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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Jun 23. 2018

한국 범종의 깊이와 아름다움


1. 한국 범종의 소리


새벽 종송


원컨데 이 종소리 법계에 널리 퍼져 

철위산 아래 어두운 지옥을 다 밝혀주고

삼도(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벗어나고 칼산지옥의 고통도 부수어서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이루게 하소서

朝禮鐘頌 / 願此鐘聲遍法界  鐵圍幽暗悉皆明  三途離苦破刀山  一切衆生成正覺


사찰의 아침 종송에는 이러한 염원이 담겨있다. 


새벽 3시면 도량석이 시작된다. 밤새 설치던 삿된 기운을 정화시킨다. 도량이 청정해지면 쇠북소리와 아침 종송이 새벽을 깨운다. 이제 범종각은 사물 의식을 한다. 축생을 위한 법고와 지옥 중생을 위한 범종, 물에 사는 생명을 위한 목어, 나는 짐승을 위한 운판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물의 의식이 끝나면 비로소 그레고리안 챤트처럼 아름다운 예불이 시작된다.


사찰의 새벽은 어느 것 하나 허튼 것이 없지만 그중 압권은 법고와 범종이다. 법고는 심장의 가장 깊은 곳을 두드린다. 지축을 흔들고 오욕칠정을 다 뒤집어 흔드는 듯하다. 그리고 긴 범종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알 수 없는 눈물이 절로 흐르기도 했다. 먼 하늘과 먼 산에 이르기까지, 산아래 마을 사람들의 잠든 귓전에도 종소리는 퍼져 나간다. 산사의 새벽은 지고하다.



저녁 종송


이 종소리를 들으면 번뇌는 끊어지고
지혜는 늘어나 깨달음을 이루고
지옥을 벗어나며 삼계의 고통을 떠나서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여지이다.

夕禮鐘頌 / 聞鐘聲煩惱斷  智慧長菩提生  離地獄出三界  願成佛度衆生


저녁 종송이다.

관광객 많은 사찰도 해가 기울면 인적이 뜸하다. 그때쯤 범종각에서는 스님이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사물 의식을 준비한다. 한국의 종소리는 소리가 웅장하고 여운이 길며 맥놀이라는 특이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 맥박이 뛰듯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다. 세상 어느 종소리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일시에 녹여버리는 힘을 가지지는 못했다. 유럽 대성당의 어느 종소리도 이런 마음 깊은 울림은 흉내 내지 못한다. 뜻이 깊으니 소리도 깊은 것이 아닐까.


산마루 올라 차를 따고
냇물을 끌어 꽃에 물주네
문득 고개 돌리니 해는 이미 기울었네
그윽한 암자에서 울리는 종소리
늙은 나무에 까마귀 깃들었다
기쁘다, 이렇듯 한가롭고 즐겁고 아름답다.


조선 후기 승려 혜장의  <아암집>에 수록된 선시다. 사람이 진정 변함없도록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조건과 진심 어린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긴 하나 예고 없이 나의 번뇌를 무너뜨리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 한국의 범종의 소리가 그런 것중 하나다.


타종 소리


다음은 경주박물관 홈페이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타종소리다. 

천년을 이어져 온 범종의 소리는 지금도 산사의 새벽을 깨우며, 번뇌를 녹이고, 산아래 중생의 잠든 마음을 흔들고 있다.





2. 각 시대의 범종


한국의 종은 예술이자 과학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을 울리는 소리다. 우연히 나온 것일 리가 없다.
이미 한반도는 삼국시대에 우수한 과학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야는 당시 국력과 군사력의 상징이었던 철기를 만들었고 과학과 경제력의 소산이었던 질 높은 토기를 구워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고도의 기술로 청동불상을 만들었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여 야요이 문화며 아스카 문화를 일으켰다. 

한국의 범종은 이렇게 축적된 과학 수준과 경제력, 기술력과 예술성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깊은 구도심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격을 지니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1) 상원사 동종(국보 36호) : 725년(성덕왕 24)에 만든 것이다. 오대산 상원사에 있다.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종이다. 한국종은 당초부터 항아리 모양이다. 모양도 아름답지만 소리 공명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증거다.

2) 성덕대왕신종 (국보 29호) : 경덕왕이 부왕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서 771년 혜공왕 때 완성했다. 국내 현존하는 가장 크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종이다. 높이만 369.5cm다. 

아이를 끓는 쇳물에 넣어서 종을 치면 에밀레 에밀레 어미를 부른다는 삼국유사의 이야기가 있다. 그럴리야 있겠냐마는 종을 만들기까지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을 해본다. 다른 한편 백성의 희생을 독려하는 왕실의 언론 플레이(?)가 아닐까 싶다. 누구는 아이를 시주한다는데 뭔들 주저하겠는가. 학자들은 범종의 인성분은 말뼈를 넣은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국립경주 박물관에 있다. 


고려시대


3) 천흥사 동종(국보 280호) :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성거산 천흥사종으로 만들어졌다. 위패형 틀에 명문이 있다. 상원사종과 성덕대왕신종 다음으로 크고 고려종으로는 가장 크다. 고려종은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쳐들고 있다. 고려 호족세력의 호전성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몸체의 넓은 공간도 신라 이후의 변화다.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4) 경기도 여주 출토 동종(보물 1166호)  :  고려 문종 12년(1058)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연히 발견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개를 들고 있는 용뉴와 불상과 보살상의 부조가 있다. 


