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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Jan 11. 2018

개를 명상한다

사람보다 나은 세인트 버나드 


어디든 어울리는 접두사, 개 


개라는 접두사가 있다. 예전에는 주로 욕에 쓰였고 비하하고 부정하는 말로 쓰였다. 개꿈, 개수작, 개고생, 개죽음 등등이다. 그 외에도 흔히 쓰이지만 차마 여기서는 담지 못할 말들이 차고 넘친다. 그리고 이 접두사는 진짜가 아닌 가짜를 지칭할 때 쓰였다.  개복숭아, 개떡, 개나리, 개살구 등이다. 요즘은 가리지 않고 쓰이는 것 같다. 개재미, 개여신, 개좋아, 개맛있어, 개짜증, 개간지, 개매너... 속어지만 어디에 붙여도 잘 어울리고 입에 착 달라붙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개짜증... 이 말은 나도 고맙게 잘 쓴다. 그 말 한마디면 속이 다 풀리고 주변 사람들도 같이 웃고 만다. 


개는 가장 인간과 친밀했고 오래도록 공생했던 동물이었다. 그래서 개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개와 함께 했던 오랜 시간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풍성한 경험들이 어디든 어울리는 풍성한 접두사를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요즘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개 앞에 고개가 숙여질 때면 또 생각이 든다. 인간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말이다. 아니, 언제 인간이 온전할 때가 있었던가 싶다.



A St Bernard Dog, Bernard te Gempt, c. 1850 - c. 1879



세인트 버나드


착한 네로가 나오는 만화 영화 < 플랜더스의 개 >에는 충견 파트라슈가 나온다. 세인트 버나드이다.

스위스의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에서 알프스 산맥의 눈사태나 추위에 희생되는 사람을 구조하기 위한 구조견으로 길러졌으며, 이 수도원의 이름을 따 세인트 버나드라 불려지게 되었다 한다.


눈 속에 갇힌 40명의 조난자를 구한 베리라는 이름의 개는 스위스 박물관에 박제되어 보존되어 있을 만큼 세인트 버나드는 최고의 산악인명구조견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스위스의 국견이다.


세인트 버나드는 온화하고 참을성이 강하며 충성스럽다. 평소에는 놀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존재감도 거의 없다 한다. 그러나 길 잃은 여행자들이 구조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남아 있도록 훈련되어 있는 견종이다.


위의 그림은 알프스의 세인트 버나드 고개를 배경으로 그려진 19세기 세인트버나드 그림이다. 그리고 아래의 그림은 세인트 버나드가 스위스의 국견이 되기 훨씬 전에 그려진 그림이며 길을 잃은 여인과 묵주를 쥐고 있는 아픈 아기를 구조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목에 걸려있는 술병은 조난자들이 마시고 체온을 보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 버나드 라 이름이 적혀 있다. 팩트에 근거한 것인지 화가의 각색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화가는 세인트 버나드를 사람보다 나은 개로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붉게 충혈된 개의 눈은 인간보다 더 간절하고 지극하다. 인간의 사랑 중에 으뜸인 어미의 사랑이 개보다 나약해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A Saint Bernard Dog Comes to the Aid of a lost Woman with a sick Child, Charles Picqué, 1827



아래의 사진은 KBS, "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캡처한 장면들이다.
 1. 알프스의 세인트 버나드 고개와 그곳의 성당, 알프스 여행자를 위한 호스텔
2. 등산가의 수호 성자인 생 베르나르 : 생 베르나르(세인트 버나드)는 험하고 가파른 이 고개를 지나는 순례자를 위해 대피소를 만들고 폭설과 추위와 산적으로부터 그들을 도왔다 전한다.
3. 순해빠진 스위스 국견의 모습.  성자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 온순한 개는 300년 동안 2500여 명을 구조했다 한다.





세인트 버나드 고개를 넘은 사람들


세인트 버나드 고개는 이탈리아를 지켜준 천혜의 방벽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214년 로마 정복의 대장정을 시작한  한니발은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이 고개를 넘었다. 이탈리아의 허를 찌른 것이다. 


