지라도 사람에게 꿈이 없었던 적은 없다. 미륵신앙은 꿈의 표상이고 역사의 구비마다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때로는 순수한 권력의지로, 때로는 권력의 탐욕과 오만과 기만으로, 허황한 광신이기도 했다, 분노이기도 했다. 혹은 눈물겨운 희망으로, 남루한 옷에 보리밥 한 그릇이라도 도란도란 먹는 저녁 밥상 같은 꿈으로도 존재했다. 


왕의 꿈


삼국시대의 왕들은 경쟁구도 속에 있었다. 그들은 자국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했다. 그래서 그들의 나라가 바로 불국토라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삼국은 하나같이 자신의 땅에서 미륵하생경이 실현되는 설화를 만든다. 


신라 진흥왕(24대 왕, 534-576)은 미륵이 하생한 이상 국가를 심라에 건설하고 싶었다. 귀족 자제들을 화랑으로 만들고 수백수천의 화랑 낭도들의 단체를 만들었다. 미륵신앙을 신봉했던 화랑은 주로 진골 정통 계파였다. 신라 왕권은 화랑을 통해 귀족세력과의 조화를 이루어 낸다. 화랑을 앞세운 전쟁은 온 나라가 지지했고, 꽃다운 소년들은 목숨을 던졌다. 화랑을 전쟁으로 내몰며 삼국을 통일했고 왕권은 강화되었다. 


백제의 무왕은 과부인 어머니가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하여 낳은 아들이다. 훗날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꾀어낸 서동이 바로 그다. 신라와의 우호정책을 쓴 그는 지금의 익산 땅에 미륵사를 창건한다. 미륵불이 백제 땅 용화산에 오셨으니 백제가 불국토라는 말이다. 무왕에게도 미륵신앙은 통치기반이자 국력과 왕권의 확립을 위한 수단이었다. 


고구려의 미륵신앙은 알 길은 없으나 6세기 심묘명 삼존불의 광배에 죽은 이가 용화 삼회에 참석할 수 있기를 원하는 발원문이 있어 미륵신앙의 존재를 짐작하는 정도다.


인간적인 꿈


비언어적 표현은 말과 글처럼 자기검열을 거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미술은 비언어적 표현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매체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의 미륵은 권력의 도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따뜻하고 천진하며 소박하다. 듬직하지만 아기의 모습이며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미륵하생의 신화를 만든 왕이 간절히 소망했던 미륵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삼국시대 그들이 생각하는 불국토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남을 해치고 못살게 굴지 않아도 좋은 나라, 남보다 높고 잘나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사람의 두려움을 따뜻하게 돌봐주는 것이 기쁨인 나라, 굳이 높은 자리에 올라 굽어 살피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을까. 화강암을 깎아내던 석공의 염원은 분명 그러했을 것 같다. 



신라 생의사 돌미륵 (삼화령 미륵 삼존불)


신라 35대 경덕왕대의 승려 충담사의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충담은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삼화령 미륵 세존께 차를 공양했다. 이날도 차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경덕왕을 만났다. 왕은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에게 "짐을 위하여 안민가를 지어 주십시오" 청한다. 왕은 즉시 노래를 지어 올린 충담을 왕사王師로 봉하였으나 충담은 사양하였다. <삼국유사 참조>

                                         

안민가(安民歌)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 하실 지면 백성이 사랑 받음을 알리라. 
꾸물거리며(굶주리며?) 사는 백성에게 이를 먹여 다스리네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려할 지면 나라 안이 다스려짐을 알리이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 지면 나라 안이 태평 하리이다.               


향가의 번역이 분분하여 누구의 번역을 딱히 선택하긴 너무 어렵지만 안민가는 대략 이러한 노래이다. 

