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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Jul 07. 2018

다치지 않고 같이 사는 법

한국 건축 문화 



내가 느꼈던 유럽



유럽의 끝없는 지평선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어디를 가도 산으로 둘러싸인 한국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작은 나라, 더 작은 고향이 전부였던 나는 눈물이 났다. 거대한 대륙을 모르고 살았던 작은 나라의 서러움, 혹은 열등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몽생미셸로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없는 지평선이었다. 허허벌판과 인간의 대립, 망망대해와 인간의 투쟁이 그들의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서양 문화의 뿌리는 지평선이다. 나는 그곳에서 그렇게 느꼈다.



내가 느끼는 한국 문화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가면 7월의 산길은  나무밖에 안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한 자락 하늘이 보인다. 시인 신동엽은 구원의 하늘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그렇게 하늘이 다가왔다.


마을 길을 걸으면 들판이 넓은 것 같아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몇 개의 동리가 끝이다. 한국 어디로 가도 시선의 끝은 산이 가로막고 있다. 끝없이 허락된 것은 하늘뿐이다. 


그래서 나의 시야는 아주 좁거나 아주 높거나 두 가지다. 그리고 하늘을 보는 나의 마음은 경외심이다. 종교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피 속에는 경건한 어떤 것이 흐르고 있다. 한국의 종교와 하늘과 땅을 잇는 산신 사상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늘에 의지하며 농사짓고 살았던 민족이었다. 그래서 한국 문화는 계획이 별로 없다. 인간의 계획이 가뭄과 홍수 앞에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그저 자연에 순응하고 어우러지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강을 따라 길이 나고 산을 따라 길이 나며 길 사이로 마을이 들어선다. 


안동 하회 마을



한국의 지붕


천인지 조화로 해석하면 지붕은 하늘에 해당한다. 양민의 초가지붕은 낮게 땅을 향한 곡선을 그리고 있고, 양반집 기와의 추녀는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곡선을 그린다. 과한 선은 결코 없다. 적당하다.


기와지붕의 곡선은 한반도 안에서도 각 지역이 차이가 난다. 그러니 동아시아 각 나라들의 기와지붕이 확연하게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강우량과 같은 자연조건이 지붕의 선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붕은 기능적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산자락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더러는 뒷산의 능선을 쏙 빼어 닮기도 한다. 집은 자연의, 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으면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뒷산 양지바른 곳에 동그란 집을 짓고 쉬게 된다. 무덤도 산을 닮아있다.


혹자는 뒷산을 닮아 있는 지붕은 별반 없다 말한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 지식인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설을 그냥 받아들인 것이라는 비판이다.  물론 모든 지붕이 뒷산을 닮을수야 없다마는 심심찮게 발견되는 것도 사실이고 그것이 감동스러운 것도 어쩔 수 없다. 


기와지붕 곡선은 이렇게 결정된다.  목수가 양쪽 추녀에 올라가  줄을 늘어뜨린다. 이때 눈썰미 좋은 도편수가 늘어뜨린 줄을 보며 지붕의 용마루 선을 결정한다. 집 전체와의 조화는 물론 자연과의 조화도 이때 결정된다. 



순천 낙안읍성 (사적 302호) 조선시대  / 사진출처 : 국가문화유산 포털   http://www.heritage.go.kr
낙안 읍성의 지붕 얹기


순천 낙안읍성 (사적 302호)은 가난해서 집을 고치지 못했던 것이 역으로 문화재를 잘 보존하게 된 결과를 낳았다. 초가 밖에 없는 마을인데도 여유와 운치가 느껴질 정도로 초가지붕 곳곳은 뒷산을 닮아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고려, 국보 18호)  /  전북 부안 울금바위와  개암사 대웅전 (조선, 보물 292호)  



기와지붕은 몇 가지 양식이 있다. 그중 팔작지붕은 용마루와 처마 곡선이 유려하고 아름답다. 지붕이 무거워지다 보니 맞배지붕보다 훨씬 복잡한 건축술을 필요로 한다. 굳이 뒷산자락을 닮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 유장한 선은 한국의 산하를 닮아 있고  한국 역사의 어떤 정서를 담고 있다.



종묘 정전 (조선, 국보227호)  종묘 영녕전 (조선, 보물 821호)  



종묘는 조선시대 왕, 왕비, 공신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그 목적에 맞게 건축은 장중하고 간결하다. 지붕도 그에 어울리는 사람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때로는 장중한 맞배지붕이 참 좋다. 담담한 용마루선과 내림마루의 선은 나이가 들수록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사유의 힘을 지닌 집을 대체 어떻게 지었을까. 