조선시대


5) 갑사 동종 (보물478): 조선 시대 동종이다. 선조 17년(1584)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숭유억불의 시대지만 왕실도 사실상 불교에 의존했다. 사람은 어딘가 빌 곳이 필요한 것 같다. 비천상 대신 지장보살이 서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까지 가서 중생을 구제하는 분이니 인기가 많았다. 일제 때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갑사로 되돌아왔다. 우리 민족과 수난을 같이한 종이다.


중국


6) 원대 철제 범종(시도유형문화재3호) : 중국 원나라 범종 (고려 충렬왕,1299)이다. 재료가 철인 만큼 청동의 소리에는 못미친다. 청동은 철보다 다루기가 까다롭다. 종의 몸체에 '황제 만세 중신 천추'라는 명문이 있다. 일본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해방 후에 발견하여 인천시립박물관에 두었다.


1.  상원사 동종 (통일신라시대)   2. 성덕대왕신종 (통일신라시대)  3. 천흥사 동종 (고려시대)
4. 경기도 여주  동종 ( 고려시대 )   5. 갑사 동종 (조선시대 )    6.  원대철제범종 (중국원나라)



3. 범종의 명칭과 의미


1. 음관(용통) : 대나무 모양의 음관은 유독 한국에서만 나타난다. 음관은 차츰 형식화되고 구멍도 막히다가 조선시대가 되면 사라진다. 대나무 모양의 관은 삼국유사의 만파식적 설화에서 유래한다. 소리로 천하를 다스리고 모든 파도를 쉬게 하고자는 염원을 담았다.

만파식적

문무왕은 왜구를 막기 위해 감은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완공을 못했다. 왕은 눈을 감으면서 자신을 바다에 묻으라 명했다.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이다. 수중왕릉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를 위하여 감은사를 완공했다. 수중왕릉과 석굴암과 감은사지는 삼각형의 꼭지점에 위치한다. 모두가 동해를 지키려는 호국의 이념으로 간절한 곳이다.

감은사를 지은 이듬해 동해에서 작은 산이 하나 떠내려 왔다.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신문왕에게 보물을 내리신 것이다. 산에는 한줄기 대나무가 있었다. 신문왕은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고 국보로 삼았다. 피리를 불면 적군도 물러가고 가물면 비가 오고 장마면 하늘이 개었다 한다. 이것이 만파식적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2. 용뉴 : 종을 거는 고리를 용 모양으로 만들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종을 물어 올리는 듯한 모습이다. 

고려가 되면 종대신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치켜든다. 고려의 큰 사찰은 거의 지방호족의 원찰이었다. 그런 만큼 자신의 세력을 경쟁적으로 강하게 보이려 하였다. 그래서 호전적이고 진취적이며 화려한 것이 고려불교미술의 특징이다. 무신 가문의 야심이 종소리에 대한 간절함보다 우선한다. 불상이 무인의 모습으로 만들어지듯이 말이다. 

조선시대가 되면 용머리가 둘인 쌍용으로 만들어진다. 용의 형상도 조야해지며 형식적인 느낌이다. 음관이 없어지면서 생긴 변화이다. 용 모양의 고리는 울기를 잘하는 포뢰라는 용의 전설에서 비롯한다. 잘 울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1. 상원사동종(통일신라)   2. 성덕대왕신종(통일신라)   3. 천흥사 동종(고려)
4. 가평 현등사 동종 (조선)    5. 해인사 동종,보물1253 (조선)    6. 보경사 서운암 동종 (조선, 사인비구 제작)


3. 상대와 하대 : 종의 위아래에 테를 둘러 두툼하게 하는 것은 울림으로 종이 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통일신라는 당초무늬,보상화 무늬를 썼고 고려는 국화문, 번개문을, 조선은 연화문, 물결무늬 등을 썼다.


1. 성덕대왕신종(통일신라)  2. 천흥사 동종 (고려)  3. 봉선사 동종 (조선)


4. 유곽 : 4개의 유곽은 4계절(춘하추동), 사제 (고집멸도), 사생 ( 4가지 생명,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을 상징한다. 유곽은 상대에 붙어 있는데 조선시대가 되면 아래로 내려온다.
5. 유듀: 유곽 속에는 9개의 유두가 있다. 중생계 10계 중에서 불계를 제외한 9계를 의미한다. 


1. 성덕대왕 신종(통일신라)  2.  천흥사 동종 (고려)  3. 안흥 광흥사 동종, 보물 1645 (조선)



6. 비천상 : 천의를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은 종소리에 음악을 담아 33천까지 불음을 전한다는 의미가 있다. 고려 후기에는 선종의 영향으로 보살좌상이, 조선시대에는 보살입상이 조각된다.


1. 상원사 동종 비천상 (통일신라)  2. 성덕대왕 신종 비천상 (통일신라)   3. 용주사 동종의 삼존상 ,국보 120호 (고려전기)
4. 부안 내소사 동종, 보물277 (고려후기,1222년)     5. 안흥 광흥사 동종 (조선)     6. 고흥 능가사,보물1557 (조선)



<참고사진>

http://www.heritage.go.kr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http://www.museum.go.kr 국립중앙박물관

http://gyeongju.museum.go.kr  국립경주박물관

http://www.emuseum.go.kr  e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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