어리석은 백성을 잘 먹여 다스리고 사랑하며 임금, 신하, 백성이 본분을 다하는 것이 왕이 아름답다 여긴 최상의 불국토였던 것이다. 삼화령 미륵불의 아기 같고 자애로운 모습은 백성이 원했던 군주의 모습인 동시에 왕의 간절한 염원이 아니겠는가. 최소한 그들은 백성을 위한 좋은 왕이 되고자 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서산 마애불, 국보 84호)


백제 태안반도에 뱃길이 열렸다. 중국과의 해상무역이 번성하던 6-7세기이다. 그리고 서산 마애불은 태안반도와 백제의 수도를 이어주는 길목에 만들어졌다. 바닷길의 두려움을 씻어주고 안녕과 무사귀환을 빌어주기 위한 부처였다. 


일명 백제의 미소로 더 알려진 삼존불이다. 금세 터질듯한 웃음이고 어떤 그늘도 없는 낙천적이고 통통한 볼살이다. 본존불의 당당하고 크게 뜬 눈은 매우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인간의 키높이로 인간을 마주 대하고 있고 백성을 내려다보는 권위는 없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심지어 우리나라 문화에서도 이와 같이 밝은 미소는 두 번 다시 찾아보기 힘들다. 





마지막 백제인이라 불릴 정도로 백제문화를 아끼던 홍사준이 있다. 그는 1959년 4월, 우연히 늙은 나무꾼의 말을 듣게 된다. " 가야산에 웃고 있는 산신령이 새겨져 있는디유?" 나무꾼은 설명했다. 산신령이 처첩을 거느리고 있는데 작은마누라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 슬슬 웃으며 "용용 죽겠지" 했단다. 그래서 큰 마누라가 손에 짱돌을 쥐고 집어던지려고 하고 있단다. 세분의 돌부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데 말이다. 그만큼 서산 마애불은 사람과 친숙한 모습이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목숨을 건 뱃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본존불은 두려워말라 하신다.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든든하고 믿음이 간다.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터럭만큼의 근심도 없는 얼굴이다. 설혹 목숨을 잃는다 해도 저와 같은 미래불이 기다리고 계시다면 웃으며 생사를 맡길 수 있을 것도 같다. 서산 마애불은 사람을 어루만져주고 마음을 나누고 있다. 내 말을 들어주기에 충분한 넉넉함이고 모든 두려움과 걱정을 몰아내기에 충분한 자신감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위하고 아끼는 부처님이시다.


사족: 1965년 보호각이 세워진 이래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 마애불을 지켰던  정창옥. 그는 선명한 징 자국을 가리키며 일제가 이 바위를 통째로 뜯어가려 했다가 바위가 쪼개지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전해주었다. 비과학적인 보호각은 1997년 철거되었고 마애불은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우리 문화의 정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박물관에서 만났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 감동은 잊히지 않는다. 반가사유상은 사람이 없는 중앙박물관 전시장 가운데 홀로 계셨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불상 하나가 공간을 압도하고 있었다. 흐르는 선은 어디 하나 맺힌 곳이 없고 숨이 멎을 만큼 고요했다. 정적이 흐르게 하는 힘이 너무나 놀라웠다. 나는 어느 문화에서도 이와 같이 짜릿한 고요를 본 적이 없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정신적 깊이다. 이를 6-7세기 동양 불교 미술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우리는 평가한다.


국보 83호 반가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작은 방은 자주색과 황색 전등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불상은 높은 좌대 위에 앉았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래도록 머문다. 나 또한 바닥에 앉아 오래도록 있었다. 그러나 텅빈 전시관, 유별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회색 공간에 눈높이로 앉아 계시던 그 때의 감흥은 없다. 숨막히던 고요의 힘, 그건 없었다. 



1.평양출토 (1944)6세기후반 고구려 반가사유상,국보118호    2. 국보83호 반가사유상     3. 국보78호 반가사유상



삼국의 반가사유상은 중국 남북조 시대 반가상에서 전래된다. 중국과는 달리 삼국에서는 미륵사상이 크게 유행하면서 독립된 불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예술적으로, 또 과학과 기술에 있어서 도무지 재현 불가능한 경지의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만들어 낸다.


특히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일본 국보 1호인 고류지 廣隆寺 불상과 흡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류지 반가사유상의 재료가 경북 춘양에서 나는 적송 춘양목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신라에서 조성된 불상을 모셨을 것이라는 추측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물론 일본이 인정할 리는 없다.