1800년, 나폴레옹은 이탈리아를 기습할 때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이 고개를 넘기로 결정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말을 이때 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의 진위 여부에 대한 설은 있지만 그만큼 세인트 버나드 고개는 혹독한 난관이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어떻든 나폴레옹도 이 고개를 넘어 마렝고 전투에서 대승한다.


그리고  화가 다비드에게 그림을 주문한다.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기에 자코뱅 당원이었다. 나폴레옹 집권 후 급진적 혁명당이었던 자코뱅 당원들은 대부분 사형을 당한다. 다비드는 탁월한 실력의 신고전주의 화가였다. 그는 나폴레옹을 지지하고 미화하고 선전하는 궁정 화가로 거듭난다. 물론 나폴레옹의 패망과 함께 그도 추방되었다. 


나폴레옹이 주문한 그림은 알프스 고개를 넘는 영웅적인 모습이었다. 우리에게도 무척 낯익은 이 버전의 그림은 무려 다섯 작품이나 그려졌다.  아마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영웅담이었으리라.


나폴레옹은 수많은 군인의 고통과 목숨을 대가로 이 고개를 넘어 권력과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길이 드높이기 위해 타지도 않은 백마를 그림에 등장시켰다. 이 영웅적인 그림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고개를 넘을 때 노새를 이용했고 한발 한발 내딛으며 그 자신도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다. 


그의 승리 뒤에는 알프스 골짜기에 미끌어져 떨어지면서도 북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어린 군악대며, 죽을 고생을 하며 악천후 속의 이 협곡을 먼저 돌파한 프랑스 군대가 있다. 나폴레옹은 고개를 넘어온 군대에게 엄청난 양식을 제공한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 사람들에게 몇 년이 지나서야 절 반 정도를 갚았다고도 한다. 자신의 영광의 디딤돌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자신을 미화하고 드러내는 일이 더 시급했던 모양이다.

산악 구조견 세인트 버나드 이야기와 나폴레옹의 영웅담은 인간을 너무나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지게 한다. 



Napoleon steekt de Alpen over bij de St. Bernardpas,  Jacques Louis David, 1809


개보다 못한 나를 돌아보는 명상


오래전 사고뭉치 개를 본 적이 있었다. 사냥개의 습성이 남아서인지 사람을 자꾸 무는 일이 생겼다. 지금처럼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정보도 없던 시절이라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그러면 안된다고 혼을 냈다. 우리가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치면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렀다. 우연히 한 농장에 묶여 있는 그 개를 보게 되었다. 사람을 물었다는 이유로 집 밖으로 쫓겨나 농장을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이름을 부르니 너무나 반가워하며 구르고 난리가 났다. 한 때 간식 몇 개 준 것 밖에 없는데 목소리인지 냄새인지는 몰라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내고 나무랐던 것을 원망하지 않고 너는 어찌 그 작은 은혜도 잊지를 않나 싶었다.


개를 동정하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수없이 사람을 물어뜯고 괴롭힌 나를 돌아본다. 반성도 하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버젓이 따뜻한 방에서 자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나를 본다. 백번을 잘해줘도 거슬리는 말 한마디에 돌아서고 원수가 되어버리는 인간인 나를 돌아본다. 개는 간식 몇 개의 기억만으로도 배를 드러내고 좋아하는 데 나는 낳아주고 길러줘도 은혜는커녕 고마운 줄도 모른다. 


이렇게 끼니마다 먹고 온갖 진귀한 것을 먹어도 어느 누구에게도 고마워할 줄 모르고 그 은혜의 소중함을 모른다. 더 먹을 게 없나 두리번거리기나 하지 작은 것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갚을 줄 아는 기본적인 의리가 나의 사전에는 없다. 나는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의 말로 오늘의 명상을 맺으려 한다. 



개는 사람과 살기 위해 타협을 선택한 동물인 만큼
 언제나 주인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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