한옥 지붕 명칭 >

1. 팔작지붕의 용마루,내림마루, 추녀마루   2. 맞배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3. 추녀와 처마



흙 한 줌 돌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양산 통도사에 가면 영축산 자락에 암자들이 꽤 많다. 그중 통도사 부속암자인 자장암에는 아름답기는커녕 다소 불편하게 생긴 돌이 법당 안에 삐죽 나와 있다. 풍수지리를 귀히 여기던 나라인 만큼 거북이 꼬리에 해당하는 바위를 보존한 것이다.  관음전을 처음 본 것은 수십 년 전이다. 다다미를 공들여 잘라내어 바위를 에워싼모습이 참으로 기이했다. 이제는 마룻바닥으로 바뀌었다만 튀어나온 바위를 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지극하다. 


한국 문화에는 바위신앙이라 할 만큼 돌에 대한 신앙이 많다. 바위에는 이름도 붙이고 두손모아 기도도 드린다.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다.  불교가 들어오면 바로 그 바위에 불상을 새기게 된다.


한국 불교에는 많은 것이 섞여 있다. 사찰에는 주요 혈자리에 산신각이 있다. 호랑이를 기대고 앉은 산신령과 차를 달이는 동자승의 그림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불교가 아닌 민간신앙이다. 그래서 절 안에서는 가장 작은 전각에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대웅전보다 높은 위치에 있으며 구석에 있어도 찾는 발길은 많다. 옛사람들은 산과 산신령을 동일시하고 나무며 바위며 짐승이며 약초뿌리 하나까지 귀히 여긴다. 불교와 민간신앙은 마치 한 몸인 듯 섞여 자리를 잡았고 배타적인 흔적이 별로 없다.



양산 통도사 부속암자인 자장암의 관음전  /  사진출처: http://m.blog.daum.net/gpdkswl1781/7868164?np_nil_b=-1


우리나라 가옥이나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분이 땅의 생김새를 거스르지 않는 구조물이다. 산이 70%인 한국은 유난히 경사길이 많다. 그 경사길을 따라 계단식 담장이 만들어지고 공간이 나누어진다.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인 밀양 영남루 (조선 헌종 10년, 1844)는 계단식 중층 누각으로 만들어져 있다.


조선시대 건축가들은 제멋대로인 땅을 힘들다 불평하지 않고 불편하다고 잘라내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조화를 기뻐하고 즐긴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있다. 침대에 맞게 다리를 늘리거나 자르는 신의 이야기다.

나 또한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을 붙들어 나의 침대에 눕혀놓고 자르거나 늘리거나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리스에는 간 적도 없다. 한국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에서 숨 쉬고 먹고 살았는데 나는 어찌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세상에 어울리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경북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 (국가민속문화재 89호) /  밀양 영남루 (보물 147호)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공간


엄마에게 혼나면 억울하고 분한 나는 방구석에 틀어박히거나 이불을 뒤집어썼다. 상처를 받으면 대화보다는 방문을 닫아걸고 숨는 길을 선택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물어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이 힘이 들고 혼자 있는 것이 편했다. 상처투성이 나를 고수하고 지키려 했지 나를 바꾸어 섞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국 건축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든 열려있어 보기가 좋고 편안하다. 숨을 쉴 수가 있고 마음을 쉴 수가 있다. 자신의 힘을 믿으며 인생을 가다듬고 설계하지만 그 잘난 나는 대청마루에서 무너진다.


@ 경주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이다.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양반 마을이다. 안락정은 이씨 문중 서당인 강학당과 쌍벽을 이루는 서당이다. 맞배지붕의 소박하고 간소한 조선 건축이다.



양동마을 안락정 ( 국가민속문화재 82호)  /    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국가민속 문화재 83호)



대청마루는 온돌과 함께 한옥의 가장 큰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마루는 으뜸이라는 뜻이며 집의 중심이기도 하다.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개방적인 공간이며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쓰임새도 개방되어 있고 사람과 사람에게도 열려있다.


나 하나 다칠까봐 벌벌 떨며 에워싸고 있는 나의 가슴은 어느 나라를 닮은 것인가. 타인에게 열려있고 내어놓은 자리가 남아 있기는 한 것일까. '너와 나의 공존'이란 향수와 아쉬움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경주 양동마을 안락정 대청  /    안동 하회마을 원지정사 (국가민속문화재 85호) 온돌방에서 마루쪽 바라본 풍경



한옥의 창문은 주변과 어울린다. 문과 문이 어울리고 안과 밖이 어울린다. 공간과 공간이 나뉘고 이어지되 한 몸이다. 바람이 흐르고 빛이 흐르며 어떤 것도 홀로 독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각은  뚜렷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자연은 인공과 소통하고 있으며 고집과 단절이 없다. 불가에도 불이문 不二門이라는 것이 있듯이 둘이나 둘이 아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통하여 있다.