1945년,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고류지 반가사유상을 보고 극찬을 한다.  "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철학자로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 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유홍준의 국보순례>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이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여기에 아스카 시대의 7세기 후반 일본 불상이 초대되었다. 일본 국보인 주구사中宮寺 목조 반가사유상이다. 사진 만으로도 각 나라의 반가사유상이 뿜어내는 정신적 깊이는 충분히 설명된다.                                                                      

                                                                     


1. 석조반가사유상 ,중국 남북조 (북제)   2. 고류사  목조 반가사유상 3. 일본 국보 주구사 목조반가사유상 (아스카시대, 7세기 후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은 사유의 향기가 짙다. 어쩌면 전래되기 시작한 선종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선정에 들어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는가 싶어서다. 신라의 불교는 화랑을 중심으로 한 호국 호왕 불교였고 귀족 불교였던 만큼 이처럼 빼어난 귀족적인 예술품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제 삼국의 불교문화는 일본 아스카 문화의 원류로 교류가 바빠졌다. 그리고 미륵불은 소박하고 인간적이며 솔직한 모습이 사라진다. 복잡한 삼국과 동아시아의 각축 속에서 한가로이 백성의 마음이나 돌보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권력은 바빴다. 자애로운 부모처럼 백성을 돌보려 했던 국왕의 순수한 의지는 사라진다. 비록 백성을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무지한 대상으로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버리기 아까운 왕의 덕목이었다. 


대신 불상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격을 지니게 되었다. 아무 근심이나 털어놓을 수 있고 함께 울고 웃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너무나 경건한 존재로 범인이 가늠할 수 없는 미소를 짓고 계신다. 저 높은 정신세계에 머무시는 반가사유상은 이미 왕과 귀족의 것이다. 그것이 통일신라 불상이다.


나의 마음수련 명상


나도 오래도록 갈구한 꿈이 있었다. 원하는 유토피아도 있었다. 물론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상처투성이 청춘을 치유해야 했다. 그래서 명상을 찾았고 그 중에서 마음수련 명상을 하게 되었다. 삶이 어떤 것인지 돌아보고 배우는 일을 먼저 했어야 했다.


나를, 나의 꿈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돌아본 기억들을 버려 나갔다. 관념으로 가지고 있던 이념들, 막연한 꿈,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가지고 있던 신념들...  


누구를 위해 희생했다는 착각도 버렸다. 나의 욕심이 어거지로 이루어지기를 바랬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세상을 원망했다. 


삼국시대 미륵불에 담겨있는 그 시대의 상념들의 허와 실은 무엇일런지... 



간단한 용어 설명

1. 미륵신앙 : 미륵불에 의해 완전한 세상이 된다는 믿음이다. 미륵은 용龍의 우리말인 미르와 음이 비슷하며 민간신앙과 결합한다. 
2. 미륵 : 귀족이었던 미륵은 석가모니로부터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다.  성불하기 전까지가 미륵보살, 성불한 후가 미륵불이다. 
3. 미륵 상생경 : 죽어 도솔천에 태어난 미륵보살은 56억만 년 동안 천신들에게 설법을 한다. 이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의 설법을 듣고 생사 해탈하기를 비는 신앙의 경전이다. 사회가 안정되면 상생 신앙이 고조된다.
4. 미륵하생경 :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56억만 년 동안 교화를 하고, 말세에 인간세상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세 번의 설법(용화 삼회)으로 중생을 제도한다는 신앙의 경전이다. 그때에 세계는 유리와 같이 깨끗하고 꽃과 향이 뒤덮이며 인간의 수명은 8만 4천 세가 되고 지혜와 덕이 갖추어져 기쁨으로 가득 찬다 한다. 그래서 사회가 불안하면 하생신앙이 성행한다.



< 작품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http://www.museum.go.kr

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 포털   http://www.heritage.go.kr

e뮤지엄 전국 박물관 소장품   http://www.e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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