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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임시

억울함, 분노, 화

소크라테스도 뺨을 맞았습니다.

by 냉이꽃




중세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짜 뉴스로 모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철학자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로 알렉산더를 가르치기도 했다. 훗날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 말이다. 13세기, 앙리 당들리는 바로 이 사실을 바탕으로 아주 선정적인 이야기를 꾸몄다. 중세의 교회는 앙리 당들리가 만든 이야기를 널리 보급했고, 이 이야기로 수많은 판화가 만들어졌다.


젊은 알렉산더는 고급 접대부 필리스에게 빠져 학문을 소홀히 했다. 스승(아리스토텔레스)은 여색을 멀리하라 경고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필리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유혹했다. 유혹은 성공했다.
필리스에게 눈이 멀어버린 노철학자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네 발로 기며 말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이 굴욕적인 장면을 젊은 알렉산더가 엿보도록 하였다. 스승에게 실망한 알렉산더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알렉산더는 필리스 앞에 무너진 스승을 보며 크게 깨우쳤다. 여색의 무서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애첩 필리스를 멀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개망신을 줬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명예는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서야 복권된다. 르네상스의 라파엘로는 < 아테네 학당>이라는 대작을 그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함께 철학의 중심, 아테네 학당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Aristoteles en Phyllis >
1. Georg Pencz, 1545 - 1546 2. Monogrammist MZ, 1500 - 1503
3. Meester van het Amsterdamse Kabinet, 1483 - 1487
4. Hans Baldung Grien, 1515 5. Johann Sadeler, 1586 - 1595
6. Pieter de Jode, after G. Congiet, 1698 - 1737


De School van Athene, Giorgio Ghisi, after Rafaël, 1530 - 1582


억울한 일이 차고 넘치는 우리나라


교복과 두발이 자유로웠던 우리의 후배들은 우리처럼 뒤틀린 삶을 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은 7080 우리 세대에서 끝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개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사건은 계속되었다. 세월호의 억울함은 어느 누구도 잊을 수 없고 잊은 적도 없다. 아까운 정객政客을 잃어야 했던 믿고 싶지 않은 비극도 있었다. 어이없는 죽음도 많았고 어이없는 사건들도 많았으며 한대 치고 싶은 인간도 많았고 쳐 죽이고 싶은 인간들도 많았다.


그런데 당한 사람만 억울한 것이 아니었다. 가해자도 억울했다. 법륜스님이 교도소에 강의를 가셨던 이야기를 하셨다. 교도소에 죄지은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재수없어서 온사람 뿐이라 하셨다.


"억울하시죠?"


하면 모두 얼굴이 환해진단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서 억울했고, 어릴 때 선생님이 나를 쓰레기라 불러서 그랬으며, 서울에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내가 살 집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실컷 울고 눈물을 닦자. 행복은 권리이자 의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행복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웃음과 행복이 금지된 암흑의 중세가 있었고, 여자는 그보다 더 오래도록 차별받았다. 인간의 행복을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여자는 열등한 존재이고 노예는 하찮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런 말이 무색해지기까지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억울하게 죽었고 희생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억울한 것이 많았던 나는 오래도록 한을 품고 울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고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분하면 분노하고 풀 길이 없으면 끙끙대며 앓았다. 화병이 나고 우울증이 오고 공황장애가 와도 소나기를 맞듯이 무방비로 견디고 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원망하며 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다 잊고 사는데 홀로 십자가처럼 고통의 기억을 지고 말이다.


억울한 나에게 한이 서린 시와 소설, 노래가 위로가 되기는 했다. 분명한 것은 위로가 된다고 해서 나의 억울함과 분노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분노는 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정신은 황폐해졌고 몸도 병들었다. 이 억울함은 돌아와 각자의 방에 앉으면 각자의 인생에서 풀어야 할 개인의 과제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러니 억울함으로 나를 상하게 하지 마라


"모든 게 다 무너졌다"
"그저 슬픔과 절망일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이한 날 새벽, 하필이면 이날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이 붉은 화염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언제나 거기 있으리라 의심치 않았던' 파리의 심장이었다. 파리 시민은 절망했으나 좌절하지 않았다. 첨탑을 올려 하늘에 닿으려 했던 중세의 염원은 다른 방법으로 실현될지도 모른다.

왜…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그러나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무너지는 그 첨탑과 지붕을 바라봐야 했던 파리의 시민들은 다시 일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
"파리가 늘 그래왔듯 다시 복구해 낼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재건할 것"

놓쳐버린 그 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자 그들은 함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긴 시간이 걸릴 터이지만 어머니(노트르담은 성모라는 뜻이다)를 잃어버린 도시는, 다시금 어머니를 되찾아 환한 얼굴을 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먼 하늘과 바다를 돌아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도시, 우리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들이 이어진다면 말입니다.

2019년 4월 16일 JTBC 손석희 앵커 브리핑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일이다. 분노를 이해하고, 분노를 회피하거나 분노에 매몰되지 않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명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내 마음의 뿌리를 많이 보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엄격한 부모와 무관하지 않았고, 어린 시절 억울하게 매맞았던 분한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두고 보자는 마음을 오래도록 품었다. 그것이 마음의 패턴으로 굳어지면서 사소한 일에도 그렇게 대처했다. 그러면서 지옥 속에 사는 건 그 원수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수를 꿈꾸지 마라. 내 인생의 목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는 것이지 복수로 물들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복구하는 방법으로 마음수련 명상을 선택했다. 알려진 여러 가지 명상을 경험한 끝에 선택한 것이었다. 우선 마음수련 명상은 자기를 돌아보는 충분하고 체계적인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쓰레기통 같은 마음들을 하나씩 버릴 수가 있었다. 버릴 수 있었기에 나는 이제 웃을 수 있다.


억울함은 나의 삶을 더욱 견고하고 알차게 만들어 줬다. 나의 웃음은, 나의 행복은 조건에 따라 휘청이는 것이 아니다. 다시 운명이 쓰나미처럼 휘몰아치더라도 나를 지킬 수 있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마음 다치지 않고 걸어 나갈 수 있고, 때로 다쳐도 쉽게 아물 수가 있었다. 더러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고 같이 갈 수도 있었다.


만일 아리스토텔레스가 부활해서 저 치욕적인 그림을 보게 되었다면 어떨까? 그는 화병으로 앓아누웠을까? 복수심에 치를 떨었을까? 아니면 어느 때보다 명징한 정신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인간에 대한 더욱 심층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작품 출처 : https://www.rijksmuseum.n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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