한옥의 창문이 담아내는 풍경은 혼자 보기 아깝다. 하루에도 무수히 달라질 풍경이고 사계절이 각각 아름다울 풍경이다. 달리 그림이 필요치 않고 아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한국 건축은 그 무엇도 가두지 않고 닫지 않았다. 열린 공간 속의 사람은 에고에 매몰되지 않고 더 큰 자아에 귀속된다. 


@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원지정사(1573년)는 서애 유성룡이 낙향하여 은거한 곳이다. 원지란 심기를 다스려 번거로움을 제거하는 약초라 한다.



그 중에서도 경주 독락당


경주 양동마을과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하는 옥산서원, 그리고 독락당과 인근의 정혜사지 13층 석탑(국보 40)은 하루 답사코스로 다녀올 만하다. <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왕도정치를 꿈꾸었던 회재 이언적은 불혹의 나이에 삭탈관직 당하고 낙향하여  본가로 가지 않고 옥산동에 자리를 잡았다. 홀로 즐기는 집, 독락당은 은둔의 공간이다. 겹겹의 담장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 단지 살창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다. 바로 이언적의 시선이다. 그는 여기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그의 학문은 퇴계 이황의 학문에 바탕이 되었다 한다. 선택과 집중을 보여주는 집이다. 


독락당 계곡은 이제 물이 말라 풍경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 그저 그렇다. 그러나 독락당은 살창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곳이다.


만물은 자꾸 바뀌어 가니
정해진 모습이 따로 없다
이 몸도 때를 따라서
한가로이 날을 보낸다
이 몇 해 생각도 느낌도
날로 줄어 들더니
오래 산과 마주 앉아 있어도
시가 나오지 않는구나  
                                                                                                                  
독락당 시절 이언적의 시                                        



밖에서 본 경주 독락당 (조선, 보물 413호) 담장과  안에서 본 살창


독락당 계정에서 본 계류  /  독락당 정자 (계정)  /  독락당 사랑채에서 본 살창



그렝이질


그렝이질은 우리 목수들이 고안한 고급 건축술이다. 울퉁불퉁한 막돌(덤벙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는 기법이고 자연석을 쌓아 올리는 석축을 만들 때도 사용하는 기법이다. 돌의 모양에 따라 꼭 같은 높낮이로 나무 기둥을 깍아내고(그레발) 이어 붙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보기에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막 쌓은 듯 보이나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불규칙한 면의 결합이 오히려 견고한 구조가 되었다. 


그렝이질 덕분에 어떤 모양의 나무도 어떤 모양의 돌도 짝을 이룰 수 있고 견고히 바로 세워질 수가 있었다. 온갖 모양의 자연석이 축대로 올려지고 허물어지지 않는다. 휘어지고 제멋대로인 기둥이 툭 얹어지고 서양 건축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양의 대들보가 올려진다. 그렝이질을 하는 한 한국의 건축은 설계가 불가능하다.


너무나 다른 너와 내가 만났다. 다르다고 버릴 수도 없고 굽히고 들어올 때까지 팔짱 끼고 버틸 수도 없다. 맞추어 들어가는 노력은 억울함도 아니고 바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니고 당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건축도 그렇다. 맞춰나가는 과정이 정교하고 정확하며 예술적이다.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아름답다. 그리고 쉬운 것도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돌과 나무를 잘 알아야 하고 요철이 딱 맞으려면 인내와 성실도 필요하다. 요행도 없고 잔재주도 통하지 없다. 사람의 관계도 이와 같은 노력이 아니면 가장 귀하고 오래가는 행복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여겨진다. 



구례 화엄사 대웅전 (조선, 보물 299호) 주춧돌  / 공주 갑사 대적전 ( 조선, 도유형문화재 106호)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석축


길을 걸으며 


자주 가는 산책길이다. 

큰 나무가 있으면 길은 자기를 굽힌다. 또 나무가 있으면 길은 돌아간다.


누구 하나가 특히 너그러운 것도 아니다. 너그럽다는 것은 그 또한 높낮이가 있는 것이다. 누구 하나가 양보한 것도 아니다. 양보란 양보했다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이다.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이라 꼭 뒤끝이 있다. 골치 아픈 존재는 사람뿐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며 나무도 길도 사람도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누가 더 훌륭한 것도 아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누구도 상처를 주거나 받지도 않았다. 인간은 이렇게 살 수 없는 것인가.





쉽고도 어려운 일



절집 아래 마을 담벼락에 아이들이 그린 타일이 붙어 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사이좋은 두 사람과 웃는 얼굴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글을 썼다.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고

이치는 그럴 듯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수많은 책들.

현실적인 것 같지만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닌 많은 책들.


다 읽기도 힘들고 시키는 대로 살기는 더 힘들다.

글로 읽어서 인간이 되는 거라면 나는 20년 전에 성인의 반열에 들어야 한다.


아이들처럼 소박한 마음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지도 모른다.

고마운 걸 고맙다 할 줄 아는 마음 말이다.





문화재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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